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허공 속으로 열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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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허공 속으로 열린 길

김완하(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 승인 2018-05-15 08:33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김완하
김완하(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조붓한 오솔길을 걸어 아무도 없는 비탈에 올라 홀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곳에는 우리 시선을 한없이 깊은 침묵과 고요 속으로 힘껏 빨아올리는 허공이 펼쳐져 있다. 그것은 절대의 높이에서 어떤 미동이나 흐트러짐도 없이 가장 완벽한 빛으로 고여 있다. 그 허공 한편으로 구름도 기대어 있다. 허공의 새파란 빛의 눈부심은 우리들 내면으로 깊은 호흡을 들이쉬게 한다. 좌우를 둘러보면 비탈 주변에는 백양나무와 자작나무, 그리고 미루나무가 서로 어깨를 맞대고 늠름히 서 있다. 그들은 하늘로 두 팔을 쭉쭉 뻗어 올리고 점점 짙어져 가는 신록의 빛깔로 머리를 물들이고 있다. 이렇게 5월은 지상과 천상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사이에 우리는 서있는 것이다.

나의 시에는 허공이라는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곤 했다. 그때의 허공은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존재의 터를 제공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 허공은 무(無)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무 그 자체로서 유(有)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허공은 무로서 유를 안고 있는 형상인 셈이다. 이는 인식의 전환으로서 역설적 표현이기도 하다. 또한 허공은 이중적이기도 한데, 텅 비어 있으면서 또한 꽉 차 있는 것이다. 즉 무의 공존과 동시성을 의미하고 있다. 허공을 제재로 한 시들은 유와 무, 상승과 하강의 두 힘의 작용을 통한 존재의 비상(飛翔)과 추락의 국면에 얽혀 있었다. 시 속에서 상승과 하강 이 두 힘의 작용에 의해 존재하는, 비스듬히 날 수밖에 없다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들 생의 실존이라는 사실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렇다. 허공. 이 허공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또한 그 누구의 영역도 절대 아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스스로 크게 아우르고 더 넓게 원을 그려 수용한다면 그건 바로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원을 크게 그리면 그릴수록 그만큼 더 넓은 영역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나의 의지에 따라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는 영역이 있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그것을 크게 원을 그려 나의 것으로 소유해도, 그것은 결코 누구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다. 또 그것은 우리가 욕심을 부리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러한 행위는 결코 남에게 해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득이 된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의 정신세계를 확장시켜 더 풍요롭게 하는 것으로 매우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이런 것을 '허공이론'이라 이름 붙였던 적이 있다. 그래서 그것은 더 크게 원을 그려 내가 한껏 끌어안을 때, 그것에서 얻어지는 결과를 남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에게 그러한 것에는 꿈과 희망이 있다. 그런 즉 나의 꿈이 우리의 희망인 것이다. 나아가 우리의 꿈이 세계의 희망이 되는 것이다. 또 그러한 것으로 상상력과 감수성을 들 수 있다. 넓고 큰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하여 이 세상에는 자유롭게 영혼이 숨을 쉬고 갇혔던 벽이 열리고 단절되었던 길이 이어진다. 그러한 구체적인 형태로는 문학과 예술이 있다. 그것은 고정화된 상상력의 틀과 낡은 상식을 깨고 새로운 인식의 영역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습관화된 반응과 사고의 유형을 해체하고 전복시킴으로써 건강한 의식행위를 통해 새롭게 열리는 세계를 우리들 눈앞에 펼쳐준다.



오늘을 살아가는 데는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하다. 바로 코앞의 현실에 눈을 두고 나아가기 보다는, 한없이 열려 있는 무한한 공간을 향하여 다가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곳으로 눈길을 주고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삶의 지혜를 탐색해보아야 하겠다. 그때 우리에게는 꿈과 희망이, 새로운 상상력과 감수성이 한껏 솟아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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