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규문 대전평생교육진흥원장 |
지금의 대전은 충청도 토박이 인구 비율이 낮고 그 사람이 어디에서 왔건 차별 없이 섞여 살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점은 성장 잠재력이 될 수 있는 대전의 장점임이 분명하지만 대전은 주민들의 지역에 대한 의식이 약한 것 또한 사실이다. 대전에 살면서도 대전을 깎아내리기만 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갈등만 부추기거나 대전을 돈 벌기 위한 사업장이나 출세의 경유지로만 여기는 사람들을 보게 될 때 나는 그들에게 이제는 정신적으로 대전에 뿌리를 내리고 진짜 대전사람이 되어 보자고 말하고 싶다. 지역정당이 존재했던 몇 년 전 선거 때 젊은 시절 대전으로 이주해 노년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출신지역에 대한 귀속감을 강하게 갖고 있던 분이 자식들에게 우리 지역정당 후보에게 투표를 권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전 와서 자식 낳고 살았으니까 이제 우리는 대전사람이라는 이유였다고 한다. 투표 행태에 대한 찬반을 떠나 지역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일화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주민이라는 자각과 지역공동체에 대한 귀속감은 한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고 지역에 대해 갖는 애정은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개인이 형성하는 지역과 주민들에 대한 동일시와 일체감은 갈등 해소와 사회 통합에 영향을 미치며 더 나아가 지역 문화 전승과 경제적 경쟁력 향상에도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주민 삶의 질 전체가 달라질 수 있다.
대전평생교육진흥원이 대전 지역 10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대전의 재발견' 과목을 3년째 운영해 오면서 대전시민대학에 공동체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대전평생교육'지에 '대전 구석구석', '대전 지도를 밟다' 지면을 마련해서 대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도 시민들이 대전사람으로 자각을 갖고 대전에 애정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인조실록에 보면 송시열과 송준길은 모두 충청도 회덕인이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회덕은 현대 대전의 뿌리가 되는 대표적 고을 이름이니까 오늘로 치자면 송시열과 송준길은 대전사람이라는 뜻이다. 송시열의 실제 출생지는 외가가 있는 옥천이었고 타지로 거처를 옮긴 때도 여러 번 되지만 회덕에 뿌리내린 그와 그 집안의 정체성이 그를 영원한 회덕인으로 남게 한 것이다. 대전에 산다면 어디 가서라도 '나는 대전사람입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대전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위해 우리 스스로나 남들이 불러줄 수 있는 이름으로 회덕인처럼 대전인을 써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이렇게 부를 때에 좋은 점이 있다. Daejeon이라는 영문 표기에 ene를 붙이고 우리 발음 그대로 대저닌으로 읽으면 어색하고 생뚱맞은 명칭을 새로 만들지 않아도 되고 우리 것 그대로 국제 감각도 살릴 수 있다. 영어 어미 ?ene는 어디 출생, 어디에 사는 사람을 뜻하기 때문이다. 나자렛 사람 예수 'Jesus the Nazarene'에서처럼 지명에 ene를 붙여 그 지역사람을 가리키는 예가 많이 있고, 파리사람을 뜻하는 Parisian, Parisien, Parisienne도 같은 유형의 어미라고 볼 수 있다. 대전인 명칭과 더불어 대전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우리의 좋은 특성을 키워 가면 대전인은 우리가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이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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