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일이 만난 사람]임록주 호수돈여고총동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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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일이 만난 사람]임록주 호수돈여고총동문회장

호수돈여고 개교 121주년 맞은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다

  • 승인 2020-05-21 17:58
  • 수정 2021-05-04 23:45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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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록주 호수돈여고 총동문회장이 2020년도 개교 제121주년을 맞아 지난 23일 오전 11시 유성구 대학로 봉명가든 컨퍼런스룸에서 총동문회 임원들과 기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호수돈총동문회 정기총회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이에 임록주 총동문회장을 미리 만나 개교 121주년을 맞는 소감과 활동 계획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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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이번 호수돈 여고 개교 121주년을 맞는 소감을 전해주실까요?

▲꽃구경 한번, 콧바람 한번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 버리는 봄이 아쉽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따뜻한 봄날은 물론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 합니다. 호수돈여고 개교 121주년을 맞아 그립고 보고픈 선후배님과 친구들과의 만남을 앙망했는데 정부의 사회적(생활속) 거리두기로 인해 전통적으로 이어지던 행사를 올해는 종전처럼 개최하기가 어렵다고 임원진에서 판단했답니다. 그래서 임원진과 기수 대표들만이 모여 예결산과 편성을 하게 되었죠. 올해의 아쉬움이 큰 만큼 2021년을 더 기쁘고 알찬 동문회가 되도록 이끌어갈 생각입니다. 임원님들과 기수 대표님들과 전 동문들이 장학금을 내주시고 후배들을 격려해주시는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동문회에서는 학교를 위해 동문회에서 도와야 할 절실한 부분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도울 것이고, 귀감이 되는 훌륭한 동문들을 발굴해 재학생 후배들에게 도전정신을 갖게 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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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호수돈여고 장학회인 '송전장학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지요.

▲ 송전장학회는 1970년 재경 동창회원 몇몇 분이 모교 사랑과 후배 양성을 목적으로 발족한 장학회입니다. 호수돈이 탄생한 송도(개성의 옛 이름)에서 머리글자 '송'자를 따고 6.25 후 대전에서 개교하게 되어 대전의 '전'자를 따서 '송전장학회'라 칭하게 됐습니다.개성에서 호수돈여고를 졸업하신 선배님들의 모교에 대한 절절한 사랑으로 시작된 송전장학회가 기금이 잘 모아져 대대로 후배들에게 잘 지급될 수 있는 장학재단으로 거듭나게 하려고 재경동문회에서 노심초사 애쓰시는데 총동문회에서 동문들의 힘을 보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송전장학회에서는 매년 1000만 원 씩 재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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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호수돈여고의 역사에 대해 말씀해주실까요?

▲현재 중구 선화동에 위치한 명문 사립여고인 저희 호수돈여고(Holston Girls' High School, 好壽敦女子高等學校 )는 1899년 12월 19일 미국인 선교사인 캐롤(Carroll, 한국명 갈월(葛月)) 선교사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가녀린 여성의 몸으로 이국 땅 한국에 온 캐롤 선교사는 기독교정신을 통한 근대 여성교육을 목적으로 개성에 호수돈여고를 설립했는데요. 그녀가 속해 있던 미국 남감리교 홀스턴(Holston)연회의 후원으로 개성 교외의 '쌍소나무집'이라 부르던 초가집을 사들여 주일학교로 개교하면서 제1대 교장으로 취임했습니다. 1904년 정식 학교로 설립하면서 교명을 개성여학당이라 지었습니다. 설립 당시부터 학생들에게서 일체의 공납금을 받지 않고 학습용구와 식비·용돈을 학당(學堂)에서 지원했고, 전원 기숙사에서 생활했습니다. 1908년에는 미국 홀스턴연회의 재정적 지원을 기념해 홀스턴을 한자음으로 가차(假借)한 호수돈여학교로 교명을 정했고, 1910년 호수돈여숙으로 개칭되었습니다. 1916년 개성에서는 처음으로 유치원을 병설했고, 호수돈여자보통학교와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로 분리, 운영했습니다. 1938년 교명을 호수돈고등여학교로 개칭했다가 1941년에는 미국측의 한국주재 선교사 귀국명령에 따라 재단법인 명덕학원(明德學院)이 구성되었고, 교명도 명덕고등여학교로 변경했습니다. 그 뒤 6·25전쟁 때 남하해 대전에 기착한 뒤 1953년 115명의 학생으로 개교했지요. 1954년에 교명을 '호수돈'으로 환원한 뒤 호수돈여자중학교와 호수돈여자고등학교로 분리, 개편했고, 1957년 5월 현재의 위치에 교사를 신축,이전했습니다. 1972년 신교사를 증축하고 1976년부터는 중·고등학교를 분리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1999년 5월 호수돈여고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했고 올해로 121년째를 맞고 있습니다.

