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땅 밟지는 못해도 물에 비친 추억을 본다

고향땅 밟지는 못해도 물에 비친 추억을 본다

추석을 보름여 앞둔 23일.

  • 승인 2006-09-28 00:00
  • 조양수 기자조양수 기자
원주민 명절땐 이곳 찾아 마음 달래
댐 건설 전엔 인구 9천명 삶의터전
대청호 실향민을 찾아서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이다. 바람에선 낯익은 가을냄새가 조금씩 묻어나고 들녘에선 벼가 고개를 숙인다.

또 다시 민족 명절인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고향을 두고 있는 실향민들이라면 고향땅을 밟을 생각에 마음은 벌써부터 들떠있다.

하지만 고향이 있지만 갈수 없는 실향민도 있다. 고향이 물에 잠겨 고향땅을 두번 다시는 밟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추석은 그리운 땅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추억, 그리고 그리움이다.

물론 이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의 마음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이제나저제나 고향의 하늘만 바라보는 간절함이 있다.

고향이 있어도 바쁘다는 핑계로 삶이 고단하다는 구실로 애써 고향을 외면하면서 살아가는 억지 실향민에게 고향의 의미를 다시한번 일깨워준다.








대전에서 옥천 방향으로 향하다 대청영농구판장 길로 들어섰다.

맑고 투명한 가을
하늘 아래 자리한 기와집, 인기척 없는 작은 버스 정류장, 그리고 논둑길에는 쏟아지
는 햇빛 속 한 줄기 실바람이 코스모스 꽃을 흔든다.

또 개망초 꽃과 흡사한 작고 고운 하얀빛의 이름모를 가을 들꽃과 꽃망울이 조롱조롱 달려있는 꽃분홍색의 여뀌 무리들도 보인다.

주변엔 고개 숙인 벼들로 황금빛을 띠고 색깔도 고운 자주색의 물봉선화가 가을 바람에 일렁인다. 자연은 한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더니 과연, 아침의 청명한 햇살 속에 고요한 숲과 나뭇가지 사이를 비껴 흐르는 따뜻한 풍경이, 그리고 지친발걸음 재촉하게 하는 해넘이가 이전에 느꼈던 모습과는 모두 달랐다.

주촌-바깥아감-세천이란 문구가 새겨진 조그만 버스정류장을 지나자 충북과 대전을 경계로 둘러싼 대청호가 펼쳐졌다.

‘낚시금지, 너무아파요’란 썰렁한 푯말이 이곳이 대청호란 것을 확실히 알려주고 있다.
지금은 지도에서 사라졌지만 당시 이 곳은 지난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기 이전까지 인구수가 9000여명에 달하던 곳이었다.



대형 변전소와 초등학교를 비롯해 한달에 몇번씩 소시장과 재래시장이 섰다.

평당 보상가가 적게는 600원부터 많게는 5500원까지 였을 정도였고, 조선 중종 때 형조판서 겸 예문관학을 지낸 충암 김정(1486∼1521년) 선생과 관계된 유적도 자리했다.

또 그곳에서 뿌리내리고 몇 대를 함께 살아온 은진 송씨의 주거 마을도 있었다. 소중한 문화 유산의 역사의 현장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무심코 지나치는 평범한 대청호가 돼버렸다. 가끔씩 명절과 추석때 대청호 중턱에서 넋놓고 바라보는 사람들과 마주칠 때가 있다. 바로 그들이 이 곳 원주민들이다.

수심에 가득찬 눈으로 어릴적 꿈에 뛰어놀던 모습을 연상하며 추억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그들이다. 덥기보다는 오히려 따뜻함이 느껴질 정도의 기분좋은 가을 햇살이 내려쬐기라도 하면 주촌리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하루 종일 고스톱을 치며 마음을 달랜다.



이들에게 고향땅을 밟을 날이 올 것이란 기대는 이미 기억속에 사라졌다. 고향이 있지만 물에 잠기어 갈 수 없는 고향. 대청댐 건설로 대청호가 담수되면서 사라진 삶의 터전.

그리고 꿈에서라도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내탑리 수영장. 만리포해수욕장보다 넓어 충청도에서 제일로 꼽혔던 수영장의 은빛 백사장의 곱디고운 감촉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비록 30년가까이 물에 잠긴 마을땅을 밟아 보지 못했지만 이따금 왁자지껄 웃음소리를 내며 또한 가끔은 점수 계산을 놓고 실랑이를 하며 그리움을 달래고 있는 대청호 주민들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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