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구 대전여자고등학교 운동장에 일제시대 침략성을 보여주는 '황국신민서사비'가 쓰러진 채 전시되고 있다. |
이런 괴상한 글씨를 새긴 바위를 발견한 대전의 한 학교가 이를 흙에 쓰러트려 놓고 일부만 내보인 채, 일본 제국주의 치욕을 씻는 교육현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한독립을 외친 3·1절에 일장기를 내건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지난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다시 묻고 있다.
2일 대전 동구 대전여자고등학교 운동장 한 켠에 길이 1m쯤 되어 보이는 비석이 쓰러지듯 누워있었다. 비석을 소개하는 표지판에는 '황국신민서사비'라며 비석의 실체를 안내하고 "일본 제국주의 침략성과 본질을 파악해 올바른 역사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자 한다"며 의도를 설명했다. 표지판의 설명처럼 대전여고 운동장에서는 2019년 학교 건물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화단 속에 엎어진 상태로 묻힌 바위를 발견돼 교내에 보관하던 것을 2022년 12월부터 쓰러트린 채 전시를 시작했다. '황국신민서사비'라고 불리는 것으로 대전여고의 전신인 대전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가 이곳에 1937년 개교할 때 학생들이 출입하는 정문 옆에 세워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가 황국신민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내선일체를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학교를 오가는 이들이 맹세문을 외우고 낭송하도록 했다. 당시 제작된 서사비는 아동을 위한 것과 성인을 위한 것이 있었는데, 대전여고에서 발견된 것은 성인을 대상으로 제작된 비문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의 힘을 키워서 황도를 선양하자" 등이다. 앞서 1995년 9월 산내초등학교 운동장에서도 황국신민서사지주가 발견돼 1997년 한밭교육박물관으로 옮겨 담장 밑에 쓰러트린 채 지금껏 전시하고 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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