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명 판소리학자가 2019년 충북 진천출신 호걸제 명창 김봉학의 흥보가 중 '놀보가 제비 후리러 나가는 데' 장면을 형상화 한 설치미술 작품 <국악음반박물관> |
'충청도-판소리'와 관련된 대체적인 시각은 어떨까. 대중적인 평가는 먼저 '불모지'를 떠올릴 것이다. 특히 충청지역 중에서도 충북지역은 '불모지 중 불모지'로 인식된다. 그렇다면 충북지역은 실제 판소리와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일까. 또 판소리 명창은 없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절대 아니다'다. 초기 판소리 명창은 충청지역 뿐만아니라 충북지역에서도 활동했다. 또 우리나라 판소리 역사 중에서도 최고의 명창은 충북 출신이고, 근거지를 충북지역으로 삼았던 명창도 있다. 앞서 보도한 것처럼 초기 판소리 명창은 충청도에서 많은 활동을 이어갔는데, 특히 충남 서산지역 등은 초기 판소리 고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런 점에서 충북지역도 분명,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본보: 10년간의 취재 기록-판소리의 원류는 충청도다]
대표적인 예가 충북지역 판소리 명창 '김봉학'이다. 김봉학의 고향은 '충청북도 진천'이다. 김봉학 명창과 관련한 얘기는 '조선창극사' 등에서 언급됐다. 1939년 3월 21일자 조선일보는 판소리 명창 이동백(1866년~1949년)과 관련한 얘기를 다루면서 이동백 명창의 가문이 충북 진천에서 '세거', 즉 충북 진천에서 대대로 살았다고 기록했다. 정노식 저서 '조선창극사'(1940년)도 이동백 명창이 김봉학에 대한 증언 내용을 글로 표현했다.
당대 판소리 최고의 명창인 이동백이 김봉학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봉학과 직접 관련된 실증자료는 거의 없다. 이동백이 인터뷰 등을 통해 전한 게 김봉학과 관련된 기록이 전부다.
정노식 저서 '조선창극사'(1940년) 충북 호걸제 명창 김봉학 관련 기록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
'조선창극사'에 따르면 김봉학 명창은 '호걸제'라는 판소리 제(制)'로 소리했다. 김봉학은 충청도 진천인(人)이다. 충청도 진천이라고 기록했지만 사실, 충북 진천지역을 말한다.
충북 진천은 이동백 명창의 수행고수 강경수가 살았던 지역이다. 수행고수는 특정 명창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 명창의 장단을 집중적으로 쳤던 고수를 말한다. 진천 김봉학 명창과 호걸제에 대한 연구는 2019년 노재명 판소리학자의 논문(충청북도 호걸제·중고제 판소리의 원류와 미래) 등에서 본격화 됐다.
충북 진천은 우리나라 전통·현대 음악과 관련해 매우 역사 깊은 지역이다.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 농요'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11호로 지정돼 있다. 진천 용몽리 농요는 덕산면 대월들·목골들·옥골들 일대에서 논농사를 하며 전래한 전통 농요다. 이 농요는 원형을 잘 보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락 음악의 대부인 신중현 씨의 본적도 충북 진천이고, 신중현 씨 부친의 고향도 이곳이다. 이런 점에서 진천지역은 예인들과 매우 밀접한 고장이다. 그러나 진천군은 김봉학 명창과 관련한 역사적 근거를 알지 못하고 있다. 군은 덕산면 용몽리 농요만 계승·발전시킬 뿐, 김봉학 명창은 다른 지역 얘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진천군의 한 관계자는 "(전통)소리 중에는 '진천 노동요'만 문화재로 돼 있는 등 진천지역에서 판소리 명창과 관련된 얘기는 못 들어봤다"며 "특히 판소리 명창이 충북 진천에서 활동한 내력 등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충북지역 중고제 판소리 전문가인 조동언 명창과 국악 관련 전문가들은 "충북 판소리에서 김봉학 명창은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며 "충북 진천지역에서 당대 최고의 판소리 명창인 김봉학이 있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지금이라도 김봉학 명창에 대한 관련 자료를 수집해 그의 업적을 남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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