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뱅크) |
올해 12살이 된 현우(가명·대전 동구)는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신세다. 현우의 부모는 베트남에서 온 이주노동자로, 비자 기한이 끝난 뒤에도 한국에 남아 일을 하는 불법 체류자이기 때문이다. 현우는 베트남 대사관과 한국으로부터 출생신고를 거부당했다. 건강보험제도 상 미등록 이주 아동은 체류 자격으로 인해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도 없다. 외국인 의료 수가까지 적용되다 보니 치료비가 한국 국적을 가진 일반 국민보다 최소 2배 이상 내야 한다.
현우는 "어떤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그러니까 왜 남의 나라에 와서 고생하냐,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라고요"라며 "저는 한국인 이름을 가지고 있고 친구들은 다 한국인인데, 저는 그럼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라고 질문했다.
미등록 이주 아동은 국내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법적 보호와 의료 혜택에서 배제되면서 기본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는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났음에도 한국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되지 못하고, 체류 자격으로 인해 건강보험조차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4일 취재 결과 대전 지역 미등록 이주 아동은 44명으로 확인됐다. 불법체류자 신분을 들킬까 봐 부모와 함께 숨어버렸을 가능성이 커 현재 정확한 실태 파악은 어려운 상황.
미등록 이주 아동은 국내 체류 자격이 없는 외국인 부모가 한국에서 낳거나 데려온 자녀다. 불법 체류 신분으론 외국인 등록이 어렵고, 현행 가족법상 외국인은 출생신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미등록 이주 아동이라 불리고 있다.
현재 한국 국적을 받지 못한 아동은 출생신고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이다. 한국은 모든 아동이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한다는 UN아동권리협약에 가입돼 있어 유엔 산하 위원회는 8차례 정부에 관련법 조항 마련을 권고했지만, 입법화 움직임은 더딘 상태다.
특히, 국내에서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아동만을 보호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미등록 이주 아동들은 의료 지원에서 차별받고 있다. 치료비 부담과 신분 노출 위험으로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지자 지역 의료진들은 이들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녹색병원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미등록 이주 아동을 위한 의료비 지원 사업을 2021년 4월부터 진행하고 있다. 대전에서도 대덕구의 한 치과에서 해당 사업에 동참해 현재까지 21건의 치료를 도왔다. 매 의료비의 80%는 후원기관인 금융산업공익재단이 지원, 20% 해당 의료기관에서 지원한다.
대전 외국인 사랑의 진료소 봉사 단체에서도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지역 치과·내과·한방·외과 등 의료진들로 구성된 해당 단체는 치료가 필요한 미등록 이주 아동 무료 진료와 예방접종, 의료비 지원 등을 통해 아이들의 의료권을 보장하고 있다.
송주희 대전외국인 주민 통합지원센터 팀장은 "2021년부터 해당 봉사 단체로 10명의 아이를 연계했다. 최근에는 단체에서 아이들에게 무료로 독감 예방 접종을 해주기도 했다"라며 "남모르게 아이들을 돕고 있는 의료진이 많다. 이들은 부모의 잘잘못을 떠나 아이 존재 자체의 소중함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wldbs120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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