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서 봄 사세요… 정은 덤 이라우~”

“5일장서 봄 사세요… 정은 덤 이라우~”

냉이.씀바귀 등 봄나물이 ‘한창’ “가격은 무슨… 이쁘면 더 싸게줘”... 구수한 사투리에 사람냄새 물씬

  • 승인 2007-02-09 00:00
  • 신문게재 2007-02-10 8면
  • 권은남 기자권은남 기자
벌금자리(벼룩 나물), 구수댕이, 씀바귀와 봄을 대표하는 냉이까지…
5일장에는 이들 봄 나물들을 앞세워 일찌감치 봄이 자리하고 있다.

장터 여기저기에서 가격을 흥정하는 구수한 사투리와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봄을 재촉하며, 5일 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봄의 따스함과 함께 여유를 전해 주고 있다.

5일 장에 가면 완연한 봄을 누구보다 먼저 맞을 수 있을 듯하다.
5일 장에서는 `정(情)`으로 결정되는 물건 가격 등 대형할인매장에서 볼 수 없는 눈요깃거리가 있고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다양한 먹을거리가 식욕을 자극한다. 또 장터 곳곳에 감춰진 볼거리를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정으로 정해지는 물건 값="얼마 줄텨" "파는 사람이 값을 불려야지, 내가 값을 어떻게 정해나"
금산 장날인 지난 7일, 겨우내 말린 시래기(우거지)를 팔려 나온 자칭 `약초 할머니`(72, 금산군 부리면)가 시래기를 사려는 사람과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다.

약초 할머니는 `얼마 줄텨`라며 시래기 한 다발 가격을 손님에게 먼저 물어봤다. 이러한 이상한(?) 거래가 익숙한지 사려는 사람도 가격을 이야기하지 않고 `내가 어떻게 값을 정해?`라며 다시 약초 할머니에게 먼저 가격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두어 마디 더 오간 뒤 그날 `약초 할머니`의 시래기 한 다발 가격은 1500원으로 정해졌다.
시래기 한 다발을 비닐봉투에 담아주며 약초 할머니는 "2000원은 받아야 하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너무 싸게 팔아서 아쉬운지, 그래도 버스삯이라도 벌어서 다행인지 모를 듯한 표정과 말투 속에 거래를 마쳤다. 왜 가격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약초 할머니는 "가격은 무슨 가격 되는대로 팔아, 엿장수 마음 대로여"라고 대답하며 크게 웃었다. 5일 장에서 거래는 봄나물과 각종 채소들의 가격은 정말로 엿장수 마음대로였다.

봄나물을 가지고 나온 할머니들은 우선 옆 사람이 얼마나 팔려고 하는지를 사전 파악한다. 그리고는 이를 바탕으로 대충 감(感)으로 팔려는 가격을 마음속으로 정해놓은 뒤, 마지막으로 손님이 제시하는 가격을 참고해 최종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대부분. 이 때문에 5일 장에는 가격을 놓고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밀고 당기는 흥정이 끼어들 여지가 충분하다.

한마디로 5일 장에서 판매되는 가격은 시장 조사 가격 이외 손님의 마음까지 생각해서 결정되는 복잡미묘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아침 일찍 약초 할머니와 함께 장에 나왔다는 또 다른 할머니는 "잘 걸리면 비싸게 파는 것도 있고 어떨 때는 버스비만 받기도 해"라며 가격이 들쭉날쭉한 것이 다양하다고 받아쳤다. "단골은 말할 것도 없고, 얼굴이 예쁘면 더 싸게 주기도 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5일 장에서는 대형할인매장에서처럼 공정소비자가격이 아닌 `정`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고 흥정에 의해 거래가 형성된다. 할머니 말처럼 예쁜 사람에게는 같은 물건이라도 더 싸게 주는지 5일 장에서 경험하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5일장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같은 이상한(?) 풍경은 장터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흥정과정의 정뿐 만 아니라 요리법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구수댕이는 참기름하고 무쳐 먹으면 맛있어`. 구수댕이라는 나물 이름을 처음 듣고 어떻게 먹어야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구수댕이에 대한 자세한 요리법을 덤을 알려준다.

노점을 하는 할머니들이 알려주는 요리법은 간단하다. 구수댕이, 벌금자리 등은 무치거나, 국에 넣거나, 둘 중에 하나로 냉이 요리법과 별반 다르지 않다. 특별하지는 않은 요리법을 듣고 있자면 재미없다는 생각보다 입안이 군침이 고이고 만다.

장날 노점을 하는 할머니들의 자리는 어떻게 정해지는지도 궁금했다. 부적면에서 온 김모 할머니는 "길거리 개똥참외도 주인은 있다"라는 말로 비록 노점상이지만 자리에 관한 불문율이 5일 장을 유지하는 기본임을 강조했다.

목이 좋은 곳은 명패는 없지만 주인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다. 우선 10여 년 이상 5일 장을 지켜온 고참 할머니들에게는 고정석이 정해져 있다. 그 자리는 누구도 넘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끔 텃밭의 채소를 내다 팔아 돈을 만들려 오는 할머니들의 자리는 `선착순`으로 정해진다. 기계적으로 바닥에 선이 그어지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노점을 하는 상인들은 `5일 장이 전보다 사람냄새가 안 난다`고 한다. 이유는 홈쇼핑과 인터넷, 그리고 택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찌감치 가지고 나온 고구마 2관을 모두 팔아치운 최옥자(66, 남일면 마장리) 할머니는 "요즘 대부분 전화나 컴퓨터(인터넷)하고 택배까지 나서는 바람에 5일 장을 찾는 사람이 줄었다"고 말했다. 정보통신의 발달이 5일 장 위협하며, 사람냄새가 점점 옅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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