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귀뒤미디(Aiguille du Midi) 전망대에서 바라본 주변 설산. 오른쪽 구름에 살짝 가려진 가장 높은 산이 몽블랑(4808m)이다. 왼쪽 당나귀 귀처럼 쫑긋 솟은 두 개의 봉우리 중 왼쪽이 그랑드 조라스(Grandes Jorasses·4208m), 오른쪽이 거인의 이빨이란 의미의 당 뒤 제앙(Dent du G?ant·4013m)이다. |
'트레킹'에 앞서 장비를 꾸리는 것도 중요하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삽', '빨랫줄과 집게', '코골이 키트', '침낭 라이너', '바스켓'. |
7월 트레킹을 앞두고 출국 10일 전부터 90ℓ 더플백에 짐을 쌌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임박해서 짐을 꾸렸다가 중요한 걸 빠뜨리는 낭패를 막기 위한 방법이다. 일단 리스트에 올린 장비와 의류를 몽땅 모아놓고 더플백에 욱여넣었다가 불요불급한 것들을 하나씩 제외시키는 방식이다. 포기한 물품 중에는 커피 핸드드립 장비와 스토브(버너), 다운재킷, 접이식 매트리스 등이 있다. 알프스 설산 앞 평원에서 포트에 물을 끓이는 동안 핸드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아 내려 먹는 꿈은 아쉽지만 접기로 했다. 유럽에서 쓰는 이소가스 커넥터까지 직구로 구매하는 등 의욕을 불살랐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천덕꾸러기가 될 성싶다. 경험상 매일 새벽부터 정신없이 동분서주해야 하는 스케줄에선 커피브레이크와 같은 낭만을 즐길 여유가 없다. 다운재킷, 발포매트리스는 무게는 가볍지만 부피가 문제가 됐다. 날짜만큼 준비한 양말과 이너웨어도 빨래를 할 요량으로 개수를 줄였다.
고어텍스 중등산화와 경등산화 각 1족, 판초 우의와 방수 하의, 고어텍스 재킷, 생활방수형 재킷, 바람막이, 스패츠, 등산스틱, 여름·가을용 의류, 구급약품, 헤드랜턴을 챙기니 더플백의 70%가 채워졌다. 나머지는 세면도구, 세제(산장에는 일체 비누가 없음), 티슈, 카메라, 물통 2개, 보조배터리 등 개인용품으로 채워질 것이다. 카메라와 핸드폰, 여권, 지갑 등이 젖지 않도록 넉넉한 크기의 방수팩도 준비했다. 더플백의 무게는 25㎏ 미만으로 잡았다. 일부 빙하지대를 통과하는 것에 대비해 아이젠을 준비했으나 굳이 가져가지 않아도 된단다. 지구온난화의 여파로 7월 하순의 등산로에는 빙하가 많이 녹는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콜 드 발므(Col de Balme)'고개에서 몽블랑(필자 머리위 11시 방향)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김형규 작가 |
출국 1일 전 모든 준비를 끝내고 마음을 가라앉힐 겸 보문산 청년광장을 거닐었다.
7월 하순에 다녀온 투르 뒤 몽블랑(TMB·Tour du Mont Blanc) 트레킹은 4개월 전인 3월에 국내 모 여행사에 의뢰해 항공권과 현지 산장 예약, 현지 가이드 섭외 등을 위임했다. TMB는 6∼9월 여름철에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항공권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서둘러 예약해야 한다. 3월에도 6∼7월 스케줄은 상당수 마감된 상태였다. 실제로 6월에 접어들자 항공권은 3월보다 약 40만 원이 뛰었다. 개별적으로 TMB 일정을 예약하기는 다소 힘들어 보인다. 다른 건 몰라도 산장 예약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백패킹도 생각해봤지만 텐트, 의류, 침낭, 취사도구, 식료품 등을 모두 챙겨가야 한다는 점에서 실현불가능했다. 캠핑은 2-4명이 팀으로 움직여야 수월해질뿐더러 정보가 많은 유럽 현지인에게 유리하다. 국내 몇몇 캠퍼들이 호기롭게 TMB 백패킹에 도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지 제약, 날씨, 보급, 체력 등의 한계 때문인지 완주를 확인한 예는 없는 듯하다.
