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초(楚) 나라 양왕이 낮잠을 자는데 웬 여자와 정을 통하는 꿈을 꾸었다. 여자는 헤어지면서 말했다.
“저는 무산 남쪽 봉우리에 사는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된 답니다.” 이튿날 왕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만치 무산의 봉우리에 아침 햇살을 가득 머금은 구름이 하늘거리지 아니한가! 육체적인 ‘관계’를 ‘무산의 꿈’‘무산의 운우지정’으로 부르게 된 내력이 이것이다.
스무살 장발에 청바지 한양 시절. 이 분야(!)에 꽤 밝히기로 소문난 S시인이 세운상가 어디에서 구입한 춘화(春畵)를 함께 보았다. 몹시 추운 겨울이었는데도 얼마나 얼굴이 뜨거웠던지 이마에 송알송알 땀이 났다. 그 춘화는 모 화가의 ‘운우도(雲雨圖)’라는 그림. 웃통을 벗어 붙인 여자가 한쪽 다리를 슬며시 치켜든, 아주 야한 그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그 당시 서울의 객지 자취방에서 추운 겨울이 오면 S시인과 함께 몰래 웃으며 그림을 감상하곤 했다. 그러노라면 배 고프고 서러운 객지의 자취생활이 후끈거리는 열기에 추운줄을 몰랐다. 그래서 당시 S 시인은 겨울날 하얗게 내리는 눈을 보며 말하곤 했다. “돈도 없는디, 잘 되았다잉. 올해는 연탄 들이지 말자. 이 운우도 춘화로 겨울을 나자. 히히잇… 히히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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