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태평소국밥 본점. (사진= 김영복 연구가) |
오죽하면 10여 년 전 3개 방송사 이름을 거론하며 방송에 한 번도 안 나온 집이라는 현수막을 내 건 집도 있었다.
오늘은 그야말로 방송에 한 번도 안 나온 집으로 오직 맛으로 승부 하는 맛집을 향해 떠났다.
최근에 뤤일인지 '맛있는 여행' 취재를 떠나기로 한 날 비가 온다.
비 오는 날 아침 일찍 현지에서 지인을 만나기로 하고 강남고속터미날로 나가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옛날 맛 기행의 선두주자였던 백파 홍성유 선생이 맛 집을 찾으러 길을 떠나면 비가 왔다.
그래서 그때 농담으로 "가뭄에 기우제 지낼 필요 없이 백파선생님이 맛 기행 떠나면 되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대전 태평동에 언론에 한 번도 소개된 적 없으나 보통 웨이팅 20여 분은 기본인 태평소국밥집이 있다. 태평소국밥은 대전 태평동에 있는 소국밥집이라는 의미를 가진 상호이며, 2007년에 창업했다고 한다.
태평소국밥 유성점. (사진= 김영복 연구가) |
태평소국밥집에 들어서니 꽤 넓은 가게 안에 모든 테이블에 손님들로 꽉 찼다.
음식을 주문하려니 벽에 표어처럼 메뉴가 붙어있다.
소국밥, 따로국밥, 소내장탕, 특소내장탕, 갈비탕, 육사시미, 매운고갈비찜, 궁중갈비찜 등이 있다.
이 집 메뉴 중에 소내장탕이 있는데, 얼큰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시켜 먹는다고 한다.
소의 1위을 양이라고 하는데, 양은 고기의 결이 한쪽으로만 되어있지 않고 가로· 세로 엇갈려 있어서 익으면 동그랗게 오그라들고 질겨지므로 되도록이면 약한 불에서 오래오래 천천히 삶아야 제 맛이 난다.
특히 양의 껍질은 검은색을 띤다. 이를 소위 흑양이라고 하며 해장국을 끓일 때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끓인다. 그런데, 이 집의 양은 하얀 깐양이다.
깐양은 탈피기에 찬물과 함께 양을 넣으면 검은 돌기의 검은 막이 제거되어 하얀 양이 나온다.
양에는 특히 단백질이 많아 예로부터 몸이 허약한 사람이나 회복기의 환자에게 많이 먹였다고 한다. 양을 그대로 푹 고아서 즙만 마셔도 좋고, 조금 공을 들인다면 여기다가 잘게 갈은 잣가루를 섞어 한 번 더 끓인 다음 베보자기에 받쳐 건더기를 거르고 소금으로 간을 쳐 먹어도 좋다.
그렇지만 소내장탕의 경우 대부분 누린내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지만 이 집의 소내장탕은 그런 염려를 안 해도 좋을 듯싶다.
이 집의 소내장탕은 밥과 따로 나오는데, 배추 실가리와 소 양 그리고 곱창이 푸짐하게 넣고 얼큰하게 끓인 탕이다.
옆 손님들이 뭐를 시켰는지 보니 대부분 소국밥과 육사시미를 시켜서 먹고 있다.
육사시미. (사진= 김영복 연구가) |
조금 있으니 펄펄 끓는 소국밥이 뚝배기에 담겨져 나온다. 엷게 찢은 쇠고기와 납작하게 썬 무, 파가 들어가 있는데, 양이 과장해서 고기 반 국물 반으로 꽤 푸짐하다. 우선 숟가락으로 소국밥의 국물을 떠먹어 봤다. 국물 맛을 보고 "아! 이래서 손님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소뼈와 쇠고기 양지에서 우러난 진한 감칠맛과 은근한 육향 그리고 무의 시원한 맛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푹 삶아진 고기를 결대로 찢어 고기를 씹는 혀 놀림이 부드럽다.
조선 초 문신이었던 유순(柳洵, 1441~1517)은 중국 북경을 다녀 오면서 '十三山途中(십삼산도중)십삼산(十三山)으로 가는 중'광녕(廣寧)에서 수레를 타고 여양역(閭陽驛)에 이르러 국밥을 사먹었다는 내용의 시(詩)가 『동문선(東文選)』에 등장하여 그 일부분만 소개하면
"于彼山南隅(우피산남우)피리소리 들리는 곳이 여양역 我要索湯飯(아요색탕반)내가 국밥을 사먹으려고 聊以停吾車(료이정오거)애오라지 수레를 멈추고 升堂久偃息(승당구언식)마루에 올라 한참 쉬면서 且避畏景舒(차피외경서)뜨거운 햇볕을 피하다가 日夕還命駕(일석환명가)저녁 때 쯤 다시 수레를 타니 凉風來襲予(량풍래습여)서늘한 바람이 내게 닥치네 "
조선 초기 이 시(詩)에서 '국밥'을 '탕반(湯飯)'이라고 했다. 이 탕반이 '국말이 밥'이다. 고문헌을 보면 '장갱(醬羹)'이라는 단어도 자주 등장한다.
성리학의 대가로 예학에 밝았던 조선중기 문신이며 학자인 포저(浦渚) 조익(趙翼, 1579 ~ 1655)은『포저집(浦渚集)』에서'장갱(醬羹)' 즉 장국이라 했다.