호수돈여고는 '남을 위해 살자'를 교훈으로 삼아 '공동체 의식이 투철한 봉사하는 여성, 정직하고 순결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품위있는 여성, 배움에 진취적이며 창조적인 슬기로운 여성, 심신이 건강한 여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학생활동으로는 1919년 3·1운동 때에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하는 등 항일민족주의의 맥을 이어왔고, 한국 근대화의 여성 계몽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과외활동으로는 매년 교내 음악경연대회와 예술제를 개최하는 등 예술 분야의 활동이 뛰어나고, 역사적으로 정구·농구·탁구에서 여러 차례 전국을 제패한 바 있습니다. 특히 미션스쿨답게 학생들의 선교활동이 활발해 고아원·양로원 등 사회복지기관과 군부대를 연례적으로 방문하고 있고, 학생들의 자발적인 활동에 의해 학급헌신예배와 학급자체예배, 불우교우돕기운동 등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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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호수돈여고 동창회의 탄생과 역사는 어떠한지요.

▲호수돈 121년 역사 중 50여 년은 개성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줄곧 호수돈동창회를 문태임 동문(10회)이 회장직을 맡아 이끌어왔습니다. 1950년 6.25 동란 이전까지 서울에는 박 마리아 동문(2회)을 중심으로 한 재경호수돈동창회(일명 敦友會)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었는데 6.25 동란으로 인해 학교가 남하하여 대전에 자리를 잡게 되는 과도기를 거치게 됐습니다. 그리고 동창회 활동이 본격화 된 것은 1950년의 혼란기를 지나 1953년 정부의 환도와 더불어 6.25 동란으로 유명무실했던 돈우회 회장에 박 마리아 동문, 부회장에 문태임 동문으로 조직되면서 활동이 본격화되었습니다.

대전에서 개교 후엔 김남결 동문이 개성 호수돈 출신이어서 졸업생을 모아 모임을 갖기 시작하면서 1974년까지는 김남결 동문이 회장을 맡아왔고 1967년부터 꾸준한 모임을 가져온 재경동창회와의 이원적인 조직을 유지하게 됐습니다. 1979년부터 대전동창회와 재경동창회는 본 동창회 본부를 대전 모교에 두고 총동창회장으로 김영호 동문(21회)이 피선되어 1985년까지 호수돈총동창회를 이끌어왔고, 이후 1993년까지는 박태경 동문(25회)이 총동창회장으로 활약했습니다. 1993년 7월 대전에서 열린 호수돈 총동창회 대의원회의에서 회칙에 준해 대전호수돈 동창회장이 호수돈 총동창회장직을 겸하기로 해 당시 대전 호수돈 동창회장인 이경자 동문(33회)이 총동창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선배님들을 거쳐 지난해부터 성수자 직전 회장님의 뒤를 이어 제가 총동문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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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회장님, 지난해 호수돈여고 총동문회장님으로 취임하실 때 소감이 어떠셨는지요.

