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를 당하다

  • 국제
  • 명예기자 뉴스

사기를 당하다

  • 승인 2016-11-04 14:14
  • 미디어 아카데미 명예기자미디어 아카데미 명예기자
석회붕에서 잘생긴 터키남자를 만났다. 잘생긴 애가 하도 웃으면서 쫓아다니기에 ‘한국 돌아가지 말고 여기에 뼈를 묻어야겠다’고 입방정 떤 게 죄였을까. 몇 시간 안 돼 사기를 당했다.


파묵칼레 다음으로 가는 도시인 페티예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해양도시다. 유럽인들이 휴양으로 많이 오는 도시였고, 전 세계적으로 패러글라이딩으로 유명해서 사람이 많은 도시였다.
페티예로 넘어가서 패러글라이딩을 예약하는 게 원래 계획이었다. 하지만 파묵칼레에서 만난 버스회사 직원이 능숙하게 한국어를 하면서 싸게 해준다고 했다. 어차피 장사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도 싸게 예약하면 그만이었다.
보통 240리라 정도면 사진, 동영상 포함해서 패러글라이딩이 가능하다. 몇 번 비싸다고 튕겼더니 200리라에 해주겠다고 했다. 약간 의심스러워서 몇 번이고 확인을 했다.
“동영상이랑 사진 다 포함인거 맞지?”
“응, 맞아. 다 포함한 가격이야.”
“진짜지?”
“응, 진짜야.”
예약확인증을 받아들고 못 미더운 마음이 들어 직원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왜 찍어? 한국인은 왜 이렇게 의심이 많아?”
“의심이 많은 게 아니라 추억을 남기고 싶어서야. 너랑 만난 것도 나한텐 추억이거든.”
내 말을 믿지 않는 다는 듯, 입을 삐쭉했다. 내가 사진을 어디 올릴지 모르기 때문에 치려던 사기도 접지 않을까 싶었다.
“너처럼 예쁜 한국인 여자 친구 만드는 게 내 목표야.”
“넌 잘생겼으니깐 예쁜 여자 친구 생길 거야.”
기분이 좋아 서로 마음에도 없는 덕담을 한마디씩 주고받고 헤어졌다.

페티예에 도착해 어메이징한 패러글라이딩을 했다. 한국에 있을 때 보령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보다 훨씬 멋졌다. 발아래로 펼쳐진 바다는 에메랄드빛을 띄기도 했고 그새 사파이어 색깔을 띠기도 했다. 왜 패티예가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장소 중 1개 인지 알만 했다. 바다 뒤로 펼쳐진 집들은 체코나 이탈리아 같은 유럽풍 분위기를 냈다. 사람들은 앉아서 맥주 한잔을 곁들이며 저마다 수다를 떨고 있다.
즐겁게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내려와 생일파티에 끼어 맥주한잔을 얻어 마셨다. 후텁지근한 날씨는 미지근한 맥주마저도 달콤하게 만들었다. 준비가 끝났다는 소리에 사진과 동영상을 받으러 갔다. 이제 보트투어를 먼저 할까? 밥을 먼저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뛰어갔다. 그 때부터 시작일지 누가 알았을까.
레스토랑의 한 켠으로 날 데려갔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동영상과 사진 받으려면 130리라를 더 내란다.
“무슨 소리야? 난 분명히 사진, 동영상 포함해서 200리라 지불했는데.”
“니가 가져온 예약증에 사진, 동영상 안 쓰여 있잖아. 패러글라이딩만 200리라야. 사진이랑 동영상 받고 싶으면 돈 더 내야 돼.”
“얼만데?”
“130리라.”
“장난해?”

얼토당토 않는 가격에 어이가 없었다. 미리 찍어놨던 직원의 사진을 들이밀었다.
“난 너희 직원한테 전체 포함으로 예약했어. 전화해서 확인해봐. 나 직원 사진도 있어.”
“내가 얘가 누군지 어떻게 알아? 여기 연락처 몰라.”
“거짓말 하지마. 내가 파묵칼레에서 만난 직원이 여기에 연락했잖아. 그래서 너희가 나 픽업하러 왔잖아. 근데 연락처를 모른다고?”
“연락처 모른다니까? 그러게 왜 네가 다른 도시에서 예약하고 왔어? 네 잘못이야.”
1시간이나 이어진 말싸움은 끊날 줄 모르고 도돌이표였다. 직원들은 익숙한 관경이라는 듯이 팔짱으로 끼고 쳐다봤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구경 중이었다. 이 분노를 모두 표현하기에 내 영어실력은 너무 부족했고, 반면 직원은 영어를 너무 잘했다.

한참이나 화가 나서 인상을 찌푸리고 앉아있었더니 협상아닌 협상이 들어왔다.
“110리라 만 줘.”
“나 돈 없어. 90리라로 해.”
“안 돼. 110리라가 최소야.”
“나 학생이야. 진짜 돈 없어. 아르바이트해서 여행 온 배낭여행객이야. 너한테 110주로 나면 나 오늘 점심, 저녁 다 굶어야 돼.”
학생이라는 걸 어필했더니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못 이기는 척 사진과 동영상이 든 CD를 건네줬다.
“왜 CD야? USB라 그랬는데?”
“우린 CD만 취급해.”
그래, 그래라. 1시간 동안 되지도 않는 영어로 싸웠더니 이젠 화낼 힘도 없었다. CD를 받아들고 숙소로 가는 차를 탔다. 밖으로 보이는 욜루데니즈 --해안가의 풍경이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터키인들은 아무도 믿지 마.”
진이 빠져 멍하니 창밖만 보는 나에게 직원이 충고 아닌 충고의 말을 건넸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이라면 카파도키아, 파묵칼레에서 만났던 분과 계속해서 일정이 겹쳤다. 숙소에 혼자 있었다면 우울했을 텐데 하소연을 들어주셔서 맘껏 욕할 수 있었다. 해양 도시답게 값싸고 맛있는 생선요리와 술 한 잔을 하며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만난 대만인 오펠리아와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인생경험이었을까./전민영 미디어아카데미 명예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날씨]대전·충남 1~5㎝ 적설 예상…계룡에 대설주의보
  2. 대전시장 도전 許 출판기념회에 與 일부 경쟁자도 눈길
  3.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4.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5.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1. 천안법원, 정지 신호에도 직진해 사망자 유발시킨 30대 중국인 벌금형
  2.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3.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4.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5.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헤드라인 뉴스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김민석 국무총리와 더불어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대전시와 충남도 행정통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격 회동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얼마 전 충청권을 찾아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해 긍정적 메시지를 띄운 것과 관련한 후속 조치로 이 사안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김 총리와 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15일 서울에서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갖는다. 김 총리와 일부 총리실 관계자, 대전 충남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에서 김 총리와 충청권 의원들은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 원도심 재편의 분수령이 될 '대전역 철도입체화 통합개발'이 이번엔 국가계획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초 철도 지하화 선도지구 3곳을 선정한 데 이어, 추가 지하화 노선을 포함한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종합계획' 수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종합계획 반영 여부는 이르면 12월,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당초 국토부는 12월 결과 발표를 예고했으나,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발표 시점이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전국 지자체들은 종합..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