큰 가마솥에 장국[醬羹]을 끓여 밥을 뚝배기에 담은 다음 가마솥의 장국을 토렴[退鹽]하는 것을 장국밥이라고 했다.
고려시대 쇠고기 수요증가로 농경에까지 지장을 주게 되자 공민왕은 '금살도감(禁殺都監)'이라는 관청까지 설치해서 소를 보호하려 하였다.
조선은 건국초기 태조는 우금령(牛禁令)을 내렸고 세종 역시 '금살도감(禁殺都監)'을 설치하였다.
허락없이 도축을 하면 장형 100대, 유형삼천리, 몸에 먹물을 새기는 경형(刑) 등의 형벌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조선중기 문신 박세채(朴世采, 1631~1695)의『남계집(南溪集)』에 청장갱(淸醬羹)이 보인다.
태평소국밥. (사진= 김영복 연구가) |
그래서 주로 채소를 넣은 청장갱(淸醬羹)을 끓여 먹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조선 후기 소의 도살금지령을 범한 자에게 부과하는 벌금제도인 우속(牛贖)을 만들었다.
그러나 한번 하면 확실하게 몰입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막을 수 없었다. 조선 후기 문신 겸 주자성리학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년~1689년)은 『우암집(尤庵集)』에서는 "우리나라 풍속은 쇠고기를 상육으로 삼아 이것을 먹지 않으면 죽는 것으로 아니, 소 도살금지령이 내려도 소용이 없다"고 했고, 조선 후기 북학파 학자 박제가(朴齊家·1750∼1805)가 저술한 『북학의(北學議)』에서는 '중국에서는 돼지고기나 양고기를 먹고 건강하며 소의 도살이 금지되어 있으나, 우리나라는 돼지고기나 양고기는 병이 날까 염려스럽다며 기피하여 쇠고기만 먹고 있다'며 쇠고기 선호를 개탄하기도 했다.
나라에서 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이 당시 그래도 느슨한 틈을 타 소를 밀도살해 쇠고기를 먹기도 했던 것 같다.
조선 후기의 문신 김간(金幹 : 1646~1732)이 1766년에 쓴 시문집 『후재집(厚齋集)』에 보니 쇠고기 장국인 육장갱(肉醬羹)이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소국밥이다.
어쩌면 소국밥은 끈질긴 우리민족의 쇠고기 선호사상으로 인해 명맥을 이어 온 한국인의 소올푸드라 할 것이다.
맛있는 소국밥 한그릇 뚝딱하고 육사시미(肉さしみ)에 젓가락을 대 본다.
그런데 육사시미 이름이 맘에 안 든다. 꼭 일본말을 써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오늘 이 육사시미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겠다.
보통 육회 집에 가면 육사시미(肉sashimi:刺身)라는 일본 혼 용어를 쓰는 메뉴가 있다.
육회의 일종이지만 일반적인 육회와는 다르다. 기본적인 개념은 육회와는 달리 쇠고기로 만든 회에 가깝다. 육회는 채 썰어 나오지만 육사시미는 얇게 저며 나온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는 육사시미가 없다. 일본은 생선 회 외에는 쇠고기를 날로 먹지 않는다. 물론 일본식 육회요리라고 하는 `규우니쿠 타타키`가 있다지만 엄밀히 말해 육회로 볼 수 없다.
규우니쿠 타타키는 쇠고기 포를 떠서 겉면을 살짝 익힌 요리로 `규우니쿠`는 우육을 말하는 것이고 `타타키`는 잘게 다진 고기를 말한다. 즉 `샤부샤부`처럼 우육을 편으로 저며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겉면을 익힌 것이다.
육사시미와 태평소국밥. (사진= 김영복 연구가) |
사시미의 본고장이라고 하는 일본은 구마모토현에서는 말고기 육회는 `바사시`라고 부르지만 육회는 우리말 발음인 `유케`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 우리는 육사시미로 부르니 참 어이 상실이다. 물론 외식업자들이 육회와 차별화하기 위해서 궁여지책으로 `육사시미`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추측해 보지만 식생활 문화를 이끌어가야 할 학계 등에서 외식업자들이 채택한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회를 우리는 육회와 어회로 구분한다. 그러나 이것조차 정리가 안 된 채 어회도 회(膾)를 쓰는 오류가 학계의 논문, 기고, 사전 등에 자주 눈에 띈다.
태평내장탕. (사진= 김영복 연구가) |
이 집은 '육사시미'나올 때 참기름장이 나온다. 참기름에 찍어 입에 넣으니 아주 부드럽고 나름 식감이 좋은데, 갑자기 대구 뭉티기가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소의 뒷다리 안쪽 부위인 사태살에 해당하는 처지개살을 두툼하게 썰어 먹는 고기의 형태도 그렇지만 별다른 조미 없이 생고기를 참기름에 찍어 먹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느낌이 든다.
뭉티기는 고기를 뭉텅하게 써는 모양의 의태어로 경상도 방언이다.
어쨌든 대전의 신선한 쇠고기 맛을 뭉티기라 하기도 어색하고 육사시미(肉sashimi:刺身)는 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이 집의 메뉴명을 '저민고기'로 하는 것이 어떨지 제안을 해 본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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