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사대부고 합창단 '하람'이 7월 18일 교내 강당에서 합창을 통해 2013년 병영체험학습 참사 때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사진=임병안 기자) |
▲바다에 휩쓸린 학생들
2013년 7월 18일 오후 충남 서해안의 모래사장에서 병영체험 학습에 참여한 고등학교 2학년 30여 명이 바다 속으로 휩쓸려 아수라장이 됐다. 인명구조사 또는 수상 레저 자격증도 없는 무자격자가 교관이 되어 병영체험을 시키던 중 무슨 이유에선지 학생들을 바닷속으로 이끌던 중 발생한 일이었다. 가로 10열, 세로 8열로 정렬한 80여 명의 학생들이 바다를 향해 "몇 보 전진"을 외치는 교관을 말에 따라 수심이 허리 정도까지 가장 안쪽의 아이들은 목까지 차는데도 교관은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낯선 군복 차림의 아이들이 그대로 물살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신앙 안에 살며 정의로운 마음을 지닌 진우석, 후배들을 아끼는 따뜻한 선배이자 프로파일러를 꿈꿨던 이병학, 화학자가 돼 난치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싶다던 김동환, 축구 잘하고 성격도 좋아 인기가 많았던 장태인, 공부도 짱 인정도 짱이었던 이준형, 다섯 청춘이 사고 이튿날 빛을 잃을 채 발견됐다. 태안 사설해병대캠프 참사라 명명되었다.
공주사대부고 내에 마련된 추모카페 '다섯손가락' 모습. |
그리고 10년, 2023년 7월 18일 별이 된 다섯 아이들의 부모가 공주사대부고 강당 입구에서 재학생들을 맞이했다. 10년 전 그날도 비가 내리던 궂은 날이었는데, 10주기 추모식이 열리는 날도 운동장도, 강당도 젖어 있었다. 기숙사에서 주말에 아이가 집에 오면 새벽 목욕탕과 해장국을 함께 다녔던 동환이 아버지를 비롯해, 수능을 앞둔 누나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어 친구들에게 받은 응원 메시지로 가득한 롤링 페이퍼와 과자를 포장해 선물했던 병학이의 부모 그리고 베란다 창 너머 펼쳐진 밤하늘의 별자리를 백조자리부터 곧잘 외웠던 아이의 일곱 살 때를 살뜰히 기억하는 준형이의 어머니까지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매년 빠짐없이 진행된 장학금 전달식이 이날도 거행됐다. 시민들이 모아준 부의금으로 오성장학회를 마련해 매년 장학금을 전달한 희생자 부모들은 올해 10주기를 맞아 10명의 재학생에게 학업과 즐거운 교우활동에 도움이 되고자 장학금을 전달했다. 그리고 교내에 마련된 추모관을 함께 관람했다. 2020년 7주기에 마련된 교내 추모관 '다섯손가락'은 희생학생들 기록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요점 정리를 잘해 전교생이 돌려보고, 친구들을 초대해 엄마의 김치찌개 솜씨를 선보인 태인이의 흔적도, 정의롭고 정직한 사람이 되겠노라고, 일기장에도 불의에 맞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적은 우석이도 이곳에 기록되어 후배들을 만나고 있다. 다시는 재난에 마주하지 말라는 의미에서다.
희생자 가족은 416재단과 함께 2013년 참사를 기록한 백서를 발간했다. |
희생학생의 가족은 4·16재단과 함께 '7·18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 백서를 최근 발간했다. 4·16재단은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교훈을 기억하고 생명과 안전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4·16세월호참사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비영리법인이다. 태안 모래사장에서 병영체험학습 참사가 발생한 지 한 해 뒤에 진도 앞바다에서 4·16세월호 참사가 벌어졌고, 다섯손가락 희생학생 부모들은 세월호 유족과 연대했다. 참사가 벌어지고 진상규명이라는 과정이 경찰과 검찰 주도로 이뤄지다 보니 현행법 위반 여부에 초점이 맞춰지고 기소여부가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확보해 검찰의 공소 및 재판 과정에 대응하거나 주체로서 참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섯손가락 희생학생 부모들 역시 스스로 자료를 수집한 결과 진상규명과 책임묻기가 완결되지 않았다고 여기며, 이번 백서를 통해 차근히 설명하고 있다. 학교 측과 학생 수련활동 계약을 체결한 뒤 이를 재위탁한 두 업체 대표들과 당시 교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혐의가 적용되지 않았고, 사고발생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갯골이 정말로 존재했느냐 그리고 구명조끼조차 없이 해양 수련활동을 실시한 업체에 공유수면 사용을 허가한 지자체와 해경에 책임묻기가 이뤄지지 않은 문제를 백서를 통해 차근히 설명하고 있다. 특히, 학교가 교육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학교로 떠난 학생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며, 학교가 주체된 사회적 참사라고 10년만에 백서를 남긴 이유를 강조하고 있다.
▲재난 피해자 권리옹호 연대
다섯손가락 희생학생 부모들은 재난 피해자 가족들과 연대를 이어갈 예정이다. 지난 2014년 8월 재난안전가족협의회가 출범할 때 희생자 가족 대표 이후식 씨 등이 연대했다. 뜻하지 않은 인명피해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달려가 올바른 초동대응이 이뤄질 수 있도록 앞장서자는 취지다. 이 같은 연대활동의 연장선에서 2019년 공주시에 있는 충남교육청 안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안전체험관이 완공됐다. 각종 학생안전사고 사례가 기록·전시되었고, 4개 체험관과 18개 체험실을 운영해 병영체험학습 참사 같은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과 체험하자는 목적에서다. 그리고 2014년 연안사고 예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병영체험학습 참사가 벌어진 7월 18일을 연안사고 안전의 날로 지정해 연안안전을 되새기는 날로 삼고 있다. 법를 제정을 통해 민간단체에서 해병대캠프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학교안전법도 신설해 이동 숙박하는 청소년 활동은 신고를 의무화했다. 또 계획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혹은 거짓으로 신고한 뒤 연안체험활동을 실시할 경우에는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하고, 참가자가 사고를 당했을 때 이를 배상하기 위한 보험에도 가입하도록 의무화됐다. 우리 학생들이 병영체험학습에서 참사를 당했을 때 보트타기 등 수상레저 활동 중 사망으로 볼 수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끝내 거부한 사례가 있어서다. 병영체험학습 참사 가족들은 올 연말께 가칭 재난 피해자 권리옹호센터를 시작한다. 재난 직후 관계기관과 맺었던 약속과 서면 합의사항이 실은 휴지조각처럼 법률적 의무가 없는 것이었고, 진상규명이 피해자 측을 배제한 채 진행된 전철을 다른 누군가 반복하지 않도록 돕겠다는 뜻이다.
'7·18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 유가족 대표 이후식 씨는 "백서를 발간함으로 지난 어리석음에 대한 반성이자, 잊지 않겠다는 외침, 그리고 미래 안전사회를 위한 다짐을 담았다"라며 "유족들은 재난피해자권리옹호센터를 추진해 재난 피해자를 돕고 오늘과 내일 안전한 삶이 지켜지도록 멈추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10주기를 기억하는 추모식이 7월 18일 공주사대부고 강당에서 윤현수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과 학생들 주최로 개최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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