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를 봐도 단순한 '레드' 일색이다. 시·군 지자체별 지도 전체가 시뻘겋다. 자동기상관측으로 40도를 넘으면서 며칠 무식이 담대하게 더웠으니까 내일은 좀 색깔이 옅어지겠지 하는 평균의 함정을 사정없이 비웃는다. 가장 확률이 뛰어난 일기예보는 '오늘과 똑같은 날씨'라는 통계적 결론이 실감난다. 시원한 것, 시원한 곳만 찾도록 단순화시킨다.
에어컨도 이치상 단순함의 산물이다. (온수로 난방을 하듯) 찬물 돌려 냉방을 한다는 단순사고 덕에 탄생했다. 1902년 미국인 윌리스 '캐리어'가 인쇄소 제습용으로 만든 에어컨이 이제 냉방 필수품이 됐다. 지자체가 늘리기에 바쁜 무더위 쉼터란 곳도 에어컨 설치가 기본이다. 하필 이런 때 옥탑방에 들어가 사서 고생인 박원순 서울시장도 고역일 것이다. 에어컨 없는 체험적 동고동락보다 시민 각자가 누리는 냉방 복지가 보다 더 공공행정의 목표답다. 강남·북 균형발전도 폭염 스트레스가 제거되면 더 잘 풀릴 것이다.
근거 없는 예찬론이 아니라 이건 현실이다. 공무원 집무실에 에어컨부터 달았던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시원한 에어컨 아래의 근면을 싱가포르 성공 요인으로 꼽았던 일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요즈음이다. 열대지역 문명의 성격을 바꾼 최고 발명품으로 극찬한 그가 금욕주의자로 알아 모신 이가 박정희였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에어컨을 끄고 '난닝구'(러닝셔츠) 바람에 연신 부채질을 해댄 일화로 유명하다.
부채 들고 궁상떨던 그 시절의 더위는 그래도 견딜 만했다. 삼면이 바다여서 공기 중 습도가 열을 가두고 국토 70%인 산지가 공기를 정체시켜 고온다습이 되는 환경이야 똑같았지만 이렇게 동남아 아열대, 아프리카 열대와 일대일로 맞짱 뜰 상황에는 한참 못 미쳤다. 시작이 막연하지만 전 지구의 대기대순환 체계를 망가뜨리는 기후 변화나 자연 변동에 진지하게 맞설 방도를 꼭 찾아내야 할 것 같다. 적도가 관통하는 아프리카 콩고, 가나, 소말리아보다 '대프리카' 대구가 덥다. 대전도 대프리카가 될 판이다. 서울은 서프리카, 광주는 광프리카가 다 됐다.
의학적인 병명도 아닌 냉방병에서 안전하며 온실가스, 오존 발생을 최소화한 고효율 에어컨 개발 문제, 전력 수급의 문제도 있지만 에어컨은 경시하면 안 될 대안 중 하나다. 여기에 비하면 12호 태풍 종다리 기다리기는 무력한 답이다. 15년 전 유럽에서 폭염으로 3만5000명이 사망한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사회경제적 수준과 연령과 성별 등 개인 민감도가 다른 대(對)폭염 정책을 촘촘하게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재난관리법에 '폭염'이 규정되지 않았다고 자연재난이 아닌 것은 아니다.
만물을 구워버릴 기세 앞에, 온열환자의 연이은 사망 앞에서 전기를 아끼고 더위를 참자는 '생각의 관성'은 단순하도록 작아졌다. 그 쓸모없음의 쓸모조차 사라지려 한다. 폭염 지옥 속에서 냉방 바람을 누리는 소소한 복락을 사람들은 "천국"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불러다 준다면, 에어컨 복지도 복지다. 이 시간 이후부터 나는 이것을 보편적 냉방 복지국가로 명명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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