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장애없는 세상 꿈꾸렴”

“아이야, 장애없는 세상 꿈꾸렴”

이경태 기자의 도우미 체험 <사회복지법인 성재원 일일봉사>

  • 승인 2006-03-31 00:00
  • 이경태 기자이경태 기자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는 받는 것 이상으로 어색하고 어렵기 마련이다. 그러나 봉사활동을 통해 누군가의 삶에 조그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 만큼 갚진 것도 없다. 이에 본지 수습 2월차 이경태 기자가 직접 사회 복지 법인을 찾아 장애 아동의 1일 봉사 도우미를 체험해 땀이 주는 또하나의 갚진 의미를 배웠다. <편집자 주>




뇌성마비兒 손발되어 ‘천국보다 아름다운 하루’
헤어짐이 아쉬운 듯 꼭잡은 손가락 ‘가슴 뭉클’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영화 ‘말아톤’에서 초원이가 치한으로 몰렸을 때 한 말이다. 초원이의 입을 통해 초원 어머니의 말이 나온 것이다.
장애로 인해 곤란해진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말. 그래서 더욱 가슴 저리다. 장애를 가진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기분, ‘20년을 벌 받으며 사는 기분’이라던 초원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우리다.

이들의 가슴앓이를 덜어주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기분을 우리 모두가 함께 느끼려는 시도부터라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지난 23일. 아침부터 부산하게 옷가지를 챙겼다. 갈 땐 가더라도 정장차림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어울릴 것 같지가 않았다.

오전 10시30분. 유성구 사회복지 법인 성재원을 찾았다. 수년 전 짧은 봉사 경험으로 봉사활동이 막연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 만큼 행동 하나하나에도 신경이 쓰였다.

참여하게 될 프로그램은 아동주간보호. 뇌성마비 1급 장애 아동들을 반 나절동안 돌봐줘야 하는 일이다. 작은 실수로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어 사전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담당 선생님은 “몇 주 전에는 자원봉사자가 뇌성마비 아동에게 음식을 잘못 먹여 인공호흡까지 했다”며 신중하고 섬세한 손길을 지시했다.

사전 교육을 마치고 직접 아이들을 만났다. 아동주간보호실에서 만난 아이들은 세 명. 말 그대로 뇌세포가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해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상태였다. 목,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제대로 앉을 수도 없었고, 경직
▲ 한번도 기저귀를 갈아본 적이 없는데다 테이프가 없는 접착식 기저귀를 미처 알지 못해 곤혹을 치렀지만 담당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조심스럽게 기저귀를 갈고 있다.
▲ 한번도 기저귀를 갈아본 적이 없는데다 테이프가 없는 접착식 기저귀를 미처 알지 못해 곤혹을 치렀지만 담당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조심스럽게 기저귀를 갈고 있다.
된 손과 발의 근육은 팔과 다리를 곧게 뻗을 수 없게 만들었다. 힘을 주면 줄수록 몸이 더욱 움츠러지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내 몸도 움츠러지는 듯 답답했다.

처음으로 맡겨진 임무는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이었다. 세 살짜리 조카가 있지만 그동안 한 번도 기저귀를 갈아 준 적이 없다. 그래도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듯이 기억을 되짚어가며 서툴게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이 기저귀는 테이프를 떼어내고 붙이는, 유일하게 알고 있던 형태의 기저귀가 아니었다. 테이프 비슷한 부분을 잡고 당기려는 순간 담당 선생님은 그때서야 이 초임병의 서툰 동작을 이해한 듯 테이프가 없어도 그냥 붙는 접착식 기저귀라고 설명해줬다.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댕댕’ 점심을 알리는 시계 소리. 벽시계에서 실제로 소리는 나지 않았다. 환청이었나?
그래도 아이들부터 먹여야 했다. 부모님들께서 직접 만들어 보낸 호박죽, 감자죽에서 나오는 온기를 통해 어머니들의 사랑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죽이 뜨거운 지 손등에 묻혀 온도를 확인하면서 아이들에게 죽을 먹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밥을 먹는 것은 의지가 있어 먹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음식물이 입에 들어가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입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들었다. 음식을 삼킬 때와 입을 벌릴 때 그리고 하품을 할 때를 제대로 알아야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알 수는 없는 법. 아이들이 입을 잘 벌리지 않아 죽을 뜬 숟가락을 들고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입이 크게 벌어졌다. 이때다 싶어 죽을 입에 넣어줬다. 갑자기 터져 나온 기침. 아이의 초점 없는 눈이 빨갛게 충혈되더니 원망스럽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점심을 다 먹이고 미안한 마음에 아이들의 팔과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담당 선생님의 마사지 시범을 본 뒤 손에 힘을 넣어가며 마사지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손에 너무 힘을 주거나 사용하지 않는 관절, 근육을 갑자기 움직이면 탈골이나 골절의 위험이 있다”고 다시 한 번 겁을 줬다. 그만큼 아이들을 대할 때에는 정성과 애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사지를 해 준 뒤 담당 선생님과 실로폰 놀이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실로폰 연주를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역시 아이들에게는 작지만 소중한 체험이길 바랐다. 선생님이 간단한 연주를 하는 동안에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한 아이의 손이 바르르 떨리면서 움츠려들었다. 주먹을 쥐려고 하는 양쪽 손에 검지 손가락을 넣어주었더니 꼭 쥐고 놓아주질 않았다.

어느덧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지만 두 손가락을 쥐고 눈을 감은 아이는 정령 날 보내기 싫어서 그랬던 것일까? 무엇인가 고통이 있었는지 아니면 헤어짐이 아쉬웠는지 아이의 왼쪽 눈가에 물기가 맺혀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보렴….’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짧은 시간동안의 만남으로 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답답하고 고달픈 생활을 가까이서 함께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비록 아이들에게 어떠한 존재로도 다가설 수 없지만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했던 몸짓만이라도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기를 바라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고했다.


장애인 정상적 사회복귀 재활 앞장

성재원은 어떤 곳

유성구 용계동에 위치한 성재원은 소외받던 장애인들의 정상적인 사회복귀를 위해 1962년 설립된 사회복지법인으로 현재 사회복지사, 재활치료사 등 150여명의 교사들이 660여명의 생활ㆍ이용 장애인에 대한 재활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이곳에서는 지체 장애인에 대한 치료, 보육, 생활 지도 등을 맡은 성세재활원, 교과활동 및 치료교육 활동으로 구성된 성세재활학교, 성인지체 장애인에 대한 기술 지도를 제공하는 성제재활자립원 등 장애인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7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자원봉사 모집 등을 홈페이지(http://www.sungse.org)를 통해 공고하고 있으며 봉사를 원하는 사람은 성재원(540-3000)으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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