▲제가 총동문회장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얼떨결에 추대를 받게 되어서 당황스러웠답니다. 근대여성교육의 산실 호수돈여고에서 교장에 이어 총동문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어깨가 무거운데요. 모교 발전을 위해 발로 뛰며 노력하는 동문회장이 되겠다고 다짐했답니다. 귀한 자리인 만큼 2년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해 모교 발전에 힘을 보태야겠다고 결심했지요. 동문들에게 열심히 하겠으니 많이 도와주실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우리 호수돈 동문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동문회가 됐으면 좋겠고, 모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문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정부에서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해주는 등 많은 복지혜택이 주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발굴해내서 장학금을 주고 격려하고 지원해 줄 수 있는 동문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호수돈여고 교훈이 ‘남을 위해 살자’인데 남을 위해 사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해 사는 것이잖아요? 우리 호수돈여고 동문들이 남을 위해 사는 교훈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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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 호수돈여고 선배님들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개성에서 호수돈여고를 졸업하신 원로 선배님들이 모교를 엄마 품처럼 귀하게 생각하고 모교 후배들을 위해 당신들의 용돈을 아껴 장학금을 내놓으시는 모습을 보면 모교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신지 감동이 밀려옵니다. 정말 자랑스럽고 존경스럽지요. 우리 후배들도 선배님들의 그런 정신을 이어받아 학교와 이웃에 사랑을 펼치고 헌신하는 동문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호수돈여고 평교사 시절 재경동문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모교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시는 선배님들 모습을 뵈면서 너무나 감동을 받아 눈물이 났습니다. 가슴 뜨겁게 인상적인 선배님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선배님들이 얼마나 학교를 사랑하시는지 선배님들의 정신을 꼭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연세가 90세 가까이 되시는 원로 선배님들의 모교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 늘 감동을 받으며 삽니다. 개성에서 학교를 다니셨던 선배님들은 대전으로 피난을 오면서 대전 선화동에서 호수돈여고가 재개교하게 되자 모교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지신 것 같습니다.

저는 79년도에 호수돈여고에 부임해 2014년까지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했습니다. 후학을 양성하는 일이 가장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그 예쁜 학생들을 통해서 배운 것, 느낀 것 또한 많았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학생들과 함께 한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 황금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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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호수돈여고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하시는 동안 모교 강당을 크고 훌륭하게 지으셨는데요. 보람이 크셨겠습니다.

▲예. 제가 국비 지원을 받아놓고 기틀을 마련했습니다만 지어진 것은 퇴직 후입니다. 뿌듯합니다. 강창희 전 국회의장님 부인 이재숙 선배님도 호수돈여고 총동문회장님을 역임하셨는데요. 제가 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국회에 초청받아 간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강창희 의장님께 부탁을 드려 국비 40억 원을 지원받아 호수돈여고 강당을 새로 증축할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전 강창희 의장님과 사모님인 이재숙 선배님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요.

우리 호수돈여고는 1980년 광주항쟁 당시 대전에서 유일하게 학생운동을 했던 학교였습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 시절 광주학생운동 행사에 초청받아 당시 학생부장이었던 제가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을 데리고 다녀왔습니다. 선배님들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시고 헌신하시고 애국 행동을 해주신데 대해 무한한 자부심과 긍지가 느껴졌습니다. 제자들도 선배님들의 귀한 정신을 느끼고 오면서 뿌듯한 보람이 느껴졌으리라 봅니다.

제가 교장을 하던 당시 저희 호수돈여고가 학력신장 최우수학교, 학교평가 최우수학교로 지정을 받았는데 너무나 기뻤습니다. 선생님들이 열심히 해주시고 학생들이 잘 따라와 줘서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했습니다. 우리 호수돈은 정말 저력 있는 학교라는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귀한 쓰임을 받는 명문 사학 호수돈여고에서 이 사회의 일꾼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학력은 물론 인사성도 바르고, 인성도 좋아 외부에서 손님들이 오시면 학생들이 참 밝고 예의 바르다고 칭찬을 많이 하셨답니다. 학력보다 중요한 게 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성이 곧 실력입니다.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보다 바른 인성과 인품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독교 교육이 바탕이 되어 이런 인성교육이 더 잘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이 선배님들의 후배사랑 정신을 잘 이어받아 호수돈 설립 정신인 ‘남을 위해 살자’를 실천하면서 설립자인 캐롤 선교사님의 뜻을 잘 받들어 살면 좋겠습니다.

