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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으로 10세기 성 니샨에 의해 설립된,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아흐파트 수도원에서 순례자들. |
세계평화를 위한 한국가톨릭성지순례단 (단장 김정수 바르나바 신부)은 순례 10일째인 5월30일 조지아 트빌리시를 떠나 사다클로 국경으로 약 1시간 20분 이동 후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이자 꼬냑의 나라인 아르메니아에 입국했다. 순례단은 약 40분간 알라베르디로 이동해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독특한 양식인 아흐팟트 수도원을 순례하고, 세반으로 이동해 아르메니아에서 중요한 수원 역할을 하는 세반 호수와 호수 안에 있는 섬에 세워졌던 세반 수도원을 순례했다. 이후 1시간 10분이 소요되는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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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에서 중요한 수원 역할을 하는 세반 호수를 배경으로 순례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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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지도 |
<꼬냑의 나라 아르메니아>
유럽의 동부와 아시아 서부의 남캅카스 지역에 위치한 아르메니아의 정식 국명은 아르메니아 공화국이고 수도는 예레반이다.
아르메니아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313)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인 303년 이 지역의 왕이었던 티리다테 3세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대성당을 세움으로써 세계에서 최초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국가이다. 대부분의 아르메니아인들은 가장 오래된 기독교 종파인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신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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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국기. 빨간색은 아르메니아 군인들이 흘린 피를, 파란색은 아르메니아의 하늘을, 주황색은 비옥한 아르메니아의 땅과 국민의 노동을 의미한다. |
예수의 12사도 중 바르톨로메오(Bartholomaeus)와 유다(Judas)가 아르메니아에 크리스트교를 전래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도 아르메니아 교회의 정식명칭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Armenian Apostolic Church)'이다. 아르메니아 교회는 이후 잦은 외침을 받으면서도 아르메니아가 국가적·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근간이 되었다. 아르메니아 국민의 약 93% 이상이 아르메니아 교회의 신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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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가로수 |
아르메니아는 기원전 860년 경부터 국가 형태를 갖추고 현재 튀르키예 동부 아나톨리아와 남캅카스 일대를 오랫동안 지배했다. 그러나 5세기 이후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등 주변 강대국의 침략과 11세기 이후에는 대 셀주크 왕조의 침공으로 점차 쇠퇴하면서 14세기까지 지중해 해안의 소국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튀르키예의 아르메니아인 학살로, 15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백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고국을 떠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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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도로가에 심겨진 노란 꽃나무들 |
1917년에 발발한 러시아 혁명을 틈타 1920년 아르메니아 공화국을 세워 독립했지만 소련에 의해 점령돼 1936년 새로 개정된 소련법에 따라 아르메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편입됐다. 스탈린 체제 하에서 많은 아르메니아 활동가들이 민족주의적 편향을 이유로 숙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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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의 장미 |
이후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독립했고, 곧이어 아제르바이잔과 민족 분규로 전쟁을 치르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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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안에 치즈가 들어있는 아르메니아 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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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김정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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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의 장미화원에서 야외미사를 드렸다. |
아르메니아에서 유명한 꼬냑은 원래 프랑스의 꼬냑 지방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증류해 만든 브랜디인데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결과 아르메니아산 브랜디가 그랑프리를 수상하자 프랑스 꼬냑협회에서 꼬냑이라는 이름을 쓰도록 승인해주었다. 아르메니아는 강한 햇빛을 받고 자란 포도와 아라라트 산에서 흘러나온 천연수, 질 좋은 오크나무를 만들 수 있어 꼬냑을 생산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아르메니아는 전 국토의 4/5가 산악지대로서 평균 해발 고도가 1,800m로 스위스보다 훨씬 높다. 이웃 나라 아제르바이잔은 석유 생산으로 '불의 나라'인 반면, 아르메니아는 '돌의 나라'다.
아르메니아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1/3이고, 인구는 300만 밖에 안 된다. 아르메니아인은 국내 인구보다 2배가 넘는 600만 명 이상이 외국에 살고 있다. 북쪽으로 조지아, 동쪽으로 아제르바이잔, 서쪽으로 터키, 남쪽으로 이란과 접해 있다. 하지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오스만 제국 내에서 튀르키예인들에 의해 아르메니아인이 약 100만 명 이상 죽었다. 이는 최초의 제노사이드(집단살해. 특정 인류 집단을 고의적 및 제도적으로 말살하는 행위)이자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다음으로 가장 큰 학살이었다. 우리나라만큼 아픈 역사를 간직한 나라이다. 그리고 이웃나라인 아제르바이잔과 영토 싸움으로 항상 긴장 상태에 있다. 특히 아제르바이잔과는 직접 오가는 일도 금지되어 두 나라를 오가려면 반드시 이웃 나라를 거쳐야만 한다. 따라서 아르메니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조지아와 이란을 통해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원래 아르메니아인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신앙인 아르메니아 신화를 믿었다. 그 후 조로아스터교(배화교)를 믿었고, 301년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한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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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국기와 튀르키예인들에 의해 대학살된 아르메니아인들을 잊지말자는 의미의 물망초기. |
◆알라베르디
아르메니아 북동부 로리 주에 위치한 도시인 알라베르디는 조지아 국경과 가까운 지점에 있고, 아르메니아의 주요한 상공업도시로 꼽힌다. 아직도 구리를 제련하는 공장의 굴뚝이 산을 타고 올라가 산 능선에서 연기를 피우고 도시에는 매연이 자욱하다. 도시를 이루는 집과 건물, 편의시설 등은 모두 옛 소련 시절 생겨난 것들이 대부분이다. 지난 50여 년간 투자도, 개발도 이뤄지지 않은 도시이다. 해발 1000m 강기슭 깊은 협곡에 위치한 이 도시는 높은 산과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특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데베드(Debed) 강을 따라 협곡에 자리한 북부지역과 사나힌 고원에 자리 잡은 남부지역으로 도시를 구분한다. 이 도시의 두 수도원은 지층의 붕괴로 생긴 데베드(Debed) 협곡으로 나뉘는데, 북동쪽에 아흐파트 수도원이, 도시구역 안에 사나힌 수도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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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베르디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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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힌 수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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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힌 수도원 |
▲아흐파트 수도원
