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에 없는 대전충남史] 무령왕릉 침수위기 딛고 유물지키기 운동 벌여

[검색에 없는 대전충남史] 무령왕릉 침수위기 딛고 유물지키기 운동 벌여

  • 승인 2021-10-23 20:45
  • 수정 2021-10-27 20:35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컷-검색에





1971년 7월 7일자 단신보도로 세상에 알려

왕릉 직접 보고자 전국에서 1만명 찾아와

유물 일부 서울로 반출돼 주민들 반대시위

 

무령왕릉(국립문화재연구소)

1971년 7월 7일자 '백제시대 전축고적 발견'이라는 단신 기사에서 시작된 무령왕릉 발굴 소식은 전국을 흥분시켰다. 1500년 전의 백제왕과 왕비의 합장무덤의 발견은 패망의 상처를 지닌 백제의 후예에게 약손에 가까웠다. 무령왕릉 발굴의 첫 소식을 전한 때부터 장맛비에 침수위기를 딛고, 서울 반출에 반대해 유물 지키기에 나선 역사를 돌아본다. <편집자주>

▲'백제시대 전축발견' 첫 보도
1971년 7월 7일 중도일보에 게재된 기사 한 꼭지가 20세기 한국고고학계와 고대사학계를 뒤흔든 대발견의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라고 지역사회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날 7면에 게재된 300자 남짓의 기사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백제시대의 전축고적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담았고, 백제 제25대 무령왕와 왕비를 합장한 왕릉 발굴 소식을 전한 첫 뉴스였다. '백제시대의 전축발견'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백제왕릉 보수공사중 또 백제시대의 전축고적이 발굴돼 학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며 "6호분 왕릉 북쪽벽 3m 뒤 암거작업 중 발견됐으며 6호분의 연도입구와 동일한 양식의 유구(遺構·건축양식을 알 수 있는 자취)"라며 상당히 구체적 정황을 세상에 타전했다. 또 "공주군당국은 이를 문화재관리국에 보고, 중앙의 지시가 내릴 때까지 공사를 중단하고 현장보존을 위해 경찰에 경비를 의뢰했다"라며 긴박한 분위를 타전했다. 한국일보가 7월 8일자 '새 백제왕릉 발굴'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전에 대전과 충남에서는 중도일보 기사를 통해 새로운 전축고적의 발굴 사실을 먼저 파악할 수 있었다.
 

무령왈응
1971년 7월 7일자 무령왕릉 발견 첫 기사(사진 오른쪽)와 발굴소식을 담은 당시 지면.

▲장맛비 침수 위기를 딛고

공주 송산리 고분에 장마를 대비한 배수로 개설 공사 중에 무령왕릉을 발견했으나, 자칫 무덤 내부가 장맛비에 침수될 위기가 있었다. 1978년 7월 8일자 중도일보는 날씨 예보 기사를 통해 '충남지방에 폭풍주의보'를 알리고 장마전선에 돌입한 충남지방에 전날 오전을 기해 호우주의보가 발효돼 50~100㎜ 큰비가 내린다는 소식을 전했다. 7일은 흙 속에 감춰있던 무령왕릉의 입구가 밖으로 드러난 때로 무덤 입구가 드러나도록 땅을 깊이 팠으나 배수로는 없었다. 앞서 5일 오후 2시께 송산리 고분군에서 배수로 공사를 진행하던 삼남건업 인부가 흙을 파던 중 전돌(벽돌)을 발견한 게 계기가 되어 새 왕릉이 발견됐는데 흙 속에서 찾은 벽돌 몇 장으로는 땅 아래에 묻힌 게 무엇인 지 짐작할 수 었었다. 김태식 작가의 '직설 무령왕릉'에 따르면 김영배 국립박물관 공주분관장이 현장에 먼저 도착해 전돌이 발견된 현장을 계속 파 내려갔으나 새로운 고분의 일부분인지 바로 앞쪽의 6호분 관련 시설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날은 해가 저물었다. 다음날 김영배 공주분관장과 안승주 공주사범대 교수, 박용진 공주교육대 교수 그리고 문화재관리국 윤홍로가 합류해 흙을 더 파내어 아치형으로 생긴 벽돌무덤을 완전히 노출시켜서야 무덤방 입구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윤홍로는 추가 발굴을 중단시키고 문화재관리국에 상황을 보고해 발굴단 파견을 요청한 게 6일 오후였고, 문화재연구실의 학예연구관인 이호관을 필두로 1차 발굴단이 공주에 도착한 게 7일 오전이었다. 발굴에 앞서 무덤 입구가 드러나도록 오후 늦게까지 땅을 깊이 팠으나 미처 배수로를 만들지 못해 갑자기 쏟아진 장맛비에 구덩이에 물이 깊이 고였다. 자칫 무령왕릉 안쪽으로 빗물이 역류해 들어갈 것만 같은 상황에서 발굴단은 이미 숙소로 철수한 상태였다. '직설 무령왕릉'은 김원룡이 쓴 무령왕릉 발굴기와 삼남건업 현장소장 김영일의 인터뷰를 인용해 "문화재과장 장인기와 인부를이 철야작업으로 오후 11시 30분께 배수로를 연결하고서야 빗물이 왕릉 안으로 유입되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가루베 지온 도굴을 피해
무령왕릉이 도굴의 피해를 입지 않고 모든 유물을 그대로 보존한 상태서 발견되면서 전국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일제강점기 공주에서 수많은 왕릉급 고분에 손을 댄 가루베 지온(輕部慈恩, 1897~1970)의 도굴 피해를 입지 않은 온전한 형태라는 게 고고학계의 흥분을 가열시켰다. 가루베 지온이 1927년 1월 공주공립고등보통학교(공주고보)에 일본어 교사직을 시작해 패망을 맞아 한국을 떠날 때까지 손을 댄 유적만 1000여 곳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발굴한 송산리 6호분은 언제였는지 알 수 없지만 도굴되어 내부에서 유물이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직설 무령왕릉'에서는 "송산리 6호분은 사신도가 있고 크기는 물론 무덤 구조까지 전축분으로 무령왕릉을 빼다 박았다는 점에서 무령왕릉만큼이나 많은 유물이 쏟아졌을 법도 한데 지금 남아 있는 유물은 단 1점도 없다"며 "가루베는 조선총독부 조사단에 발견 '당시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말했으나 중요한 유물들을 빼돌렸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밝혔다. 당시 미군정을 통해 일본에 연락해 백제의 유물을 찾아오려고 했으나 그는 가져간 일이 없다고 했다. 가루베는 한일외교 정상화를 계기로 1967년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방한해 서울을 둘러본 사실이 있다. 이맘때 중도일보에서도 패망 후 일본으로 돌아간 일인들이 방한해 충청지역을 관광하고 있음을 전하는 기사가 여럿 관찰된다. 1965년 7월 '현해탄 넘어 충남을 찾는 일본인 물결' 제목의 기사에서는 대전과 강경, 서천, 보령, 연기군 등을 방문한 일본 경제인들 소식을 타전했다. 강경면을 방문한 일인을 소개한 기사는 "그들은 강경면에 시계를 기증하였으나, 이날 모인 인사들은 주체성을 살리며 과히 신통치않게 대하였고, 자기들의 조상묘는 8.15 후 파헤쳐 지금은 밭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분이 상당히 나빴던 것이다"라며 일본인을 맞는 주민들의 감정을 표현했다. 가루베가 1970년 10월 폐렴으로 일본에서 사망하고 그의 유가족은 2006년 공주박물관에 백제유물 4점을 기증했는데 연꽃무의 기와 4점으로 그중에서도 2점은 조각이다.

