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Y-zone 프로젝트: 3대 하천 재발견⑥] 심야에 떠난 자전거 여행… 자연을 품고 도심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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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Y-zone 프로젝트: 3대 하천 재발견⑥] 심야에 떠난 자전거 여행… 자연을 품고 도심을 담았다

유등천② [진심을 담아 달리니, 오가는 풍경마다 위로였네]

  • 승인 2021-08-24 13:46
  • 수정 2021-08-24 16:12
  • 신문게재 2021-08-24 10면
  • 신가람 기자신가람 기자
컷-3대하천

 

 


#심야에 떠난 유등천 자전거 여행
3대 하천 아이템을 고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은 바로 '진심'이었다. 이미 3대 하천을 두루 다니며 경험했던 것과 새롭게 체험한 경험을 토대로 어떻게 하천의 모습을 내 마음처럼 전달할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떠오른 주제는 '심야 자전거 여행'이다. 게으르고 본인의 역량이 하찮다고 여겨질 때마다 밤마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왔었다. 두 번째 유등천 체험은 대전에 내려온 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서울 촌놈이 유등천 자전거 길에서 만난 이야기를 풀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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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등천과 대전천이 갈라지는 Y존(삼천교 부근)을 시작지점으로 잡았다. 오후 7시가 넘는 시간이었지만, 아직 하늘이 밝은 모습이다. 사진=신가람 기자
2년 전쯤이었다. 대전에 내려온 지 6개월쯤 흘렀을 때, 지인에게 갑작스럽게 자전거를 받았다. 매일같이 서울 반포 한강공원에서 여의도까지 자전거로 횡단했던 추억을 회상하며, 잘됐다 싶었다. "아직 탈만 할 거야. 서울만큼은 모르겠지만, 대전도 자전거 길이 생각보다 잘 돼 있어. 갑천은 구간마다 사람이 좀 많고, 너한테는 아마 유등천 코스가 딱 맞을 거다"라고 조언도 덧붙여줬다.

지인은 둔산대교에서 뿌리 공원까지 유등천을 타고 내려오는 코스를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그렇게 그날 이후로 자전거를 타는 10번 중 8번의 코스는 자연스럽게 유등천을 향했다. 생각해보니 올여름이 무덥다는 핑계로 자전거를 안 탄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주인 잘못 만난 죄로 어느새 안장은 먼지가 가득 쌓였고, 바퀴는 이마 주름처럼 축 늘어졌다.

오후 7시, 자전거를 들고 은하수 아파트 앞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여기서 삼천교 10분까지, 그리고 시원한 라이딩이 시작된다 생각하니 조금 설레기 시작했다. 코스는 늘 그랬듯 유등천과 대전천이 갈라지는 Y존 지점인 삼천교에서 시작해 뿌리 공원을 먼저 거쳤다가 둔산대교까지 찍고 다시 돌아오는 총 24㎞ 구간으로 정했다. 2시간 이내 완주를 목표로 페달을 밟았다.

#삼천교에서 뿌리공원까지 9㎞코스로 시작
일기예보에 비 예보가 있어 걱정했지만, 자전거를 타기에는 완벽한 날이었다. 삼천교 부근에 산책하는 주민들과 곳곳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온몸을 감싸는 시원한 바람에 올여름도 서서히 작별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삼천교~뿌리 공원 코스는 고요함 속의 무념무상의 매력에 빠졌다가 다시 도심의 화려한 야경을 맛볼 수 있는 구간이다. 눈에 띄는 공사 현장도 없고, 깊게 파이거나 위험한 자전거 도로 구간도 없어 자전거 초보자도 쉽게 탈 수 있다. 다만 삼천교에서 뿌리 공원 전체 코스의 아쉬운 점을 꼽자면 부족한 야간조명이다. 대규모 단지의 아파트 인근이나 산책길 구간에는 구역별로 가로등이 설치돼있지만, 일부는 빛이 없으면 전방 3m도 보기 힘든 구간도 곳곳에 있다. 그렇다 보니 "사람 다니는 데만 가로등을 설치했나?"라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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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 넘어가자 유등천 인근에는 산책하는 주민들이 많아졌다. 사진=신가람 기자
수정본
유등천을 타고 뿌리공원을 가는 일부 구간에는 도로를 비추는 가로등이 전혀 없어 자전거 속도를 줄여야만 했다.  사진=신가람 기자 shin9692@
특히 ‘버드내다리’를 지나고 뿌리 공원에 도착하기 직전인 안영교 부근은 그저 암흑이었다. 야간 라이딩을 즐긴다면 자전거에 전조등이 필수로 장착은 돼 있지만, 자칫하면 오가는 자전거끼리 부딪힐 가능성도 컸다. 자전거 도로가 한 차선으로 합쳐지는 일부 구간도 있었다. 자주 왔던 길이라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초보자라면 밝을 때 코스를 사전 답사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해가 비추는 낮에는 일렁이는 갈대와 푸른색 잎살을 보는 시각적 즐거움이 있다면, 심야 유등천은 흐르는 천(川)이 들려주는 청각적 즐거움이 크다. 살랑이는 바람 속에 서서히 저물어 가는 여름밤, ASMR처럼 들려오는 물소리, 혼자서 사색하기에 이보다 좋은 곳이 있을까.

