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사라져도 우린 영원한 친구

학교 사라져도 우린 영원한 친구

책상에… 칠판에… 구석구석 새긴 추억

  • 승인 2006-02-24 00:00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시골 학교의 마지막 졸업식 - 청양 문성초등학교-

학교 졸업식을 떠올리면 엄숙함과 아쉬움만이 가득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톡톡’튀는 각종 이벤트로 또 하나의 축제로 변화하고 있다. 해마다 눈물바다를 이루던 이른바 ‘마지막 졸업식’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를 끝으로 오랜 역사를 마무리하는 청양의 문성초등학교, 슬픔 만큼이나 기쁨이 넘쳤던 그 현장을 찾아가봤다.


42년의 전통 이젠 역사속으로 내빈까지 30여
명 소박한 잔치
졸업생 3명에 상장은 17개 웃음꽃 “즐거웠던 추억들 고이 간직”

올해도 어김없이 또 하나의 학교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젊은 층들이 귀농(歸農)해 다산(多産)하는 기현상만이 해결할 수 있겠지만 불가능할 따름이다. 청양군에 위치한 문성초등학교 역시 그런 한계를 비껴갈 수 없는 학
교. 지난 17일은 이 학교의 마지막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지난 1964년 목면초등학교 간두분교로 시작, 1967년 문성국민학교로 승격한 후 42년만이다. 1666명에 달하는 졸업생을 배출하던, 한때 잘 나갔던 학교였다. 지난해만해도 청소년과학탐구대회, 통일문예회화대회, 미술경연대회, 음악경연대회 등 각종 대회의 상을 휩쓸 만큼 저력있는 학교로 인정받아왔다.



때문에 마지막 졸업식은 슬픔으로 가득찰 것으로 예상했다. 눈물바다를 이룰 것이라 짐작했다. 해마다 이 맘때쯤 수많은 언론이 담아내는 졸업식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당초 취재방향을 슬픔과 아쉬움으로 잡았던 것 역시 그 이유에서다.

착각이었다. 예기치않은 상황이었다. 슬픔과 아쉬움이 없진 않았지만, 그건 잠시뿐 곧 분위기는 온통 웃음으로 가득찼다. ‘마지막’ 졸업식이지만, 정작 졸업생과 재학생들에게는 그저 하나
의 ‘축제’나 다름없었다.

3명이 졸업하는 제38회 마지막 졸업식, 식전부터 90년대 초반 노래방에서 마지막 곡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젠 안녕’이 흘러나왔다. 20여평의 학교급식실이 졸업식장으로 변신했다. 잠시 후 내빈들이 들어왔다. 임은숙 청양교육장을 비롯해 면장, 우체국장, 보건소장, 의용소방대장, 자율방범대장 등 10여명을 비롯해 졸업식장에는 모두 30여명이 모였다.

졸업식이 시작됐다. 애국가로 분위기는 엄숙해졌다. 이어지는 편범희 교장의 인사, 그는 어젯밤 잠을 설쳤단다. 비록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자신이 몸담았던 학교가 영원히 없어진다는 생각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상장수여식이 이어지자 분위기는 곧바로 달라졌다. 충남도교육감상, 충남도지사상, 청양교육장상 등 대외상만해도 17개에 달했다. 윤승훈, 우지형, 송성미 등 3명의 졸업생들이 상장을 받기 위해 예행연습까지 포함해 무려 10번 이상을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할 만큼 많았다. 학교를 졸업하는 데다 상복까지 터졌기에 그들에게서 서운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졸업식 내내 기쁨을 참을 수 없었기에 중간중간에 함박 웃음을 터트리는 그들에게 ‘마지막’ 졸업식은 아쉬움보다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윤승훈 군은 “조금 슬프기도 하지만 즐겁다”며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후배들은 더 큰 학교에 다닐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인근 목면초로 학교를 옮기는 박영희 학생 역시 “정이 많이 들었지만 더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시종일관 기쁨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다. 재학생의 송사와 졸업생의 답사 시간. 4학년 박영희 학생의 가냘픈 목소리의 답사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송성미 학생의 “선생님은 물론 교실, 운동장, 나무 한 그루까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답사에 곳곳에서 흐느낌이 들려왔다.

곧바로 이어진 졸업식 노래 제창에서는 슬픔이 최고조에 달했다. 졸업생이 부르는 1절, 재학생이 부르는 2절, 함께 부르는 3절, 짧은 시간이었지만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들에게는 지난날 함께 했던 잊을 수 없는 수많은 추억들이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교사들과 학부모, 지역민들 역시 마지막 졸업식에 대한 슬픔과 아쉬움을 그대로 드러냈다. 예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편범희 교장은 “마지막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원만한 교육과정을 위해 불가피한 방침이지만 아쉬움을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40대가 넘은 학교 운영위원장이 늦둥이를 낳자 미역을 사들고 집까지 찾아갈 만큼 그는 이 동네에서 저출산 시대를 걱정하는 선생님으로 유명했다. 3월1일자로 공주 주봉초 교장으로 자리를 옮기지만 더 이상 올 수 없다는 생각에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담임인 강연욱 교사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처음 발령받은 강 교사에게는 이번 졸업생들이 첫 제자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행사 도중 졸업식장에 들어온 나이 지긋한 어르신, 머리에 하얀 구름을 얹은 그는 “학교를 지을 때 벽돌과 흙을 나르며 좋아했다”며 “직접 지은 학교가 없어진다니 안타까워서 왔다”고 말했다. 졸업생 우지형군의 어머니, 이영희 자모회장도 “학교에 남아있는 아이의 추억이 잊혀질까봐 마음이 착잡하다”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떠난다는 것과 새로운 곳에 대한 희망,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2006년 문성초의 마지막 졸업식은 그렇게 끝났다. 6년전 어머니의 손을 잡고 들어섰던 학교, 이제 그들이 어머니의 손을 이끌고 정문을 나설 것이다. 추운날, 난로위에 끓는 주전자 주변에서 나눴던 그들만의 얘기를 더 이상 나눌 수 없다. 삼삼오오 앉아서 함께 공부하고 넓은 운동장을 뛰어다녔던 그 때가 다시 돌아올 순 없지만 그들에게는 더 큰 학교, 더 많은 선배와 친구, 후배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또 다른 기쁨일 것이다.



사진=충남도교육청 교육홍보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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