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6·25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 안장식에서 유족이 영현에 헌화하고 있다. (사진= 이성희 기자) |
나라를 지키기 위해 6·25 전쟁에 참전했던 고(故) 태재명(1925년생) 용사는 73년이 지나서야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당시 9살이던 태화연(81)어르신은 오빠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20살 막 성인이 됐던 오빠(고 태재명)는 "오라버니 걱정말고, 꼭 돌아올게"라며 전쟁에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웃으며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두 달도 채 안 돼 전쟁터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에 가족들의 억장은 무너졌다.
전쟁이 끝나면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오빠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못 찾을 수 없는데, 전사했다는 사람이 우리 오빠가 아닐 수 있지 않을까?", "혹시 북한으로 넘어가 살아계시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렀지만 동생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가족의 유전자를 등록하면 오빠를 찾을 기회가 있다는 말에 2020년 DNA를 등록하기도 했다.
그녀의 간절함이 통한 것일까, 작년 말 드디어 오빠를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녀와 발굴된 유해의 유전자가 일치했고, 그토록 찾았던 오빠가 맞았다.
태화연 어르신은 "살아 만나면 더 좋았겠지만, 이렇게라도 오빠를 찾아 모실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기쁘다"라며 "그동안 살면서 이렇게 기분이 좋았던 적이 없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6·25 전쟁 전사가 유해가 70여 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22일 육군은 국립 대전현충원과 서울현충원에서 각각 6·25 전쟁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 안장식을 거행했다.
이날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전사자는 모두 3명이다. 고 오문교 이등 중사는 1952년 화살머리고지 전투에 참전했다가 1953년 7월 10일 23세 나이로 전사했다. 전쟁 당시 두 자녀를 두고 집을 떠나왔다던 고 최봉근 일병은 1950년 10월 1일 춘천-화천 진격전에서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사단에 소속됐던 고 태재명 일병은 1950년 안강 전투에서 전사했고, 당시 그의 나이는 25세였다.
이날 안장된 전사자들은 국방부 유해발굴단에 등록된 유가족들의 DNA와 대조한 뒤 모두 신원 확인을 마치고 국가유공자로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다.
고 최봉근 일병의 딸 최세희(가명)씨는 "유전자 검사를 받았을 때 못 찾을 거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런데 정말 아버지를 찾았다니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라며 "3살 때 돌아가셨지만 항상 그리웠던 아버지를 이렇게라도 뵐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wldbs120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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