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미 차장 |
오랜만에 내린 눈 소식은 코로나19로 텅 비어 버린 감성에 동심을 채웠나 보다. 한파와 폭설에 세상은 아수라장이었지만, 곳곳에서 귀여운 인증이 쏟아졌다. 아파트 단지 앞, 대학 카페, 버스정류장 등등 곳곳에 눈사람이 등장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2등신의 고전 눈사람이 아니다. 올라프, 가오나시, 심지어 엘사와 첨성대까지 조각가가 다녀갔다 싶을 정도로 숨겨진 능력자들은 참 많았다. 또 일렬종대로 열 맞춰 등장한 눈오리의 기습은 코로나도 출근길이나 퇴근길도 잠시 잊게 하는 겨울의 선물이었다.
오후가 되자 제설작업으로 사람들의 짓밟힘으로 흰 눈이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질퍽하게 녹은 눈, 그래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지 싶어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또 한번 동심이 와장창 깨진 순간, 아침에 봤던 눈사람 소식이 또 들려왔다. 이 정도 한파라면 녹지 않고 수일은 버티겠다 했는데, 눈사람은 고작 하루를 견디지 못했다. CCTV에 찍힌 한 남자는 주변을 살핀 뒤 순식간에 엘사 눈사람의 목을 가격했고, 누군가는 돌려차기 한 번으로 또 다른 눈사람을 부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은 베풀고 나누고 사랑하는 것에 있었다. 적어도 내가 배운 하나님의 말씀 그랬다. 신천지에 이어 교회 발 감염이 또다시 들불처럼 번진다. 예배는 생명처럼 지키더니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는 지침은 목숨 걸고 피하는 아이러니에 허탈한 쓴웃음이 터져 나온다. 당신의 이웃이 죽어가는 이 시국에 당신만을 위한 생명수가 그렇게 달고 달았을까.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진 성경의 행간은 읽지 못한 채, 글자만 믿으니 일부 교회는 우리 이웃이 아니라 변방의 사람으로 더 멀어진 듯하다.
이타심(利他心) 상실의 시대다. 폭력과 이기심 그리고 아집이 사회 곳곳에 괴물을 심어둔 것 같다. K-좀비가 흥하는 이유는 그들과 닮은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반증은 아닐까. 누군가의 즐거움을 짓밟은 당신들도 누군가의 생명보다 말씀 한 줄에 붙들린 쇠심줄 같은 신념도 결코 이타심을 논할 수 없다.
그들이 처절한 상실감을 맛봐야만 속이 조금 풀릴까. 아니다. 나까지도 이타심을 잃은 괴물이 될 순 없다. 내 안의 괴물을 막아내고 나니 온몸에 저릿하다. 한파라더니, 시베리아 북풍이 우리집까지 오셨나보다. 찬기 어린 웃풍이 코끝을 쓸고 지나간다.
이해미 정치행정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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