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미국 빅터음반회사에서 충북 청주 국악 명인 박팔괘의 가야금병창 수궁가 중 '토끼 화상' SP음반을 취입해 발매한 기록.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
본보 10년간의 취재기록 결과 충북 중부 4군(염계달, 최낭청, 김제철, 김봉학)은 이처럼 국악의 성지로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전라도 명창들에 대한 해당 지자체의 활발한 추모 사업 등에 비하면 충북의 옛 명창들은 상대적으로 부각이 안 돼 초라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충북 명창들은 국악 역사에서 큰 획을 그었던 것은 분명하다.
중부 4군 뿐만이 아니다. 청주지역 명창들의 활약도 돋보인다. 무엇보다 국악계에 드러나지 않았던 '청주 명창 발굴사업'이 절실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청주지역 대표적인 소리꾼은 이창운과 박팔괘 명창이다.
박팔괘(1882~1940년) 명창은 학계에서 크게 다룰 만큼 중요한 인물로 떠오르지만, 이창운은 사실 숨은 판소리 고수(高手)인데도, 학계에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던 명창 중 한 명이다. 이번 보도가 그에 대한 첫 언론 노출일 것이다. 그에 대한 실증 자료가 부족했지만, 무엇보다 국악계와 자치단체가 손을 놨던 게 가장 큰 원인이다. 따라서 국악계와 향토사학자 등이 합동으로 발굴사업을 펼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면 이창운은 어떤 인물일까. 먼저 그는 중고제 판소리 명창이었다.
정노식 저서 '조선창극사'(1940년) 충북 청원군 문의면 중고제 판소리 명창 이창운 관련 기록.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
정노식 저서 '조선창극사'(114~115쪽)에 보면 이창운의 고향은 '충청도 문의'로 기록돼 있다. 이 기록의 지역은 현재 충북 청주시 문의면(옛 청원군)을 말한다. '충청제(忠淸制)'라는 독자적인 산조가락을 만들었던 박팔괘 명인도 충북 청원 출신이다. 당시엔 청원군이었지만 현재는 청주시에 속한다. 이창운과 박팔괘는 같은 고향 선후배 사람이다. 그래서 후배인 박팔괘가 선배 이창운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국악계의 설명이다.
시대별로 보면 박유전→이날치→이창운→이동백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장기는 '새타령'이다. 이동백과 김창룡이 이창운의 적벽가 중 '새타령'을 방창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이런 점에서 이동백·김창룡이 선배인 이창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국악학자)은 "새타령을 가장 잘 불렀던 인물이 시대별로 보면 박유전, 이날치, 이창운, 이동백"이라며 "연구결과 이동백이 이창운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 아무래도 이동백이 이창운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후배인 박팔쾌도 선배 이창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박팔괘는 구한말~일제강점기시대에 활동했던 가야금산조 및 병창 명인이자 중고제 판소리 명창이다. 그의 생년월일은 학설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제시되고 있는데, 조선 후기에 태어나 광복 이후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팔괘(朴八卦)라는 석 자는 예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재명 학자는 "주역(周易)의 기본 원리로서 천지간의 변화를 잘 표현한 음악가라서 '팔괘'(八卦) 예명으로 불렸을 수도 있고, 박팔괘가 가야금 열두 줄을 연주하다 줄이 끊어져도 당황하지 않고 남은 여덟 줄로도 명연주를 들려준 일화가 있기에 그러한 별호로 명명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팔괘의 손자인 박인규 씨가 박팔괘에 대한 교지(임금이 관직 등을 내리는 문서)를 봤다고 한다. 교지에는 정육품(正六品)이라고 적혀있고, 그 아래 박학래(朴學來)라고 기록됐다. 또 광무 8년(1904년) 3월이라고 적혀있었다. 이런 점에서 박팔괘의 본명은 박학래로 봐야 한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박행충'이라는 명창도 충북과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2000년대 초반, 전라도 광주지역의 허름한 골동품 상점에서 소리북이 발견되는데, 이 소리북의 원주인은 박행충 것으로 알려졌다. 소리북에는 '충청북도 청주군 청주읍 박행충'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리북이 언제, 어떻게 제작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1931~1946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이 소리북을 발굴한 국악음반박물관의 견해다.
박행충이라는 명창은 국악 관련 고서(古書) 등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국악 가야금 산조의 명인 박팔괘 명인의 친인척일 가능성이 크다는 국악계의 설명이다. 박행충 역시, 적극적인 발굴사업이 필요해 보인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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