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이 생기기 전에는 원유 수급에 따라 가격이 좌우되고 유업체의 자금 사정에 의해 유성분 성적이 결정되다 보니 낙농가의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조합장은 '당진 낙농가들이 힘을 하나로 모아 농가들을 보호하고 권익을 대변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자'는 운동에 뛰어 들었고 지금까지 오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돌이켜 보면 보람있는 일로 기억하고 있다.
작은 집유조합으로 출발한 당진낙협은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통해 낙농가들이 편리하게 목장을 경영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 왔고 30년이 지난 지금 당진낙협은 낙농산업을 선도하는 대표 조합으로 성장했다.
당진낙협이 눈부신 성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조합원의 참여와 임직원들의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유관기관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대체식품의 도전 등 대변혁의 시대에 당진낙협은 친환경 동물복지형 축산업으로 변화를 이끌어가는 협동조합, 자연과 함께 경종농가와 함께 발전하며 자원순환농업을 완성해 나가는 조합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진낙협은 지난 해 설립 30주년을 맞이했다. 이 조합장은 앞으로 50년을 향해 힘찬 발걸음으로 달려가겠다고 다짐했다. <편집자 주>
당진 TMR 모습. |
▲1988년에 젖소를 사육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고 생산한 우유를 납품하면서 애정을 갖고 동참하게 됐다.
협동조합만이 농가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조합설립을 추진했다. 그 후로 조합 이사로 활동하는 등 조합 일에 적극 나섰다.
결국 모두의 열망과 바람대로 구심체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당진 낙농가들의 대표 조직이라고 하기에는 재정적으로 너무 열악했고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당시 조합원들의 집유량은 고작 16~17t 수준이었고 조합원들의 목장 규모도 영세했다. 집유와 정산을 통해 얻은 수수료로 어렵게 조합 살림을 꾸려나가는 상황이 지속됐다.
낙농 목장을 시작한 20대부터 해외 선진지를 다니며 협동조합의 역할에 대해 눈을 떴다. 그 때부터 '당진낙농축협을 최고의 조합으로 만들겠다'는 패기 하나로 1996년 조합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결국 4년 후인 2000년 조합장 선거에 재출마한 끝에 당진낙협을 맡아 경영하게 됐다. 그때 나이가 서른여덟이었으며 지금까지 7선 조합장으로 일하고 있다.
-조합장이 된 후 역점을 둔 사업은 무엇인가.
▲조합을 맡은 후 역점 사업 중 하나가 국내산 조사료 생산 사업이었다.
1990년대 유럽으로 농업연수를 하러 갔을 때 선진국의 낙농현장을 둘러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목장 주변 대부분이 풀과 조사료로 덮여 있었고 미국 연수에서도 깨달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조사료를 직접 재배하지 않고 우유를 생산하는 농가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젖소의 먹이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서는 국내 낙농업의 미래가없다고 절실히 생각했다.
유럽과 미국의 낙농현장을 둘러보고 양질의 조사료를 직접 재배하면서 젖소의 건강과 우유의 품질을 높이고 생산비를 절감하는 것이 낙농가들의 경쟁력을 높여 나가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했다.
2001년 당진 인근의 유휴 부지를 활용해 시작한 조사료 재배사업은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직원들과 혼연일체가 돼 극복했다. 결국 대호지와 석문간척지를 무대로 대규모 조사료 재배를 현실화했다.
조사료 사업은 조합원들의 생산비 절감에 기여하는 점과 동시에 당진낙협을 대표하는 핵심 경제사업으로 성장하면서 조합 역사는 물론 국내 조사료 생산에서도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는 점에서 자랑스럽고 뜻깊게 생각한다.
남보다 앞서 시작한 조사료 재배사업은 일찌감치 국내산 조사료의 자급기반을 닦으며 1일 생산량 200t 규모의 TMR 사료공장을 짓는 원동력이 됐다.
당진자연세계 모습 |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협동조합 최초로 클린주유소 준공을 시작으로 신용사업 개시, 가축분뇨 공동자원화 시설(당진자연세계)과 당진 TMR 준공, 육성우 목장인 자연으로농장 준공까지 굵직한 사업을 연달아 진행했다.
모든 사업이 마찬가지겠지만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하며 안착하기까지는 전 직원들의 피나는 노력이 수반돼야 하고 여기에는 항상 예상치 못한 난관이 도사리고 있어 이를 극복하는 과정들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1990년 이후 설립한 품목협동조합은 신용사업을 할 수 없도록 명시한 농협법 개정을 위해 10년간 국회와 정부를 좇아 다녔던 기억인 잊혀지지 않는다.
모두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비웃었지만 해낼 수 있다는 신념과 오기로 국회의원들을 줄기차게 설득해 마침내 '품목조합의 신용사업 수행에 관한 특례'가 국회를 통과하면서 신용사업의 문이 열리게 됐다.
-육성우 목장에 대해 설명해 달라.
▲육성우 목장을 통해 조합원들의 노동력과 분뇨 배출은 절감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일이다.
농가들이 착유소 52%, 육성우 48%로 유지하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착유소와 육성우를 같이 놔두면 공간이 좁고 환경도 좋지 않아 육성우를 낙협에서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당초 계획이 육성우 3000마리였으나 1500마리로 줄였고 땅을 30년 동안 임대해 1500마리 육성우를 잘 키우고 있다.
농가들도 육성우를 위탁하니 사육공간이 넓어졌고 환경도 좋아져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당진낙협이 나가야 할 방향은?
▲낙협이 해야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관세 제로화 시대에 조합원들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육성우 목장 사업을 차질없이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갈수록 강화되는 환경 규제 속에서 가축분뇨의 고체 원료화 사업 역시 시급한 과제다.
이밖에 청사 ITC 목장 준공과 유기농 사업 추진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이 모든 사업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낙농가 조합원들이 일한 만큼의 충분한 대가를 얻어 행복하고 잘 사는 여건을 만드는 데 모든 목표와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가축분뇨 사업에 대해 설명해 달라.
▲가축분뇨사업은 꼭 필요하며 분뇨를 자연으로 돌려 조사료 및 작물생산에 활용하고 있지만 아직은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니 시의 지원이 필요하고 조례를 개정해서라도 시 차원에서 관리가 돼야 한다.
현재 하루 처리량은 액비 100t, 퇴비 100t을 처리하고 있으며 260~300t 소화할 수 있고 큰 문제가 없다.
-지난 조합장 선거에서 아슬아슬하게 당선됐는데.
▲3~6선까지 무투표로 당선되다 보니 선거감각을 잃었고 자만했다고 자평한다. 또한 유언비어에 의한 리스크도 선거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조합원들과 손잡고 당진낙협을 발전시키겠다.
당진=박승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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