여성 교육과 복음을 심어주셨던 캐롤 선교사님의 복음의 씨앗이 모교 사랑 나눔으로 이어져 선배가 후배를 사랑하는 정신으로 지금까지 전통을 잘 지켜왔는데요. 앞으로도 그 정신이 영원히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저는 총동문회장으로서 모교 사랑과 선후배 사랑이 영원히 이어지도록 동문들이 힘을 합하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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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교직생활 하시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들려주실까요?

▲36년 교직 생활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꼽는다면 제가 담임을 맡았던 우리 반에 성격이 까칠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늘 불만이 많은 얼굴 표정에다 부정적인 말을 많이 했습니다. 하루는 아침 조회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이 아이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계속 그냥 두면 안될 것 같아 공개적으로 야단을 친 일이 있었습니다. 공개적으로 야단을 치고 나니 마음에 걸려 따로 불러서 다독여주면서 '너를 미워해서 그런 게 아니다. 네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네 태도를 바꿔주고 싶었을 뿐이란다'라고 말해주었죠. 그 아이는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취업을 했는데 어느 날 저에게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 그 아이를 공개적으로 혼을 내서 늘 마음이 께름칙했는데 만나자고 하니 걱정이 됐지요. 그런데 이 아이가 저를 보더니 제 품에 덥석 안기면서 반가워하는 겁니다. 그때 선생님이 자신을 야단쳐주신 덕분에 자기가 성격이 바뀌게 되고 지금은 직장에서 사랑받고 인정받는 직장인이 되어 너무나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군요. 그 아이가 저에게 꾸지람을 듣고 상처받고 저를 원망하지 않고 꾸중을 잘 받아 들여주고 이렇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니 어찌나 고맙던지 제 교직생활 중 가장 보람되고 흐뭇한 순간이었답니다. 그 아이에게 '그렇게 생각해줘서 너무나 고맙다. 네 삶이 전환이 됐다니 기쁘구나.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예쁘고 바른 생각을 하면서 직장에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산다니 선생님은 너무나 고맙고 기쁘구나'라고 말해줬죠. 정말 큰 보람이 느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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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정년퇴직 이후의 삶은 어떻게 설계해 오셨고,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제가 정년퇴직 후엔 충남대 교육대학원에서 한국어교육과를 다니면서 교사 2급 자격증을 따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글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 문해교육을 했습니다. 다문화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한국어교육을 하면서 선교활동도 할 수 있어서 보람이 컸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에게 문해교육을 통해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다문화사회를 맞아 이주여성들 가정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교육하고,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상담을 해드리고, 밝은 사회가 되는데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회장님, 마지막으로 모교 후배들에게는 어떤 말씀을 들려주고 싶으신지요.

▲재학생 후배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타고난 재능이 다 다른데 인기 있는 직업을 좇아가거나 친구를 좋아해서 무턱대고 친구의 꿈을 좇아갈 것이 아니라, 심각하게 고민을 해보고 자기 탐색을 해서 자신만의 꿈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가슴이 뛰고 학교생활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한 후에는 자신만 위해 살면 아깝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아는 것을 활용해 남에게 유익을 끼치며 살 때 보람을 느끼고 삶이 의미 있을 것입니다.

우리 후배들이 '남을 위해 살자'라는 우리 학교의 귀한 교훈을 삶으로 실천하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담, 정리 한성일 국장 겸 편집위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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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록주 회장은 누구?

▲1954년 경북 영천시 출생. 호수돈여고,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대전대 대학원 상담심리학과, 충남대 교육대학원 한국어교육과 졸업. 호수돈여고 교사, 교감, 교장 역임, 호수돈여고 총동문회 회장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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