◇느림과 순백의 '몽블랑 트레킹'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순례길이나 둘레 산길을 여행한다면 자전거만큼 좋은 이동수단이 없다. 물론 시간적 여유가 많다면 자전거보다는 걷기가 나을 수도 있지만 체력이나 시간 절약 측면에선 자전거를 더 치켜세우고 싶다. 다만 자전거는 국내에서는 좋지만 해외로 가져가는 게 문제다. 6년 전 아들과 함께 자전거로 산티아고 순례라이딩(850㎞)을 다녀 온 적이 있다. 지금까지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지만 자전거 운반 때문에 무진 애를 먹었다. 미니벨로인데도 자전거 박스포장은 물론 출국·귀국시 공항까지 운반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마드리드-바르셀로나를 거쳐 산티아고 순례길 출발지까지 SUV차량에 4대의 자전거와 짐을 싣고 4명이 타고 이동했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다음에 해외로 자전거 여행을 나간다면 비용이 들더라도 현지에서 대여할 계획이다.
무릎 관절이 버텨줄 때까지 해외여행은 주로 트레킹으로 도전해볼 작정이다. 이번 트레킹의 경우 함께 할 동료를 물색했지만 모두 난색을 표했다. 60세 전후에 10일 이상 짬을 내고 매일 8시간씩 등산을 해야 하는 일정을 무리없이 소화해내기란 쉽지 않다. 결국 혼자 트레킹할만한 곳을 물색하다보니 TMB가 손안에 쏙 들어왔다.
보통 트레커들 사이에서 회자하는 세계 10대 트레킹(트레일) 코스가 있다. 그중에서 난이도와 위험성이 높고 몇 개월씩 걸리는 아메리카 대륙의 트레일은 언감생심이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버킷리스트에서 빠졌다. 지인들과 협업으로 가거나 출입 허가가 뒤따르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서킷, 북유럽·아프리카의 몇몇 트레킹 코스와 뉴질랜드 밀포드 트레킹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차마고도는 자전거로 다녀올 생각이다. 트레킹이나 자전거 여행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진 촬영, 디테일한 취재 등 글감 찾기에 좋기 때문이다.
◇탈권력·무욕의 글쓰기
#정년 #실업급여 #일자리 #국민연금 #고용지원금 신청.
포털에 '60세'를 검색했더니 뜨는 연관 검색어다. 우리나라에선 60세 정년이 '노동으로부터의 꿀맛 같은 해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연관검색어를 보더라도 퇴직 이후에도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나는 폼나게 살아야지.'
환갑을 맞은 올해부터 나만의 '찐인생'을 살기로 큰소리 쳤지만 뒤가 켕기는 것도 사실이다.
은퇴 이후의 삶이 걱정된다면 적어도 20년 전부터 체력과 전문가적 취미활동을 쌓고, 10년 전부터는 금전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믿는다.
9월부터 중도일보에 매주 게재하는 TMB 역사문화여행기는 몽블랑 둘레길을 걸으면서 문득문득 자신을 일깨웠던 상념과 사색을 되새김하고 몽블랑을 겹겹이 둘러싼 많은 산봉우리를 경외하는 에세이가 될 것이다. 글 속에 탈권력과 무욕의 환희도 함께 은닉했으면 좋겠다. 스멀스멀 불씨를 키우는 노욕에 경종을 울리는 서사가 되길 바라면서…….
김형규/여행작가
김형규 작가가 에귀뒤미디(Aiguille du Midi) 전망대에서 몽블랑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1963년 충남 연기군(세종시)에서 출생했다. 조치원중, 대전대성고를 나와 충북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지방일간지에서 28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가 나와 은퇴 직전까지 4년간 공무원으로 일했다. 틈틈이 자전거 여행 등을 하면서 역사문화 기행기를 연재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김형규의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세종포스트), '김형규의 자전거역사문화기행'(굿모닝충청) 등이 있다. 자전거 동호인에게 잘 알려진 280랠리, 300랠리, 박달재랠리, 영남알프스랠리, 오디랠리, 백두대간 그란폰도 등을 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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