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군이 지난 6일 태안문화원에서 '2020 동학농민혁명 제126주년 기념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학술대회 모습. |
태안군이 동학농민혁명 제126주년을 맞아 태안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전국 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군에 따르면 지난 6일 태안문화원에서 태안군 주최하고 동학학회가 주관하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태안문화원·태안동학농민혁명유족회·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등이 후원한 '2020 동학농민혁명 제126주년 기념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는 이해준 공주대 사학과 명예교수의 '충청도 내포(태안)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과 역사적 성격'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태안지역의 동학포덕과 조직화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임형진 경희대 교수) ▲동학농민혁명 희생자와 홍주 의사총 관계 연구(성주현 숭실대 교수) ▲묵암 이종일과 동학, 천도교, 그리고 3.1독립만세운동의 연속성(안외순 한서대 교수)의 주제발표가 진행됐다. 또 ▲태안 동학농민혁명사의 문화 콘텐츠 활용을 위한 기초연구(채길순 명지전문대 교수) ▲1960년대 이후 태안지역 동학농민혁명 기념(선양)사업 분석과 현대적 의의(문영식 태안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군은 학술대회를 통해 태안 지역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현황 파악과 활용방안 등을 모색하는 등 태안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재조명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학학회 최민자 회장은 "이번 학술대회가 1894년 내포지역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태안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21세기 글로컬 시대의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태안지역 문화의 세계화와 진취적인 정체성 확립, 문화적 역량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세로 군수는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계승·발전하기 위해 역사적 현장인 백화산 '교장바위' 아래에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건립하고 있다"며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전시·교육·체험학습·답사가 결합된 '동학농민혁명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동학농민운동은 조선 고종 31년(1894)에 동학교도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봉건·반외세 운동으로, 1894년 3월의 고부(백산) 봉기(제1차)와 9월의 전주·광주 궐기(제2차)로 나뉜다.
1860년 최제우에 의해 동학이 창시된 후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봉건사회를 반대하고 서학과 왜를 배척하는 반외세사상을 주장하면서 조선 사회에 그 교세가 확산되었다.(참고: 동학사상) 이에 조선의 위정자들은 동학을 사교로 금지하고 1864년 혹세무민의 죄로 교조 최제우를 처형하였으며, 이후 동학교도들에 대한 조선의 탄압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동학 제2대 교주 최시형에 의해 동학이 농민 대중에게 더욱 확산·조직화되면서 동학의 창시자였던 최제우에 대한 억울함을 해소하고 동학교도들에 대한 탄압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교조신원운동이 전개되었다.
교조신원운동 이후에도 계속되는 정부의 묵살과 더불어 전라도 군수 조병갑의 불법착취와 동학교도 탄압에 대한 불만이 도화선이 되어, 동학교도들은 1894년 1월 전봉준을 중심으로 전라도ㆍ충청도 일대 농민들을 모아 고부 관아를 습격해 고부민란(古阜民亂)을 일으켰다. 관아를 점령한 전봉준은 정부에 대하여 조병갑의 횡포를 시정할 것과 외국 상인의 침투를 금지하라는 등의 요구사항을 제시한 결과, 정부로부터 폐정을 시정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10여 일 만에 해산하였다.
그러나 고부민란을 조사하러 온 안핵사 이용태가 오히려 민란 관련자들을 역적죄로 몰아 혹독하게 탄압하여 동학농민운동의 봉기의 원인이 되었다. 동학농민운동은 비록 실패했지만, 이 운동은 안으로는 갑오개혁과 밖으로는 청ㆍ일전쟁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이후 3·1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태안=김준환 기자 kjh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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