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박물지(정림사 중창, 뜨거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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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박물지(정림사 중창, 뜨거운 논란)

  • 승인 2007-06-05 00:00
  • 신문게재 2007-06-06 12면
  • 안순택안순택
충청박물지

두 번째 이야기-백제 부활의 꿈, 정림사
⑥정림사 중창, 뜨거운 논란

백제의 꿈, 한국인 가슴 속에서 피어날지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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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직장이 부여에 있었던 관계로 반 십년 부여에서 살았다. 군대를 갓 마쳤을 땐데 이따금씩 대전에서 친구들이 찾아오곤 했다. 우리는 어둠이 내리면 정림사지 오층석탑 아래 신문지를 깔고 소주를 나눠 먹었다. 한 녀석이 말했다. “부여에 오면 속는 것 같애. 위대한 왕국 백제의 왕도가 뭐 이러냐구. 아무 것도 없잖아. 경주에 가봐라. 돈 잔뜩 처들여 삐까번쩍하게 꾸며 놨잖아. 백제는 아직도 호구라구.”
지방대 나왔다고 홀대당하고 서울과 경상도 위주로 돌아가던 세상을 그런 식으로 푸념했던 것인데, 경주처럼 생각하고 부여를 찾는 사람들은 거지반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부여가 달라지고 있다

