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6일 오전 7시 39분께 대전 현대아울렛 지하 1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로 인해 당시 근무하던 관계자 7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진=이성희 기자) |
8명의 사상자를 낳은 대전 현대 아울렛 화재. 사건이 발생한 지 3개월 만에 발표된 대전경찰청의 수사 결과에서 여지없이 '화재 수신기'가 주요하게 다뤄졌다. 화재 수신기는 화재 발생 여부를 구역별로 감지해 표시등과 경종을 자동으로 울림으로써 안전하게 대피하게 해주는 장치다.
현대 아울렛에 설치된 화재 수신기는 화재를 감지해 알리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 발생 지점 천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를 작동시키고, 보안상의 이유로 상시 잠금 상태가 유지되는 출입구를 자동 개방하는 등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또, 스프링클러에 사용될 소화수 탱크로리 수위를 수시로 모니터하고, 기계 작동 일련의 모든 과정을 기억하는 기능을 가진 'R형' 수신기였다.
그러나 국과수 감식 결과 9월 26일 오전 7시 39분께 지하주차장에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수신기는 꺼져있었다. 이 때문에 하역장 초기 화재 현장에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아 초기 진화를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됐다. 또, 근로자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개문 됐어야 할 대피로 11곳 중에 10곳이 여전히 잠긴 상태였다. 연기를 배출시키는 배연 장치를 비롯해 엘리베이터 비상 정지 등 수신기에 의해 조작되는 기능이 멈췄다.
사건 당시 화재 수신기가 왜 꺼져 있었는지에 대한 결과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다만, 경찰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화재 수신기를 꺼 놓았고 단순 오작동 우려로 기기를 멈췄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신속한 대피와 대처를 가능하게 하고 각종 소방시설과 연동되는 '두뇌' 역할을 하는 화재 수신기. 그러나 누군가의 안전불감증으로 뇌의 기능은 멈췄고 당시 지하 1층에 있던 노동자들은 뜨거운 불길과 어둠 속에서 갇히게 됐다.
인세진 우송대학교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화재 수신기를 끄는 것 자체가 소방법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법을 넘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꺼버린 것이다"라며 "단순 오작동의 이유로 너무 화재 수신기 작동을 정지시키는데, 이는 소방 시설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않은 너무도 잘못된 행동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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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 시설 차단 문제는 큰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어김없이 지적된다. 단순 오작동의 불편함으로 수신기를 고의로 끄는 바람에 인명피해 등 대형 화재가 발생한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2020년 7월 21일 오전 8시 29분께 경기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 소재 SLC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5명이 숨지고 9명이 중상을 입었다. 재 당시 스프링클러와 방화 셔터가 작동하지 않아 인명피해를 키웠다. 경찰 조사 결과 물류센터 관리 업체 측이 '오작동이 잦다'라는 이유로 화재 수신기를 꺼버렸던 것. 이로 인해 불이 났음에도 화재 수신기는 작동하지 못했던 것이다. 안전 관리 감독 업무를 어긴 물류센터 관계자 5명은 징역형과 금고형의 집행유예가 내려졌다.
2021년 8월 11일 차량 666대가 불에 탔던 천안 A 아파트 주차장 화재 당시 소방시설이 인위적으로 차단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화재가 발생한 오후 11시 8분께 해당 아파트 지하 2층에 있던 화재 감지기를 통해 화재 발생 신호가 인지됐으나 8초 후 소방설비 전체가 꺼졌다. 최초 화재 감시 후 5분이 지나서야 전체 설비가 정상화됐고 화재 감지 9분 후인 11시 18분부터 소화 펌프가 가동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사고 당일 관리자는 화재를 감지한 뒤 울어대는 경보를 오작동으로 생각하고 소방시설 전체를 고의로 정지시켰다. 당시 한 달에 두세 차례 오작동이 발생해 주민들의 민원이 잦았던 만큼 화재 당시에도 이같이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2019년 2월 대구의 한 사우나에서 발생한 화재로 3명이 숨지고 88명이 다쳤다. 앞서 2018년 11월 7명이 숨진 국일 고시원 화재도 마찬가지다. "오작동이겠지"라며 끄는 소방 시설. 이러한 안일한 생 생각으로 꺼진 화재 수신기는 지금까지 수많은 대형 화재를 만들어 오고 있다
9월 28일 대전 현대프리미엄 아울렛 화재 현장에서 최초 화재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지점에 있던 차량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사진=이성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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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원인을 3개월간 조사한 대전경찰이 손끝으로 가리킨 것은 발화지점인 지하 1층 하역장에 쌓여 있던 폐박스·폐종이다.
당시 1t 냉동탑차가 시동이 켜진 채 정차돼 있었고 DPF(매연저감장치)가 작동되면서 고온의 배기가스가 배출됐는데, 이때 박스 적재물과 직접 닿으면서 불이 붙었다는 게 조사 결과다.
DPF는 디젤 엔진에서 배출되는 매연을 고온으로 제거하는 장치로, 이때 배기구도 연결돼 있어 고열이 된다. DPF가 작동될 때 차량에서 배출되는 배기가스는 최대 600~700도까지 오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DPF의 열기가 불이 생성될 정도로 높은 온도까지 올라 화재가 충분히 발생할 순 있으나, 차량 주변에 가연성 물질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번 현대 아웃렛 대전점 화재로 DPF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으나, DPF 작동 시 차량이 내뿜는 높은 온도의 배기가스만으로는 불이 발생하지 않는다. 차량에 부착된 DPF가 주변 가연성 물질과 닿지 않도록 관리한다면 화재를 예방할 수 있다. 결국, 이번 화재는 지하 1층에 종이 박스가 놓여 있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DPF가 부착된 디젤 차량에서 화재가 종종 발생하곤 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변에 있던 잔디나 종이 등 가연성 물질과 접촉하면서 불이 난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며 "최근 생산된 DPF에는 가연성 물질과 닿지 않도록 덮개가 씌워져 나오는데 이번 화재가 발생한 차량은 이러한 덮개가 없던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wldbs120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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