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대전 인쇄인들이 일을 하고 있다. 출처=대전찰칵. |
4. 인쇄거리 전성기를 추억하는 사람들
둔산 신시가지가 활성화되기 전,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 대전의 번화가는 동구 삼성동·중동·정동 일대의 인쇄거리였다. 지금은 낡은 건물에 재개발·재건축을 앞두고 스산한 모습이지만 당시엔 늦은 밤에도 식당과 술집에 젊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유흥을 즐기는 시민들 한편에는 인쇄인들이 야근을 하며 거리를 밝혔다. 당시엔 인쇄물량이 많아 밤에도 불을 켜고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탕공장 의뢰를 받아 사탕봉지를 인쇄했는데 대금으로 한 자루 안에 동전을 가득 채워 받은 적도 있어요." 대전 인쇄거리를 지키는 이조희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현금밖에 없었던 시절, 소비자가 사탕을 사기 위해 낸 동전을 인쇄대금으로 그대로 받은 것이다. 처음 컬러 인쇄가 나왔을 때는 부푼 마음이었다. "당시엔 이메일이 없어 편지지를 많이 썼는데 처음 컬러 편지지가 나왔을 때 인쇄인들이 다 같이 즐거워했죠. 연말이면 연하장, 연초면 달력을 인쇄하느라 바빴어요." 당시엔 인쇄소에도 활기가 넘쳤다. "그때는 인력도 많고 배우려는 사람도 많았어요. 삼겹살 비계가 먼지를 씻어준다고 해서 동료들과 삼겹살하고 수육도 많이 먹으러 갔죠. 인쇄작업을 하면 먼지가 많이 나오거든요." 이 씨는 과거를 회상하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지금은 자동화가 돼 한 두명의 사람이 큰 기계를 관리해요. 배우려는 사람도 없어 애로사항도 많고 인쇄가격도 몇 십 년 전과 비슷할 정도로 박하죠."
1976년 대전 인쇄소 '형세옵셋인쇄사' 모습. 출처=대전찰칵. |
1976년 대전 인쇄인이 작업을 하고 있다. 출처=대전찰칵. |
이봉호 대전인쇄조합 수석이사는 인쇄거리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방안이 있다고 했다. "인쇄거리가 다시 활성화될 방법은 세종시 인쇄 물량을 흡수하는 거예요" 그는 세종정부청사가 입주하면 늘어난 인쇄 수요를 대전에서 흡수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는 서울 20여 군데 업체가 세종 아파트에 사업자를 내놓고 서울로 물량을 보내는 식으로 세종 인쇄 물량을 흡수하고 있지만 규제할 방법이 없다. "세종 물량의 10%만 가져와도 대전 인쇄업자들에게 큰 힘이 될 텐데 정부청사에 출입도 못하게 해서 대전인쇄인들은 들어갈 틈이 없어요." 이 이사는 안타까운 현실을 전하며 한탄했다. "인건비·재료비가 올라 대전 인쇄인들은 간신히 영업을 유지하고 있어요. 청사 출입증 한 두 장이라도 있으면 판로를 개척해 상생할 수 있을 텐데 정말 속상합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이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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