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경찰서 황수영 경위가 부여 석성리에 조성된 경찰충혼탑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
#1. 1995년 10월 24일 무장간첩 김동식(당시 33세)은 조원 박광남과 함께 대전에서 부여행 버스를 타고 석성면 정각리에서 정각사까지 걸어가는 길이었다. 1980년 남파돼 스님으로 위장한 고정간첩 '봉화1호'를 접선하라는 지령을 받았지만, 왠지 가기 싫었다.
며칠 전에 '봉화1호'를 찾고자 부여와 공주 마곡사에 수소문해봤지만,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고, 전향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김동식은 점퍼 안주머니에 든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을 의식하며 빠르게 걸음을 뗐다.
#2. 그날 충남 부여경찰서 황수영(31) 순경은 M16소총을 들고 트럭 적재함에 올라 정각사를 향해 출발했다.
그날은 매년 하는 독수리훈련 첫 날이었기 때문에 연습상황으로 생각했으나, 칼빈과 M16소총 그리고 실탄까지 지급되자 심각한 일이 발생했구나 직감했다.
황 순경이 탄 트럭 안에는 장진희(30)·나성주(28) 순경과 송균헌(30) 경장이 함께 있었고, 긴장한 눈빛으로 말없이 카빈총을 끌어안았다.
#3. “꼼짝말고 손들어.” 간첩 김동식은 '아차, 걸렸구나'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정각사에서 봉화1호를 접선하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길에 스님으로 변장한 건장한 사내가 15m 앞에서 총을 겨누고 있었다. 분명히 경찰이거나 정보기관원일 것이고 봉화1호가 남한 수사기관에 전향해 우리가 접근할 때를 기다렸던 게 분명했다.
19살의 나이에 대남공작원에 선발돼 4년간 방학은 물론 외출·외박·면회 없던 금성정치군사대학과 군사훈련 받았던 날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김동식은 손을 드는 척 오른손을 안주머니에 넣어 권총을 꺼내는 순간 '땅' 총소리가 울렸다.
#4. 부여 정각사 석성저수지에 잠복한 황 순경은 총소리가 난 곳에서 남성 2명이 뛰어가는 걸 목격했다. 한 명은 석성저수지 둑을 타고 넘어갔고, 다른 한 명은 100m 앞선 나성주·송균헌 조원과 총격전을 벌인 후 뒤따라 도주하는 길이었다. 그들은 총을 겨눠 지나던 트럭을 세워 운전석에 타는가 싶더니 곧바로 차를 버리고 반대편 산으로 모습을 감췄다.
황 순경은 어느새 부여~논산간 4번 국도를 넘어 그들이 도주한 방향으로 뛰고 있었고, 한 발 앞에는 장진희 순경이 있었다.
#5. 총소리가 빗발치는 가운데 김동식은 박광남과 함께 멈춘 트럭에 올라타고 키를 돌렸다.
김동식은 1990년 5월 남한에 1차 침투해 정보수집과 포섭활동을 벌인 후 그해 10월 북에 복귀할 때까지 체류한 경험이 있어 남한 도로에 익숙했다. 또 지난 9월 남한에 2차 침투 후 서대전역을 통해 대전 유천동 여인숙에서 머물렀고, 서구 도마동 도솔산 아래 2곳에 숨겨둔 무전기를 꺼내 북에 상황을 전달해야 했다. 그러나 트럭에 시동은 켜지지 않았고, 그사이 경찰 총격소리가 가까워졌다.
#6. 무장간첩이 숨어들어 간 수풀 속으로 장 순경과 황 순경은 조심히 걸어 들어갔다.
박광남이 산 위로 도주하는 것은 목격됐으나 김동식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장 순경이 수풀을 헤치며 오른쪽으로 꺾으려는 순간, 웅크린 김동식이 빼어든 권총이 햇빛에 비쳤다. 황 순경이 동시에 사격해 김동식의 종아리를 관통시켰지만, 장 순경은 김의 권총에 복부를 맞고 쓰러졌다. 황 순경은 무장간첩 김동식을 향해 몸을 던져 수 분간 사투를 벌인 끝에 김을 제압할 수 있었다.
#7. 2014년 10월 23일 부여 석성리 경찰충혼탑에 선 황수영 경위는 동료 고 장진희·나성주 경사에 묵념을 올렸다.
고 장 경사의 아들은 현역 군인으로, 고 나 경사의 딸은 대학 경찰학과 학생으로 성장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황 경위는 “두 경찰의 아이들이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해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라며 “평화로운 시골마을에 무장간첩이 나타났던 것처럼 안보사건은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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