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돼지와 돼지고기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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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필톡]돼지와 돼지고기의 경계에서

  • 승인 2019-02-13 13:11
  • 신문게재 2019-02-14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돼지 2
친구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할 때 종종 이 얘기를 언급했다. 지금은 흔한 게 고기지만 70년대만 하더라도 그러질 못했다. 동네서 좀 산다 하는 집이면 몰라도 대개는 일년에 고기 먹는 날이 손꼽을 정도였다. 친구네도 명절이나 돼야 고기 맛을 볼 정도였다고 한다. 친구 어머니는 겨울이 오면 시장에서 돼지 비계를 사오셨다고 한다. 살코기 살 형편이 안되니까 비계를 사는 것이다. 그런 다음 밭에 몇 포기 남겨둔 시퍼런 배추를 뽑아와 비계와 버무려 옹기에 쟁여놓고 겨우내 국이나 찌개를 끓여먹었다고 한다. 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훌륭한 영양 공급원인 셈이다. 친구는 그 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어릴 적 엄마가 해준 추억의 맛도 있겠지만 비계는 지방 덩어리여서 실제로 맛있었을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돼지고기만큼 사랑받는 육류는 없다. 스페인 영화 '하몽하몽'에도 돼지고기가 나온다. 하몽은 돼지 뒷다리로 만든 햄인데 '잘 빠진 여자'란 의미의 속어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정열적인 스페인의 분위기를 잘 살린 덕분에 94년 국내 개봉 당시 외설 시비를 불러일으켜 청소년관람불가였다. 관능적인 페넬로페 크루즈와 하비에르 바르뎀의 끈적이는 숨소리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마른 침을 삼키느라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에서 하비에르 바르뎀은 늘 주머니에 생마늘을 넣고 다니며 씹어먹곤 했다. 그리고 하몽도. 하몽을 게걸스럽게 먹는 남자의 모습에 도대체 어떤 맛인지 궁금했다. 하몽은 돼지 뒷다리를 소금으로 건조한 것이다. 숙성기간에 따라 맛의 차이가 있는데 이베리코 하몽을 으뜸으로 친다고 한다. 이베리코는 돼지 품종으로 야생도토리를 먹고 자란다. 얼마전 TV 다큐를 보고 놀랐다. 모든 돼지는 피둥피둥하게 살찐 걸로 알았는데 이베리코 돼지는 뱃살도 없고 날렵했다. 방목으로 키우기 때문이다. 만약 스페인에 가게 되면 하몽부터 먹어보리라.

중국은 전 세계 돼지고기의 절반을 먹어치운다. 중국인에게 고기는 돼지고기를 의미한다. 이들이 돼지고기를 먹은 역사는 오래됐다. 특히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돼지고기 사랑은 남달랐다. 그 유명한 '동파육'을 탄생시킨 장본인이 바로 소동파다. 그는 항주에서 관리로 재직할 때 이 요리를 개발해 백성들을 먹였다. 소동파는 "삼겹살에 갖은 양념을 해서 물을 적게 넣고 불을 줄이고 졸이면 스스로 특별한 맛이 난다"고 했다. 그렇다고 모든 나라가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건 아니다. 이슬람교와 유대교는 돼지고기를 금한다. 부정한 음식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반면 서구사회는 동물은 인간보다 열등하다는 성경 교리에 따라 거리낌없이 동물을 도살해 인간의 탐식을 충족시켰다.

왜 인간은 그토록 고기를 갈망하는가. 무엇 때문에 고기를 포기하기가 이토록 어려운가. 학자들은 인간처럼 쥐, 바퀴벌레 등도 동물성 단백질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생각해보라, 고기를 처음 맛본 기억을. 이 특별한 고기 맛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나. 물론 육식을 멀리하는 채식주의자도 늘고 있지만 인간은 잡식동물이다. 인류가 육식을 포기하는 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불판에 삼겹살이 구워질 때 돼지가 어떻게 죽음을 맞는 지 상상해 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육즙이 흐르는 삼겹살을 볼이 미어터지게 먹으며 돼지에 대한 죄책감은 까맣게 잊는다. 이것이 인간이다. 이것이 지상의 인간과 동물의 먹이사슬의 관계라 할지라도, 이젠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을까. 인간에게 모든 걸 내 주고 죽는 돼지 아닌가. 지옥같은 공장식 축산은 결국 인간도 병들게 할 것이다. 언제까지 구제역을 되풀이할 텐가. 하긴,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돼지는 고기로 태어나서 고기로 죽어야 하는 운명인 것을…. 황금돼지해를 맞아 돼지들에게 사죄한다.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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