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월인석보(月印釋譜)’이 첫권에 같은 내용이 실려 널리 알려졌다. 후자는 1940년 발견될 때까지 모르고 한글의 형체에 대하여 고대글자 모방설, 고전(古篆) 기원설, 범자(梵字) 기원설, 몽골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창살 모양의 기원설까지 나왔다. 이 책이 알려지면서 발음기관 상형설(象形說)이 제자원리(制字原理)였음이 밝혀졌다.
후자는 예의(例義)`해례(解例)`정인지 서문 등 3부분 33장.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었고, 해례는 정인지(鄭麟趾)`박팽년(朴彭年)`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최항(崔恒)`강희안(姜希顔)`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 집현전(集賢殿) 학사가 집필. 정인지가 서문에는 1446년 9월 상순을 발간일을 명시, 후일 한글날 제정의 바탕이 되다.
1940년까지 경북 안동 와룡면(臥龍面) 주하동(周下洞) 이한걸가(李漢杰家)에 소장되었던 해례본은 선조 이천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세종으로부터 받은 것. 서울 간송미술관에 소장되기까지에는 김태준(金台俊)의 노력이 있었다. 이한걸의 셋째 아들 용준(容準)의 글씨로 보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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