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 |
잘 모르는 누군가와 친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같이 식사하는 거다.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는 몸의 양식뿐만 아니라 마음의 양식도 함께 채운다. 요즘은 먹을거리는 풍족한데 함께 먹을 좋은 사람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사랑하는 가족과 한자리에 모두 모여 식사를 몇 번이나 하는지 생각해 보면 금방 수긍된다. 음식을 먹을 때는 저절로 마음이 편해진다. 이렇게 음식 앞에서 포근해지는 마음은 부드럽고 따뜻한 엄마 품에서 젖을 빨던 갓난아기 시절부터 이어온 인간의 본능이다. 울던 아기도 젖을 물리면 조용해진다. 2016년은 대한민국 최고의 화학 관련 전문연구기관인 한국화학연구원(이하 화학연)이 창립된 지 40돌이 되는 해다. 지난 9월 2일로 불혹의 나이를 넘겼다. 뜻깊은 창립 40돌을 맞이하여 화학연은 '맛있는 화학'을 발간하였다. '부엌 실험실'에서 자녀들과 함께 실험하듯이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면 밥상머리 신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 책은 음식 맛의 기본 재료인 소금, 설탕, 식초, 기름, 그리고 장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먼저 '소금, 간을 맞추다'. 인류 역사는 곧 소금의 역사다. 백색 황금으로 불린 소금은 화폐며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소금은 맛을 낼 뿐만 아니라 그 화학적 성질을 통해 '요리의 과학'을 만든다. 독소나 냄새를 없앨 때, 생선이나 고기를 굽고 채소를 데칠 때, 국수를 삶을 때도 소금을 넣는다. ▲둘째, '설탕, 달콤함에 빠지다'. 설탕은 주방에서 없어서는 안 될 '안방마님'이다. 혀끝을 자극하는 달콤함으로 음식에 단맛을 더해주고 요리할 때 맛의 균형을 잡는다. 어린 시절 골목 어귀에서 별이나 비행기 모양을 찍어서 뽑기 혹은 띠기를 하던 '달고나'는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있다. 설탕이 160도 이상에서는 캐러멜화가 되면 본래 설탕보다 더 진하고 향기로운 풍미를 낸다.
▲셋째, '식초, 새콤함에 톡 쏘다'. 식초는 아세트산(초산)이 3~5% 정도 녹아있는 묽은 수용액으로 새콤한 신맛과 코를 톡 쏘는 향이 특징이다. 식초는 입맛을 돋우는 조미료 역할은 물론 탁월한 피로회복 효과와 살균 기능까지 갖춘 '팔방미인'이다. 식초는 또한 비린내를 잡고 아삭거리는 식감을 살려준다.
▲넷째, '기름, 고소함이 가득하다'.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식감을 선사하는 기름은 채소, 해산물, 고기 등 다양한 식재료와 고루 어우러져 음식의 풍미를 높여주는 '주방의 보배'다. 기름과 지방은 녹는점이 다른 이란성쌍둥이다. 상온에서 기름은 액체, 지방은 고체다. 집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기름은 맛의 다양성을 살려주고 요리의 완성도를 높이는 주방의 '일등공신'이다. ▲마지막으로 '장, 독에서 맛이 익다'. 우리는 공동주택이 등장하기 전 팔도 어디를 가나 집집마다 장독대 하나씩은 꼭 갖춘 '장의 민족'이다. 장은 우리 식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 조미료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경문화에서는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가 늘 부족했다. 장은 이 중요한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된장은 복합발효의 산물이며 간장은 천연조미료다. 가장 늦게 태어난 고추장은 한식문화의 새로운 리더로 각광받고 있으며, 콩을 거의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청국장은 그 영양가와 속성으로 만들 수 있는 효율성 모두 높은 발효식품이다. 대부분 학창시절 가장 어려운 과목 중 하나는 화학이었다. 하지만 우리 생활 어느 곳에서나 화학은 존재한다. 특히 입는 옷, 먹는 음식, 건축자재와 생활용품 등 '의식주' 활동이 계속되는 한, 화학은 인간의 삶의 질 향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친근한 동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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