그동안 쌓였던 잡념들을 지우며 쉴새 없이 달리니 3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뿌리 공원에 도착했다. 뿌리 공원 내부는 자전거 출입은 불가능하다. 대신 멀리서라도 주차장 쪽에 다채로운 색상으로 꾸며진 뿌리 공원의 야경이 한눈에 담겨 달려온 보람이 느껴진다. 코로나 19 여파 이유인지 이날 뿌리 공원에는 개인 단위로 휴식을 취하는 자전거 이용객이 많았다. 전부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가린 상태였지만, 저마다의 고민을 흘려보내는 모습이었다. 벤치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있다 보니 어느새 하늘엔 환한 보름달이 나를 반겨줬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다시 뿌리공원에서 둔산대교까지 12㎞코스
대전천과 유등천이 갈라지는 Y존에서 뿌리 공원까지가 9㎞였다면, 뿌리 공원에서 둔산대교는 12㎞다. 삼천교에서 둔산대교까지가 3㎞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자전거를 이용하면 10분 내외로 달릴 수 있다. 서서히 지던 여름 해는 7시가 넘어서자 급격하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초반 코스에서는 그나마 햇빛이 있어 그나마 환했는데, 둔산대교로 향하는 길은 심야 라이딩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적막했고, 어두워져 있었다.

8시 30분을 넘어서자 더위에 대한 걱정 없이 산책 나온 지역 주민들도 많아졌는데,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겹치는 구간에서는 아찔한 장면들이 연출되기도 했다. 또 일부 자전거도로에는 운동기구가 설치돼있는 구역도 많아서 주민들이 자전거 도로를 넘나드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종종 목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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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지점인 뿌리 공원에 도달하자 다양한 색채가 담긴 야경으로 주민들을 반겼다. 신가람 기자 shin9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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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다리부터 오픈 예정을 앞둔 신세계 대전점까지 야경으로 다시 지역 내 명소가 되고 있다. 사진=신가람 기자

뿌리 공원에서 시작지점이었던 Y존 삼천교까지는 자연에 물든 향연이었다면 삼천교를 지나 둔산대교까지 가는 구간에서는 눈에 띄게 보이는 고층 건물들 사이로 도심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연말에 준공을 앞둔 가칭, 한샘대교부터 그 뒤로 보이는 엑스포 다리, 곧 오픈하는 신세계 사이언스 콤플렉스까지 화려한 야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둔산대교를 찍고 다시 삼천교로 돌아와 시계를 보니 어느새 시간은 저녁 10시를 훌쩍 넘겨버렸다. 목표로 했던 2시간 완주는 실패했다. 자연에서 또는 도심에서 만난 여름밤이 너무 좋아 흐르는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몰랐나 보다.

코로나 19가 장기화로 접어들수록 '코로나 우울'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끝나지 않는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사람들의 한숨 또한 길어지고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축 처진 어깨보다는 도심에서 특별한 휴식을 누려보면 어떨까.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대전 도심 한 바퀴를 도는 건 평범하지만, 꽤 특별한 하룻밤의 추억이 될 수 있다. 또 당신이 어떤 투정과 불만을 내뱉어도 유등천은 항상 그 자리에서 당신의 어깨를 두드려 줄 테니까.

 

유등천=신가람 기자 shin9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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