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본부 전문무역상담센터 전문위원·관세사 나지수 |
얼마 전 박사과정으로 수강하고 있는 정치외교학과 수업 중 '가상수(virtual water)'에 대해 토론을 했다. 가상수란 토니 앨런 교수가 1980년대 소개한 개념으로, 제품을 생산·제조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물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커피 125mL를 소비한다면 커피콩이 생산, 유통하는데 필요한 물의 양이 140L기 때문에 커피 한잔에 물 140L를 더 소비하는 것이다. 즉, 우리나라처럼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우는 해외 자원을 대거 끌어다 쓰고 있는 격이다.
비단 수입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생산에 투입되는 하루 물의 양은 65만 톤으로 추정되고, 이 밖에도 데이터 센터, 발전소 등에 사용되는 냉각수 문제도 상당하다. 다시 말해 반도체 등을 수출하면서 엄청난 양의 물을 수출하고 있던 것이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수자원 개발이 잘돼 있어 물 부족 국가까진 아니더라도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되기도 했으며, 이상 기후 현상으로 전 세계가 워터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는 현재 물 안보, 나아가 자원 안보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다른 예로, 2021년 방영된 KBS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에서는 청바지 1개의 탄소 배출량(33kg)은 자동차 이동 거리 111km와 맞먹고, 패션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의 10%를, 폐수의 20%를 발생시킴에도 한해 약 1000억 벌의 옷이 만들어지고 그중 33%는 같은 해에 버려진다고 이야기한다.
생각해보면 꽤 오래전부터 자원 절약, 재활용 등 개인의 자발적 실천을 강조하는 캠페인은 꾸준히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역, 국가 단위 나아가 교역 상대국에도 환경 보호 이행을 강제하고 있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 환경 보호는 전 세계적으로 협력해야 하나, 한편으로 이러한 환경 무역 규제 조치가 새로운 무역장벽이 되고 있다.
최근 EU는 EU로 유입되는 모든 배터리 제품에 탄소발자국, 재활용 이력 등에 대한 정보가 담긴 라벨과 QR코드를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하는 '신배터리법'을 규정했으며, 선진국을 중심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과불화화합물(PFAS) 규제 등 환경 관련 규제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 대상 중에는 우리나라 산업에 널리 사용되고 있으나 대체제를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 생산 및 수출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환경 조치들이 신 무역장벽이 되면서 일부에서는 GATT나 WTO 등의 근간이 되는 자유 무역 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환경 규제를 선도하는 선진국은 GATT 제20조와 같은 협정의 예외 조항을 충족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으며 환경 협정상의 무역 조치는 그 자체로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번 주제를 생각하면서 좀 더 정확한 의미를 찾고자 '친환경 무역'에 대해 검색해봤는데 의외로 공정무역 등 유사한 개념은 있었으나 명확히 이 단어를 지칭하는 정의는 없었다. 하지만 제품을 생산, 수출입하는 전 과정에서 친환경 규제를 충족하는 것이 친환경 무역이라고 본다면, 이미 우리는 친환경 무역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관세를 다루는 사람이기에 환경 영역까지 논하기엔 입장이나 지식적으로나 무리가 있지만, 코앞으로 다가온 친환경 무역 시대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피해를 입지 않길 바라며, 한편으론 이번 기회에 전 세계가 협력해 환경 오염을 막진 못해도 조금이나마 늦추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감히 환경에 대해 언급해본다.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본부 전문무역상담센터 전문위원·관세사 나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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