아흐파트 수도원은 아르메니아에 있는 그리스도교 수도원으로, 10세기 후반~13세기 중세 종교 건축의 화려함과 장식예술을 잘 나타낸다. 비잔틴 양식과 전통 양식이 융합되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아흐파트 수도원과 사나힌 수도원은 10~13세기 번성했던 키우리크 왕조의 중요 교육기관이었다. 특히 사나힌은 역사적으로도 장식가와 서예가의 학교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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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파트 수도원 |
아흐파트 수도원은 요새화된 대규모 수도원 단지로, 주 성당과 성 그레고리 교회로 구성돼 있다. 성 십자가를 봉헌하기 위해 지어진 주 성당은 수도원을 구성하는 건축물 가운데 최대 규모로, 966년~967년에 건축되기 시작해 991년에 완성됐다. 측면 벽에 세워진 거대한 4개의 기둥이 중앙 돔을 지탱하고 있고, 바깥쪽 벽은 삼각형 벽감으로 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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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파트 수도원에서 만난 아르메니아 개. 중성화 수술을 한 개들은 귀에 단추를 달고 있다. |
교회 동쪽 교회 끝에 있는 반원형 부분에는 우주의 지배자로서 그리스도를 묘사한 벽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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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파트 수도원 |
아흐파트 수도원은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기독교의 3대 축(로마 가톨릭, 동방정교회, 개신교)에 속하지 않고 ‘아르메니아 사도회’라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계보를 잇고 있다.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으로 10세기 성 니샨에 의해 설립된,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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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파트 수도원에서 순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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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파티 수도원 내부 성화 |
◆세반
아르메니아 동부에 위치한 게가르쿠니크 주의 도시인 세반은 세반 내셔널 파크에 둘러싸여 있다. 이 마을은 세반으로 개명될 때까지 Yelenvka로 알려졌다. 담배 제조가 성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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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반 호수 가기 전 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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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에 있는 세반 호수는 해발 1900m에 위치해 있다. |
▲세반 호수
아르메니아에 있는 세반 호수는 해발 1900m에 위치해 있다
면적은 서울의 두 배쯤 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 중 하나로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식수원이다. 내륙국인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바다를 대신하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면적이 1420평방미터이다. 세반은 ‘검은 반’, 검은 반호(湖)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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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 중 하나로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식수원인 세반호수는 내륙국인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바다를 대신하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
오래 전 아르메니아인들은 반호 주변으로부터 세반 호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 때 그들은 호수가 어두운 색을 띠어 검은 색에 가까운 것이라는 의미로 세반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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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으로 물든 세반호수 |
세반호수는 아라라트 산의 화산 폭발로 생겨난 호수로, 북서쪽 끝의 라잔강에서부터 발원한다. 세반·라잔 수계는 아르메니아의 유력한 수력전원지대로 5개의 수력발전소가 있다.
이 호수에 사는 세반 송어는 명산물의 하나이다. 세반 호는 반 호와 우루미아 호와 함께 고대 아르메니아 왕국에 있던 세 호수 중 하나로, 이 호수들은 아르메니아의 바다들로 일컬어진다.
세반호는 이들 중 유일하게 아르메니아 국경 안에 남아 있다. 세반시는 경치가 아름다워 관광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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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반수도원 |
▲세반수도원
세반 호숫가에는 작은 규모의 세반 수도원이 있다. 호수 안으로 길쭉하게 들어간 끄트머리에 풍경 좋은 세반 반크 수도원이 있는데 호수 북쪽으로는 병풍 같은 설산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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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반수도원 |
이 수도원은 스탈린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호수 안에 섬이 있었다. 수도원에 가려면 배를 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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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반수도원 |
호수 안에 있는 섬에 세워진 세반 수도원은 1950년대 스탈린이 관개용수 공급과 수력 발전을 위해 터널을 뚫고 준설하면서 호수의 수위는 이전보다 약 20m 정도 급격히 낮아졌고, 그로 인해 수도원은 육지와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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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반수도원 |
스탈린이 죽자 공사는 전면 중단되었고, 수위를 되돌리기 위해 수력발전도 화력발전으로 대체했다. 그 결과 세반 호수는 살렸지만 수도원은 옛 모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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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반수도원 |
세반수도원은 그 역사가 무려 1150년이나 되었다. 당시 이 지역을 지배하던 이슬람 세력에 저항해 사도교회를 지키려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염원을 담은 수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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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반수도원에서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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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미사를 집전하는 김정수 바르나바 신부 |
<김정수 바르나바 신부 집전 미사>
주님, 이 세상을 정의와 평화로 이끌어주시고, 교회가 자유로이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인자하신지 여러분은 이미 맛보았습니다.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십니다. 여러분도 살아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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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미사를 드리는 순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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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의 야채와 과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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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과일과 채소들 |
사랑하는 여러분, 이방인과 나그네로 사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는 육적인 욕망들을 멀리하십시오. 이교인들 가운데에 살면서 바르게 처신하십시오. 그래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여러분을 중상하는 그들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지켜보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그 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르메니아 사다클로, 알라베르디, 세반에서 한성일 편집위원(국장)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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