▲발굴된 유물을 서울로?
공주에서 무령왕릉 발굴소식이 신문을 통해 타전되면서 송산리 고분 일대는 찾아오는 이들로 큰 혼잡을 빚었다. 중도일보 7월 10일자 보도를 보면, '흥분으로 들뜬 공주, 1만여 인파 길메워'라는 기사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1만여 인파로 금성동 송산리 고분군으로 통하는 길은 꽉메워졌다"고 소식을 전했다. 가설지붕을 설치하고 입구를 폐쇄한 공주박물관 주변에도 많은 인파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기사에서 "이 지방의 왕릉이 이미 도굴돼 텅비어 있는 것뿐으로 실제 왕릉 발굴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라고 많은 인파가 모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와중에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유물 20여 점이 서울국립박물관으로 옮겨진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공주를 비롯한 충남에서는 문화재 지키기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한국일보 7월 11일자 신문을 보면 "금제관식 2점, 금목걸이 1점, 금귀고리 6점, 은제팔찌 1점 등 모두 20여 점의 유물이 서울로 옮겨졌다"고 타전했다. 또 '직설 무령왕릉'이 인용한 김원룡의 '한국고고학과 나'라는 글에서 "왕릉출토 금제 장신구를 들고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갔을 때 박 대통령은 왕비의 팔찌를 들고 '이게 순금인가'하면서 두 손으로 쥐고 가운데를 휘어보는 것이다"라고 당시를 기록으로 남겼다.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유물이 청와대를 비롯해 서울국립박물관으로 옮겨진 소식이 전해진 12일 중도일보는 사설을 통해 "공주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백제의 왕도였던 공주에 보존하지 않고 만일 중앙 또는 타지로 반출코자한다면 이 고장으로서는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공주와 충남도민들은 13일 오후 2시 중고생 150명이 낀 공주민 1만명이 공주분관 앞에 집결해 농성을 벌이고 국보는 우리 곁을 떠날 수 없다고 구호를 외쳤다. 또 14일에는 야간 통행금지 위반을 감수하고 많은 주민들이 공주분관 앞에 모여 밤이 깊도록 시위를 벌였으며, 14일 오전에는 유물을 싣고 서울로 떠나려는 트럭 앞을 가로막았다. 급기야 문화공보부 윤주영 장관이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무령왕릉 출토 유물을 서울로 옮기려는 것은 항구적 보존을 위한 방편"이라고 해명했고,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도 "보존처리 후 무령왕릉 유물을 공주에 돌려주겠다"는 약속이 있은 후 유물을 실은 트럭을 서울로 출발할 수 있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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