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더없이 풍요로운 한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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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더없이 풍요로운 한가위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7-10-05 23: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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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이미지 뱅크


한가위, 두말이 필요 없는 우리민족 최대 명절. 다가오면 새 옷 한 벌씩 빔으로 마련합니다. 어려우면 양말 한 켤레로 가름하기도 하지요. 마을로 내려와 기웃거리던 산등성이, 덩달아 울긋불긋 새 옷 단장합니다. 나이 많은 소나무 뒷짐 지고 두리번두리번, 다랑논 꼿꼿이 섰던 벼, 노란 머리 숙여 환영해 줍니다. 검은 등에 주렁주렁 매달려 곡예 하던 감, 얼굴 붉히며 고운자태 뽐냅니다. 초가을 곱고 푸른 하늘, 유난히 높고 맑지요. 거기로 까치, 산비둘기 떼 바삐 오가며 그려 내는 산수화. 뒤꼍 대숲, 들뜬 참새도 요란합니다.

맛난 음식 푸짐히 준비합니다. 조상 기리고, 풍성한 결실에 감사하는 날, 만남 또한 의미가 크지요. 집 나가면 고생이라 생각했어요. 객지생활에 시달린 가족이 애련하지요. 만난다는 생각 자체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수시로 장을 보고, 제수 모두 햇것으로 꼼꼼히 챙깁니다. 여러 날 바쁘지요. 한가위가 일찍 들면, 햅쌀 얻으려 필요한 만큼 벼 베어 절구통에 찧기도 하고, 설익은 풋감 먹을 수 있게 우려내는 등 할 일이 더 많아집니다.

모처럼 택시가 마을을 들랑거리고, 잘 차려 입은 사람들로 마을이 한껏 달아오릅니다. 환한 얼굴, 보름달이 따로 없지요. 새 소식 어우러져 몹시 분주하고 활기가 넘칩니다.



온 가족이 모이고, 대청마루 둘러 앉아 송편을 만듭니다. 주전부리가 마땅치 않던 시절이라 많이도 만들었어요. 은근히 경쟁을 붙입니다. 그 속내 알 수 없는 아이들, 예쁘다는 칭찬 한 마디에 쉬지 않고 열심이죠. 두레상 가득 송편이 채워지면, 가마솥에 솔잎 가지 채 깔고, 채반 올려 그 위에 놓고 찝니다. 한쪽에선 가마솥 뚜껑 뒤집어 놓고 전을 붙입니다. 여인네가 부엌일 하는 동안, 남정네는 제구 챙기고, 지방 쓰기, 밤 치기 등을 합니다.

차례 준비는 대부분 해지기전 마무리됩니다. 젊은이는 경향각지에서 온 친구 만나러 나섭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토장국, 깨소금 맛 절로 납니다. 흙냄새 물씬 나는 뜨거운 정, 소슬바람이 시기질투 합니다. 한껏 자존심 내세우기도 하지만, 금세 웃음꽃 활짝 피지요. 담장 너머 골목까지 사랑이 넘쳐 납니다.

좁디좁은 방, 가족 모두 살 맞대고 누워, 정담으로 날 새는 줄 모릅니다. 마땅한 소통기구가 없었으니 당연하다 하겠으나, 궁금한 일이 참 많기도 하지요.

제사와 달리 차례는 이른 아침 지냅니다. 일가에 돌아가신 어른이 있으면, 최고 어른부터 순서대로 가가호호 방문하며 예를 올립니다. 차례 후 가족 모두 조상 묘 찾아 성묘 합니다.

오후가 되면 하나 둘 햇빛 좋은 마을공터에 사람이 모여듭니다. 윷이나 풍물놀이로 서로 축하하며 음식을 나눕니다. 즐기는 사이 뉘엿뉘엿 하루해가 저뭅니다. 저녁엔 다시 가족이 모여 달구경, 이야기 삼매경에 빠집니다. 모두모두 풍요롭기만 합니다.

필자가 자란 마을, 되새겨본 명절 풍경입니다. 지역마다 절차나 놀이가 다르지요. 북한에선 집에서 지내지 않고, 묘지에서 차례를 모신다 들었습니다. 가문전통, 지역에 따라 차려내는 음식 종류, 진설이 다릅니다. 돌아가신 분이 생전에 즐기던 음식 위주로 상차림 하기도 합니다. 윷놀이와 풍물놀이 뿐인가요. 강강술래, 소멕이나 거북놀이, 씨름, 줄다리기, 가마싸움 등 다채로운 놀이가 행해지지요.

만나는 모두가 반갑고 소중하지요. 조상 추모는 삶의 근원을 돌아보는 일이요, 감사하는 일입니다. 고향은 그리움의 시작입니다. 언제고 들춰볼 수 있는 즐거움이요 긍지입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민족대이동이 이루어지지요. 오가는 길이 험난하거나 고생쯤은 아무런 방해가 되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우리 전통문화입니다.

이런 의식이나 인식이 희석되거나 완화된다는 보도가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 드물게 10일이란 긴 연휴 영향도 있겠지요. 통계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요. 이번 한가위, 60% 가까이 그저 연휴 중 하나로 생각한다는군요. 가족 유대 관점에서도 70% 넘게, 굳이 연휴에 만날 필요가 없다고 응답했더군요. 여성이나 20대들의 경우 80%가까이 됩니다. 귀성 계획이 없다는 사람도 40% 가까이 되더군요.

풍속이나 문화는 필요에 따라 생멸, 관점이나 가치관, 환경에 따라 바뀝니다. 걱정할 일이 아닌지 모르지요. 좋은 문화, 고운 문화는 자연히 또는 의지에 따라 보전되기도 합니다. 과거 조선을 강점한 일본이 펼친 문화말살정책, 우리민족성, 전통문화 자체를 없애려 했지요. 그 치밀하고 혹독한 탄압 속에서 우리 명절 풍습은 살아남습니다. 인간관계가 소중하게 생각되는 미래사회. 정 나눔이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요? 갈수록 가까운 일가가 사라집니다. 먼 일가친척도 반가운 시절이 되겠지요. 모든 생명체가 곱게 어우러지는 기회, 명절이 되리란 생각입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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