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필사본 고전소설인 '설공찬전'을 발견(1996년)해 세상에 알린 이복규 서경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가 함께 했다.
▲이복규 교수 : 3400자의 짧은 미완결본이 7만 5000여 자의 풍부한 중편소설로 거듭났습니다. 김 작가님이 원전의 공백을 많이 메워주셨다고 봐야죠. 원전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저승에 갔던 설공찬의 혼령이 왜 지상에 다시 나와 남의 몸에 빙의되어 소동을 일으켰는가, 작품의 결말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어숙권의 『패관잡기』에 간략하게 소개된 바에 의하면, "자신의 원한과 저승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라고 했는데, 그 한이 무엇인지 원전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불효'를 속죄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번 작품의 해석입니다. 가능한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배경인 순창의 민속도 풍부하게 녹아 있어요. 최명희 작가의 『혼불』에 남원을 중심으로 한 전북 지역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듯이 김 작가님의 이번 작품도 그렇습니다. 설공찬 생가 현지에 전하는 마암(맷돌바위)전설, 모심기노래인 들소리, 상여꾼 노래, 무당이 굿할 때 부르는 노래(시왕풀이) 등이 적재적소에 등장해 실감을 돋웁니다. 특별히, 사촌의 몸에 빙의한 설공찬 혼령을 쫓기 위해 28수주문을 외는 대목은 이색적입니다. 성황대신을 모시는 단오절의 성황제와 두룡정 물맞이 등 순창 민속의 반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과 사후세계라는 보편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이면서 지역문학으로서의 특색도 지니게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김재석 작가 : 두 마리를 다 놓친 건 아니고요(하하하). 사실 '설공찬전'은 작가 채수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작품입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순창 설 씨 가문의 족보에 나옵니다. 설공찬의 아버지 설충란부터 작은 아버지 설충수도 나오고, 설공찬의 누이로 추정되는 인물도 족보에 나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설공찬은 족보에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 작가 채수가 지어낸 인물일 수도 있고, 필화사건으로 족보에서 지워졌을 수도 있겠죠. 장가들지 못하고 죽어서 족보에 올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당시 '설공찬전'은 필화사건으로 모든 책이 불태워집니다. 제가 보기에 세 군데 정도 논란거리가 보입니다. 첫째는 '여자도 글을 알면 저승에서 벼슬도 하며 잘 지낸다'는 내용이고, 둘째는 중국황제라고 해도 저승에서는 염라대왕보다 못하다는 부분, 셋째는 중국 당나라를 배신하고 후량을 세운 당의 장군인 주전충과 같은 인물은 지옥에 떨어져 벌을 받고 있다는 증언 같은 대목입니다.
▲이복규 교수 : 조선왕조실록 중종 6년(1511년) 어전회의 기록을 보면 '설공찬전'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의 검찰기관인 사헌부가 설공찬전을 '요서은장률'(불온서적을 몰래 숨긴 죄)을 적용해 수거한 뒤 모두 불에 태울 것과 작가 채수에게는 '좌도난정률'(부정한 도로 정도를 어지럽히고, 민중을 선동하고 미혹한 죄)로 교수형을 내리도록 중종 임금에게 상소하죠. 작가 채수는 자기들의 수장인 대사헌(지금의 검찰총장)까지 올랐던 인물인데 말입니다. 물론 사헌부의 주장에 대해 반론도 만만치 않았죠. 채수가 쓴 글이라고 하지만 본인도 인척관계인 설 씨 가문 사람에게 들은 대로 쓴 것이고,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도 아닌데 교수형에 처하면 그와 같은 비슷한 책들도 똑같은 법을 적용해야 하느냐며 논쟁이 붙었죠. 교수형은 너무 과하다는 뜻이 받아들여져서 중종은 파직만 명합니다. 어떻게 보면 채수가 들은 바 그대로 옮겨 썼다는 말은 단두대를 빗겨간 '신의 한 수'였다고 보이네요.
▲김재석 작가 : 순창은 '순창고추장'이란 장류의 도시로 유명하죠. 그런 유명세에 비하면 문화적으로 딱히 내세울 부분이 마땅치 않았어요. 가까운 남원은 춘향전이, 담양은 가사문학이, 담양 옆 장성은 홍길동전으로 테마파크도 만들고 지명도를 높여가고 있는데 순창은 설공찬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문화콘텐츠로 키우지 못했어요. 순창으로 귀농귀촌한 역량있는 예술인들과 함께 지역문화콘텐츠를 발굴하고 육성하려는 노력을 시작한 거죠. 순창군립도서관이 기획했고, <다시 쓰는 설공찬이>를 시작으로 앞으로 웹툰과 그림책 설공찬전, 연극 등 다양한 장르로 확대된 콘텐츠가 나올 예정입니다. 테마파크도 짓지 않을까 모르겠네요.(하하하)
대담, 정리 한성일 국장 겸 편집위원 hansung007@ hansung007@
▲전북 익산 출생
▲국제대학(현 서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박사 과정 졸업(문학박사), 한국학대학원 어문학과 박사과정 1년 수학. 국사편찬위원회 초서연구과정 수료,밥죤스신학교 신학부·연구원 수료
▲국제어문학회, 온지학회 회장
▲현 서경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국어국문학 전공 교수
▲<설공찬전의 이해>, <설공찬전 주석과 관련 자료>, <설공찬전 연구> 출간
▲<국어국문학의 경계 넘나들기>,<한국인의 이름 이야기>, 시집 <내탓>,<윤동주의 이른바 '서시'의 제목 문제>,<육필원고·원문 대조 윤동주 詩 전집>,<톡톡 안녕하십니까-이복규 &톡톡 댓글러들 지음> 등 30여 권의 저서와 논문 다수 출판
▲이복규 교수 교회용어·설교예화카페(http://cafe.naver.com/bokforyou) 운영 중
▲부산 출생
▲일본공학원 방송미디어과 졸업
▲동아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신문방송학 석사
▲전 부산경상대, 경성대학교 겸임교수
▲제1회 해양문학상 수상작 <마린걸> 출간
▲1억 고료 제3회 조선일보판타지문학상 수장작 <풀잎의 제국> 출간
▲제7회 대한민국디지털작가상 수상작 <식스코드> 출간
▲<리야드 연가> 장편소설 출간(2019년)
▲<다시 쓰는 설공찬이> 중편소설 출간(2020년)
▲중도일보 오피니언면 '세상속으로' 칼럼 필진, 브런치 카페 등에서 왕성하게 작품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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