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갑 대전 중구청장 |
그 당시에는 눈도 많이 오고 추위도 지금보다 훨씬 추웠다. 방한복과 방한화는 꿈도 못꾸던 시절이었다. 한겨울에도 고무신과 어머님이 짜주신 털옷과 목도리 그리고 내복을 입는 것이 고작이었다. 먹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후가 되면서 따뜻한 햇볕을 받아 얼음이 조금씩 녹아 썰매장에 물이 생기기 시작하면 우리는 썰매를 집에 놓고 이번에는 호미와 삽을 들고 밭으로 모인다. 가을에 거둬 들인 고구마 밭으로 가는 것이다. 고구마 밭에 흩어져 호미와 삽으로 밭을 캐보면 가을에 캐다 남긴 고구마들이 서너개씩 차가운 눈밭 위로 고개를 내민다. 한보따리 고사리손으로 캔 고구마를 갖고 고구마 밭에서 가장 가까이 사는 친구 집으로 가서 친구 어머니에게 고구마를 내밀고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 따듯한 아랫목에 손을 녹이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마당에 묻어둔 장독대에서 꺼낸 설얼음이 쌓인 동치미에 곁들여 김장배추에 싸 먹던 고구마 맛은 지금도 잊을수 없는 맛이다.
30년 전만해도 겨울추위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추웠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겨울 날씨를 표현하는 삼한사온이란 옛말이 대체로 적용돼던 시절이었다. 삼한사온(三寒四溫)이란 표현 그대로 3일은 춥고, 4일은 따뜻한 날씨가 반복되던 것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추워도 며칠만 지나면 다시 추위가 풀리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다.
요즘 날씨가 심상치 않다. 그야말로 한반도 전체가 냉동고로 변해 버린 형국이다. 북극지방에서 몰려온 동장군의 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옛날보다 몇배나 더 정확해진 과학기술의 발달로 일기예보가 정확해 졌고 왜 이런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는지 원인 분석도 정확히 한다. 최근에는 삼한사온이란 말은 사라지고 칠한칠미(七寒七微)라는 말이 새로운 유행어가 되고 있다고 한다. 칠한칠미란 7일은 춥고, 7일은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말이라고 한다. 이런 웃지 못할 신조어가 만들어진 원인은 바로 기후변화 즉 지구 온난화와 산업발전 때문이다. 더구나 황사와 달리 미세먼지는 암을 유발할수 있는등 인체에 해로운 존재이기도 한다.
한파라고 불리는 강추위는 사람의 힘으로 막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미세먼지 만큼은 사람의 힘으로 막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학계 그리고 연구소등에서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연구 결과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힘만으로 미세먼지를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고 짧은 시간내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과 이에 협조하는 산업계와 국민들의 참여와 협조가 있어야 하고 대기의 흐름상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중국의 노력도 함께 할 때 미세먼지를 줄이거나 없애는 것이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불과 10년전만 해도 삼한사온의 겨울을 나며 많은 추억들을 간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즈음 자라나는 세대들은 칠한칠미를 겪으며 별다른 겨울 추억도 가직하지 못한 채 겨울을 보내게 된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추운 겨울이지만 밖에 나가 자연과 벗하며 겨울을 보낼 수 있는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세 먼지에 갇혀 하루 종일 실내에서 겨울을 보내는 것이 아름다운 인생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용갑 대전 중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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