이랬던 부여가 달라지고 있다. 곳곳에서 백제를 재현하려는 망치소리가 요란하다. 백제역사재현단지에 가보라. 나당연합군에 의해 불탄 지 1347년 만에 백제왕궁은 물론 사비가 다시 세워지고 있다.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100만 평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고건축 복원공사 현장으로 이곳에 사용되는 목재만 160억 원어치나 된다. 높이가 38m에 이르는 화려한 5층 목탑 등 백제역사문화관 2층 로비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은 장관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우려의 핵심은 백제 건축문화에 관한 기록이나 직접적인 유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건축물을 복원한다는 건 오히려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적지는 그대로 두고 박물관에 모형을 전시하는 동결보존이냐 이왕이면 복원해 관광상품으로도 활용하는 활용보존이냐 하는 것도 논란거리다.
이완구 지사가 백제역사재현단지를 보고 “실질적인 백제역사가 재현되는 곳이 아니라 한낱 세트장에 불과하다”며 분노 섞인 아쉬움을 토로한 것은 백제이되 백제답지 않다는 우려라 하겠다.
지난 2월 초, 충남도는 방치돼 있는 도내 옛 절터를 복원 정비하겠다고 발표했다.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가 출토된 부여군 능산리사지, 고려시대 화엄종 사찰로 알려진 서산시 운산면 보원사지(국가사적 제316호), 청양군 장평면 도림사지(충남도 기념물 제100호) 등을 발굴 복원 정비하는 사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의 초점은 정림사지에 있었다. 올해부터 2011년까지 350억 원을 들여 금당과 중문, 회랑 등을 재건하겠다는 것이다. 정림사지엔 지금 탑과 함께 입구의 연못과 금당 뒷편의 강당이 이미 복원돼 있다. 금당 중문 회랑이 지어지면 사비시대와 같은 건물의 구색은 다 갖추게 된다. 하지만 사비시대의 모습은 알 수가 없고, 백제의 건축문화 지식을 총동원한다하더라도 추정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복원이 아니며 정확하게 말해서 새로 짓겠다는(중창) 것이다.
부여군의 계획은 보다 구체적이다. 군은 올해를 정림사 중창 원년으로 정했다. 발굴조사와 고증학술세미나를 여러 차례 가질 예정이다. 무엇보다 백제 건축문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으려 한다. 백제 건축물을 본 사람은 없다. 학술적으로는 연구가 상당히 이뤄졌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건물을 지어놓으면 이견이 돌출하는 일이 잦았다. 이번 기회에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백제 건축문화에 최대한 가까운 건물 모형을 찾겠다는 것이고, 세세한 부분까지 백제 건물을 짓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또 중창의 의미를 어디에 둘 것이냐 주민들에게 묻는다. 여홍기 부여군 문화계장은 “정림사 중창은 지역민에게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어떻게 부여를 만들어 갈 거냐, 고도 부여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줄 거냐, 지역민들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고 그 같은 고민이 중창 사업에 담길 것이다. 다시 말해 정림사 중창은 미래 부여 발전의 청사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부여 천도 1500년을 맞는 준비이기도 하다며 정림사 중창이라는 작업을 통해 부여는 아직도 살아있다, 소중하다는 걸 지역민이 깨닫도록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부여읍, 옛 사비 땅에는 이곳이 사비요 하고 알려줄 만한 무엇이 없다. 그걸 지금까지 말해준 유일한 유적이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다. 그러니 정림사를 중창해 부여의 랜드마크로 삼자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그러나 중창을 꼭 해야 하느냐 묻는 이들도 많다. 특히 역사를 연구하는 학계 쪽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복원도 넓은 의미에서 보존의 한 분야이지만 연구를 축적한 뒤 복원하지 않으면 오히려 유적을 훼손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직 정림사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가지 예가 지난 회에 지적했던 승방이 발견되지 않은 부분이다. 승려가 살았느냐, 살지 않았느냐는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학자들은 발굴이 덜 돼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한마디로 잘라 말한다. 그런 상태에서 중창을 해버리면 다시 발굴을 한다는 건 사실상 어려워 절의 정체를 밝힐 중요한 유적을 묻어버리는 꼴이라는 것이다.
절터만 자꾸 파헤칠 게 아니라 지금은 도로가 돼버린 주변까지 발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승방을 찾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림사의 정체를 밝혀줄 유적이 있을 거라는 것이다.
사비가 철저한 계획도시라고 했다. 그 증거로 바둑판 모양으로 도로를 내 도시공간을 나눴으며 크게 전부와 후부, 그리고 동부와 서부, 중부 등 5부로 나눈 걸 제시했다. 각 부는 또 전항과 후항, 동항과 서항, 중항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왕궁 대문으로부터 궁남지로 이어지는 주작대로의 오른편에 정림사가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각 부의 중항에 절이 있었고 이 절을 중심으로 전후 동서로 생활공간이 나뉘었을 거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정림사를 기준으로 보면, 중부의 중항에 정림사가 있었을 거란 얘기이고, 대로변이 아닌 도시 정중앙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정림사의 주변을 발굴해 보면 이런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읍내 절터의 위치는 물론 사비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밝히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거듭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1980년을 전후한 정림사지 발굴조사 결과, 사찰의 전체 규모나 건물 배치 등은 확인됐으나 건축물 각각의 구체적 모습을 보여줄 만한 유물은 없다. 한 학자는 “오층석탑만으로도 위대했던 백제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절터 옆의 박물관에서 시청각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교육 기능은 충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꼭 중창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옛날 시골 읍내의 퇴락한 풍경으로 남아있던 부여를 사랑했던 사람도 있었다. 육당 최남선이다. 그는 ‘삼도고적순례`에서 부여를 평양, 경주와 비교해 이렇게 논했다.
‘평양과 같은 큰 시가를 보지 못하고 경주와 같은 풍부한 유물들을 대할 수 없음이 부여를 더욱 쓸쓸히 느끼게 합니다마는 부여의 지형으로부터 백제의 전 역사를 연결하는 갖가지 사실 전체가 한 덩어리 쓸쓸함, 곧 적막으로 우리의 눈과 마음에 비추임을 앙탈할 수 없습니다. 사탕은 달 것이요, 소금은 짤 것이요, 역사의 자취는 쓸쓸할 것이라고 값을 정한다면 이러한 의미에서 고적다운 고적은 우리 부여라 할 것입니다.`
몰론 그 반대도 있다.
‘부여는 정말 작은 읍이다. 인구 3만 명에 시가지라고 해야 사방 1㎞도 안 되는 소읍이다. 그래서 가람 이병기 선생도 ‘낙화암`이라는 기행문에서 부여의 첫 인상을 “이것이 과연 고도 부여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허망부터 말했다‘(김동환 편 `반도산하‘)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 백제가 그 대상인 만큼 백제인으로서 백제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백제의 유적을 그냥 두는 게 옳은가, 복원하는 게 옳은가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정림사의 중창이 옳으냐 그르냐,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건 섣불리 나서서 용훼할 일이 아니나 보다 신중에 신중을 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는 그저 입만 섞을 뿐. 그 결정은 부여 사람들이 중심이 돼 내려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제 정림사를 떠날 때가 됐다.
‘백제,
예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거름을 남기는 곳,`(신동엽 ‘금강` 중에서)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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