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가을 童話 나무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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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가을 童話 나무의 마음

김완하(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 승인 2018-11-06 15:07
  • 신문게재 2018-11-07 22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김완하
김완하(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온통 물이 든 가을 숲의 오솔길이 내 발길을 끌었다. 나는 어느새 한적한 숲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숲에 가득한 나무들이 이곳저곳에서 걸어온 여러 갈래의 길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큰 숲을 이룬 뒤 서로 악수를 건네며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다. 그들은 이내 깊은 눈빛으로 이 세상을 굽어보기 시작했다. 그때 서늘한 숲에서 가을 나무들의 목소리가 우렁우렁 들려왔다. 나는 깨금발로 살며시 다가가 인기척을 감추고 가만히 그 마음을 엿듣기 시작했다.

먼저 갈참나무가 단풍나무에게 말을 건넸다. 자네는 올 한해도 얼마나 숨 가쁜 시간을 지나왔는가. 봄날의 화려함 속에 다가온 쓸쓸함과 여름날의 혹심한 더위, 그리고 여기저기 들려오던 가슴 아픈 일을 겪지 않았는가. 더러는 기뿐 일도 없지 않았지만 돌아보면 우리 삶은 힘겨운 순간이 더 많은 것 같네. 그래서 누구라도 생을 그리 쉽게 규정짓지는 못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자네의 얼굴에는 밝은 빛으로 물이 들고 지난 시간의 슬픔과 고통을 잘 익혀 붉은 빛으로 곱게 단장을 했으니 그건 참으로 대단한 일일세. 나는 오늘 자네를 보고서야 지난 시간의 시름을 덜게 되었네. 내 마음도 덩달아 밝게 타 오르네.

단풍나무가 조용히 귀담아 듣더니 정색을 하고 다가서 갈참나무에게 말했다. 자네의 덕담을 듣고 나서 나도 어느 정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네. 그런데 나는 자네의 그 깊은 심성에 진실로 감탄하게 되네. 자네는 나와 똑 같은 시간과 시련을 겪어왔지 않은가. 그런데 자네는 나보다 더 옹골찬 모습으로 서있으니 말일세. 자네 얼굴은 그야말로 황갈색으로 빛나고 우람한 둥치의 가지마다 열매를 매달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은 필시 내일을 예비한 씨앗일 터인데 거기에는 이 세상의 모든 희망과 꿈과 용기와 포부가 들어있으니 말일세. 그러니 자네야말로 이 가을의 표상이 아니던가.

그렇게 단풍나무와 갈참나무가 나누는 덕담을 숲의 나무들이 유심히 듣고 있었다. 그들은 고개를 끄떡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듯, 사색에 잠기는 듯 고개를 조아리기도 하였다. 단풍나무와 갈참나무가 말을 마치며 서로 마주하던 얼굴을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그 한 편에는 감나무가 빛을 내며 서있었다. 아! 하고 갈참나무와 단풍나무는 한 목소리를 내면서 외쳤다. 그들은 어깨를 맞대고 주변의 많은 나무들에게 들리도록 크게 소리쳐 말했다. 감나무! 그대의 물든 얼굴은 얼마나 고운가. 많은 가지마다 잎들은 반짝이고 있네. 그리고 그 사이로 탐스런 감들을 주렁주렁 달았네.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단맛을 주는 게 아닌가. 그리고 조만간 잎을 떨구어 서늘해져가는 지상을 덮어주겠지. 그러면 빈 가지 사이로 성큼성큼 하늘이 내려와 앉을 것이네. 또 가지 끝에는 열매 몇 개 까치의 밥으로 남겨두는 게 아닌가.



그렇게 말을 하면서 셋은 서로 번갈아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그러자 숲에 있는 나무들은 모두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기우는 해를 등지며 숲은 깊어가고 새로운 기쁨으로 가득 차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귀 기울여 듣던 자세를 옮겨 산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산을 오를수록 나무들의 마음은 내게 더 깊이 와 스미고 있었다. 그곳에는 화살나무, 졸참나무, 검팽나무, 까치박달, 신나무, 층층나무, 작살나무, 말채나무, 소태나무, 때죽나무, 고추나무, 대팻집나무, 참죽나무, 참개암나무, 가죽나무, 참회나무, 팥배나무, 사람주나무, 젓나무, 굴피나무, 감태나무, 노간주나무 등이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이 세상에서 처음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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