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공연 모습. |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고전 서사 구조에서 파격을 시도하는 대신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부각시켰다. 2시간 3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의 주요 고비마다 등장인물이 현실과 대의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게 되고 결국 범속성을 초월하는 선택 과정을 그린다. 조대공의 인품에 감격해 암살 임무를 포기한 자객, 부귀영화를 버리고 포위망을 해제한 '한궐', 자신의 아들과 조 씨 고아의 생명을 맞바꾼 '하성광' 모두 갈등 속에서도 대범하게 대의를 지켜내는 의협의 모습을 보인다. 극중 중요하게 부각되는 등장인물의 죽음이 초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곡절 얽힌 출생-가족과의 이별 및 시련-조력자의 도움-입신양명에 이르는 고전 서사를 유지하고 배우들의 열연을 과감히 시도하면서도 극이 현대성을 잃지 않는 데는 바로 딜레마를 통해 육화된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한 몫 한다. 등장인물의 선택이 대의 실현이라는 스토리의 종착점을 일관되게 뒷받침하는 와중에도 각자가 처한 다양한 내적 갈등과 그에 수반된 존재적 번뇌가 서사의 개연성을 높여 긴장감을 탄탄하게 지속시킨다.
작품은 충·효·열을 비롯한 권선징악을 강조하는 고전 서사의 주제 의식에서 탈피해 인간의 내면과 삶을 핍진하게 묘사한다. 전기적 요소를 다분히 갖고 있으면서도 고전에 등장하는 인물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내 삶에 대한 다각도의 해석을 시도한다. 하성광과 부인과 갈등, 출생의 비밀의 알게 된 조씨고아의 갈등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본성인 7정(七情)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인지상정과 대의 중 경중을 판단하기에 앞서 인간의 본성과 인생의 본질 간 상관관계를 되짚는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는 중국 고전 서사의 대표 주제 '군자복수 십년불면(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를 소재로 인간의 삶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현대 연극의 흐름인 연기·서사에서의 절제를 시도하지 않고, 장대한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들을 내면을 입체적으로 드러낸 창작자의 뚝심이 돋보인다. 중국 고전이 한국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윤창 기자 storm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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