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육아일기를 쓴다고 하면 지금 시대에도 유별나다 생각할 수 있을텐데요. 조선시대에 한 선비가 손자를 기르며 쓴 육아일기책 한 권 전해집니다. 전무후무한 선비의 육아일기죠.
그 책의 이름은 '양아록' 입니다.
16세기 '이문건'이라는 사람이 손자 '이숙길'을 육아하며 쓴 일기인데요. 조선시대에는 아버지나 할아버지들이 아이들을 양육하는 일이 종종 있었고 하네요. 지금시대에 걸맞는 진부적인 육아방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문건이 쓴 양아록에는 손자 이숙길의 갓난아기 때 기록부터 자세히 쓰여져 있습니다. "태어난 지 7개월, 아랫니 두 개가 나다"
할아버지 이문건은 손자와 잠도 같이 잤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잠에서 깨어나면 매번 할아버지를 부르고, 내 가까이 오며 두려워할 줄 모르네"
손자를 직접 가르치기도 한 이문건. 어릴적 손자 이숙길은 할아버지 마음에 들게 공부도 곧잘 했던 것 같습니다. "문장을 업으로 삼으려 어릴 적부터 애쓰느구나"
하지만 손자 이숙길은 성장하면서 술을 좋아하게 됐다며 양아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늙은이는 자식 잃고 손자에게 의지하는데, 손자는 지나치게 술을 탐에 취하네"
늙은이가 자식을 잃었다는 것을 봐선 이문건의 아들은 사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이문건에게 손자 이숙길은 가문을 일으킬 마지막 희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손자 이숙길은 지나치게 술을 탐해 할아버지 이문건은 회초리도 여러번 들게 되는데요.
"언제 아이의 지혜가 밝아져 이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줄까"라며 이문건은 손자의 지혜가 언제 밝아질까 노심초사했습니다.
이문건의 육아일기는 손자가 술을 많이 먹어 속상하다는 내용으로 끝이 납니다. 이문건이 사망했기 때문인데요.
그는 책머리에 양아록을 쓰는 목적에 대해 밝혔습니다. 이숙길이 반듯하게 자라나 가문을 번창시키길 소원하며 이숙길이를 키우는 과정과 이 정성을 훗날 손자가 보고 이해해달라는 취지에서 쓴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문건은 중종시절 조광조의 제자로 유명한 문신이었습니다. 기묘사화를 기회로 정계에 등단하게 되고 명문과 명시를 많이 남긴 인물입니다. 퇴계와 조식 등이 그의 시를 많이 즐겼어요. 하지만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게 되고 을사사화를 계기로 정계에서 척결되어 경북 성주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이 양아록은 성주 유배시절 손자 이숙길을 키우면서 쓴 육아일기로써 그 가문을 다시 일으키려는 이문건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술을 많이 마셔 속을 썩였다는 손자 이숙길은 훗날 이 양아록을 읽고 정신을 차려 선조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다고 전해집니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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