김정태 교수 |
토익(TOEIC)은 원래 일본 종합상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일상생활 및 비즈니스 현장에서 요구되는 실용적인 영어 구사 능력을 평가할 목적으로 1978년에 개발된 시험이었다. 이 시험은 1982년에 YBM시사영어사에 의해 국내에 도입된 이후 삼성, LG와 같은 대기업들이 직원들의 영어능력 평가에 도입하면서 대중화됐다.
영어교육 전공 교수인 나도 한 때 토익 시험 때문에 피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1995년 삼성전자에 엔지니어로 입사했을 때 토익 점수를 승진에 연동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신경영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던 이건희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의 여파로, 대리와 과장 승진을 하려면 일정 점수 이상의 토익 점수를 제출하도록 강제했다. 당시 64메가 메모리 반도체 개발을 위해 집에도 못 가고 헌신했던 대리들은 대부분 과장 승진에서 탈락한 반면, 몰래 영어학원을 다녔던 얌체가 과장으로 승진한 사건이 터졌다. 이 토익 점수와 승진의 연동 정책은 그 후 몇 년 동안 지속했고 나라 전체를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던 반도체 스파이 사건이 터진 이후 부분적으로 폐기됐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토익 정기시험과 토익 스피킹 시험의 응시자는 약 2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토익 시험의 응시료는 5만 2500원이고 토익 스피킹은 8만 4000원인 점을 고려하여 대략 계산만 해도 해마다 이 시험의 응시료로만 1000억 원 이상이 지출되고 있으며, 수백억 원의 로열티를 원제작사인 미국의 ETS에 지불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험 덕분에 국민의 혈세인 지자체 예산이 해외로 줄줄 새고 있다. 대전시는 한 달에 30만 원에 달하는 토익 학원비와 응시료를 취업준비생들에게 지원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해외 시험인 토익이 우리나라 공무원을 선발하는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 해외에서 토익의 위상은 어떠한가? 일본에서는 1963년에 개발된 에이켄(EIKEN) 시험 1급이 토익에 대항해 연간 300만 명이 응시하고 있다. 중국은 토익은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CET라는 자체 개발 영어시험을 연간 2000만 명이 넘는 응시자들이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부 때 600억 원 이상을 들여 개발했던 국가영어능력시험 NEAT를 박근혜 정부 초기에 사교육 조장을 이유로 폐지했다.
우리는 언제까지 국가 공무원을 선발하는데 이 해외 시험을 사용해야 하고 이 시험에 국민 혈세를 낭비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현실적으로 대처할 방법은 무엇인가? 가장 쉬운 방법은 국가영어능력시험 NEAT를 되살리는 것이다. 토익을 대체할 수 있는 1급 시험이라도 최소한 되살려서 장기적으로 토익 시험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2013년에 NEAT가 폐지되지 않고 10년 이상 존속이 되었다면 지금은 당당히 토익 시험에 맞설 수 있을 것이고, 영어교육은 말하기와 쓰기의 의사소통능력 중심의 현장으로 운영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 대학교들이 유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전통적인 토플과 IELTS 시험 점수와 더불어 듀오링고 영어시험 점수를 최근 도입한 것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듀오링고 영어시험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인 듀오링고에서 만든 사설 시험으로 끊임없이 연구와 홍보에 매진하여 현재 전 세계 4500개 이상의 대학 및 기관에서 이 점수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2의 듀오링고 영어시험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해외 시험인 토익보다는 자국의 영어 평가를 개발하여 국민적 자존심을 세우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한다. /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자율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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