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서적 보물찾기·책 추천도…레트로 감성에 인기 끌 요인 '충분'
문헌·향토지·고전을 찾으러 오는 단골 많아..90년대엔 대하소설 인기
대전 동구 원동 헌책방 거리. |
광도식씨(77세)에게 헌책방 거리는 그의 보물 창고다.
이제는 절판돼 쉽게 시중에서 구할수 없는 책들이나 여러 사람의 손때와 함께 세월을 보낸 소설책, 그때 그 시절 아이돌 사진이 실린 잡지까지 헌책방에 빼곡히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면, 광씨의 마음도 부풀어 오른다.
이날 광씨는 상용 한자판을 사러 헌책방을 찾았다. 요새 들어 깜빡깜빡하는 기억력과 함께 한자의 음과 뜻이 드문 드문 기억이 나질 않기 때문이다.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30년전에 출간된 상용한자책이 얼굴을 내민다.
광씨는 책 위아래로 쌓인 먼지를 털고 이내 책안을 찬찬히 훑어 봤다.
작은 낙서 자국은 있지만, 이만하면 쓸만하다.
"얼마?"라고 붇는 광씨에게 헌 책방 주인은 손가락 두개를 들어 흔들었다.
검은 비닐 봉투에 광 씨에 건넨 2000원 대신 헌책방 주인은 상용한자책을 넣어 건넸다.
광 씨는 "헌책방 거리는 서점에는 구할 수 없는 책을 사러 가끔 들린다"며 "대부분 오래돼 읽기조차 어려운 책이지만, 일부 책의 경우 그 시절의 그 책이 아니면 당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 많아 역사를 이해하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헌책방을 찾은 한 손님이 책을 고르고 있다. |
동구 원동 메가프라자 1층을 중심으로 모여있는 헌책방 거리다.
우리나라에서 헌책방 거리는 6.25와 궤를 같이 한다.
한국전쟁 후 황페화된 도시에 주인을 잃은 헌책들이 많아지면서 그 책을 파는 것으로 헌책방 골목이 시작됐다.
부산 보수동, 광주 동구, 대구역 지하 헌책방 골목이 모두 그렇게 형성됐다.
대전의 헌책방 거리는 1975년 원동 국민학교를 부근에 형성된 노점이 태초다. 그 이듬해 1976년에 중앙시장 A동에 입주했다.
이 헌책방 거리에서 제일 오래된 헌책방은 '신문당 서점'으로 추정된다.
대전의 한 헌책방 내부. |
헤아릴수 없을 만큼 많은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1980년대에는 학생들을 상대로 교과서가 주로 팔렸다. 다른 도시에서 온 학생이 교과서를 교환해 가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장길산', '토지' 등 대하 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10권, 16권의 대하소설집을 한번에 구입하기는 어려웠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권씩 한권씩 헌책방에 책이 나오면 또 한권씩 한권씩 책을 사가는 손님들이 많았다.
요즘은 온라인 서점이 인기를 끌면서 헌책방 경기도 예전같지 않다.
코로나 19로 손때 묻은 헌책방을 꺼리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옛날 책을 찾으러 오는 단골 손님은 꾸준하다.
역사 연구와 고증을 위해 일반 서점에는 팔지 않는 문헌·향토지·고전을 찾으러 오는 사람도 많다.
정년퇴직한 교수가 학교 도서관에서 받아주지 않는 책을 기증하기도 한다.
41년째 헌책방거리에서 고려당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장세철씨는학생들을 가르치는 기분으로 취미로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북큐레이션(북과 큐레이션의 합성어인 '북큐레이션'은 특정한 주제에 맞는 여러 책을 선별해 독자에게 제안하는 것을 말하는 신조어)서비스도 제공하는 장 씨는 "책을 추천하기 위해선 외국어도 알아야 하고 한문도 읽을 줄 알아야한다"며 "손님에게 책을 추천해주고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손님에겐 책을 주기도 하고 논문을 쓰는 후배들을 위해 기증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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