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따라 향따라… 정성 담으니 술 넘어가네~

맛따라 향따라… 정성 담으니 술 넘어가네~

  • 승인 2005-09-09 01:50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 충청도에는 선인들로부터 비법을 전수받아 면면히 내려오고 있는 다양한 민속주들이 있다. 소주, 맥주 등과 달리 오랜 전통과 술을 빚는 이들의 지극한 정성이 가득담긴 민속주. 헤아릴 수 없을정도의 수많은 술들과의 경쟁력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술이 바로 민속주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입맛이 변했지만 민속주만이 지닌 역사성과 고유성에 애주가는 물론 일반인들도 변함없는 사랑을 보내고 있다. 역사 속 조상들의 숨결이 담겨 있는 지역 민속주 여행을 떠나보자.



#당진 ‘면천 두견주’ 진달래향 가득 “명약이 따로없네”



불치병 치료의 명약, 두견주.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이 이름 모를 병을 앓았다.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는 15살난 ‘영랑’이라는 딸이 있었다.

매일 밤 아미산(부
여)에 올라 기도를 하던 영랑의 꿈에 나타난 산신령이 약으로 권해준 것은 약이 아닌 술. 산신령은 아미산에 만개한 두견화 꽃잎과 찹쌀로 술을 빚되 안샘의
물로 담그고 100일 후 마시면 병이 치료될 것이라고 말하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때부터 두견주는 명약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두견주는 음력 정월에 꽃술용 누룩을 준비해 밑술을 빚어놓고 진달래가 만개할 때 그 밑술에다 꽃잎과 술밥을 다시 비벼 넣는 정성스런 과정을 거친다. 그 뒤 삼칠일이 지나면 심지불을 술독에 넣어 완전히 익히면 완성된다. 분홍색인 술빛은 진달래꽃잎을 연상시킨다. 진달래 향과 달콤함이 어우러져 첫잔의 거부감도 없다. 진해작용을 도와주고 성인병예방, 피로회복에 효과가 있다.





#금산 ‘인삼주’숙취없이 깔끔~ 흥에 취하다



불로장생의 명약 ‘인삼’으로 빚어낸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전통주다. 신비한 약효 때문인지 술을 먹은 뒤에도 숙취가 없고 한잔 술에 배어나는 알싸한 인삼향과 혀끝에 감도는 맛은 여느 명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국제행사 건배주로 등장할 만큼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술로 토종닭을 푹 삶아 요리한 삼계탕에 금산 인삼주를 반주로 곁들이면 수라상도 부럽지 않다. 첫잔부터 인삼의 향이 입가에 남는다. 입안에 감도는 솔잎 향과 쑥향 역시 최고다. 피부병에 효능이 있다는 금성산 기슭의 약수를 사용한다.

자연을 벗삼아 즐기는 풍류판에 어울리는 술은 술이면서 술이 아니어야 한다. 인위적으로 만든 술이 아니라 자연에서 숙성시킨 술이 좋다. 인삼주는 술이면서 약이고 약이면서 술이기에 넉넉한 가을밤, 흥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아산 ‘연엽주’뒤끝에 감도는 누룩내가 좋아라



왕을 향한 충심이 담긴 술, 연엽주는 1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연엽주의 시조는 조선 고종 때 ‘비서감승’이라는 벼슬을 지낸 이원집. 3년 연속 가뭄이 들자 수라상에조차 술이나 유과, 식혜 등이 올라올 수 없었다.

미안함을 느낀 이원집은 주먹밥 크기의 누룩과 고두밥을 연잎으로 감 싼 다음 따뜻한 방에 두었다. 엿새 뒤에 연잎 안에 술이 괴었다. 술잔이 필요없어 연잎을 그대로 펼쳐 마셨다.

고종에게 올렸던 대궐연엽주가 바로 이 술이다. 지금도 연엽주는 청렴하고 강직한 선비의 기상이 있는 품격있는 술로 불린다. 술 빚은 잘 익은 벼이삭 같고 까놓은 알밤 같다. 첫 잔이 침이 괼 정도로 새콤한데 술이 오래돼 시큼한 것과는 다르다.

단맛이 없고 뒤끝에 누룩내가 잡혀 단술을 싫어하는 애주가들에게는 편안한 술이다. 새콤한 맛은 두세 잔 째부터 엷어지기 시작하면 잔을 내려놓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닐 것이다.







#논산 ‘가야곡 왕주’황금쌀과 금강의 조화로 빚어



‘황금쌀’과 ‘금강’의 절묘한 조화. 술맛은 ‘쌀맛’이고 ‘물맛’이라 했다. 물과 쌀에 따라 술의 맛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논산은 예나 지금이나 가도가도 끝이 없는 논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곡창지대다. 물이 깨끗하다. 금강이 지난다. 쌀이나 물을 오염시킬 만한 것도 없다. 여기서 나온 쌀과 물로 빚은 술이 ‘왕주(王酒)’다.

맛과 약효가 탁월해 왕실에 진상되기 시작하면서 ‘어주(御酒)’라 불렸다. 궁중 술을 대표하는 왕주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는 종묘대제(중요무형문화재 56호)에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왕주는 향으로 마신다. 절묘한 향, 술잔을 입에 대는 순간 향은 코를 타고 온몸으로 퍼진다. 누구도 딱 부러지게 얘기하지 못한다. 야생국화·구기자·솔잎·홍삼·매실 등 갖가지 재료가 은은한 향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공주 ‘계룡 백일주’‘가문의 술’ 한잔에 神仙된 느낌



명산 ‘계룡산’에는 명주 ‘계룡 백일주’가 있다. 말 그대로 100일동안 익힌 술로 원조는 궁중술이다. 1623년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일등공신 중 한 명인 이귀(李貴)에게 왕실 대대로 전해온 양조비법을 하사했다.

이때부터 이 술은 연안 이씨 가문의 며느리를 통해 오늘까지 이어졌다. 때문에 제조법은 문헌에도 기록돼있지 않다. ‘가문의 술’로 전수됐기 때문이다. 빚기가 워낙 까다롭다 보니 늘 귀했다.

향긋한 향취와 부드러운 느낌이 일품으로 ‘신선이 마시는 술’ 또는 ‘마시면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 드는 술’이라고 해 ‘신선주’로도 불린다. 경관이 수려한 공산성의 누각에 앉아 짙푸른 금강을 내려다보며 잔을 기울이면 신선이 될 것이다. 술을 빚기 위해 봄이면 진달래꽃을 따고, 가을이 오면 국화꽃을 따다 말려야 한다.

부드럽고 감칠맛이 입안에 감돌며 각종 유기산, 당질, 비타민, 무기질이 풍부하고 식욕증진, 혈액순환 촉진 등에도 효능이 있다.





#청양 ‘구기주’새콤·달콤 “한잔 하실래요?”



누러면서도 맑은데 붉은 빛이 돌 정도로 진한 술, 땅의 신선이라고 불리는 구기자로 담근 술이다. 약재 냄새가 강하며 새큼하고 달착지근하다. 전혀 감미를 하지 않은 구기자와 약재로 우려낸 맛이다.

구기자술이라 하지 않고 구기주라고 한 것은 청양에 다른 구기자술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옛 문헌에 구기주(枸杞酒)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1등급의 술로 담가야 16도의 술 도수가 제대로 나온다.

약재로는 두충잎, 두충피, 감초, 구기자뿌리를 달여서 넣고 구기자는 따로 달인다. 구기주는 보약 한 첩이라 할 만하다. 물론 약재 향도 진하다. 그런데 마시고 나면 입안이 끈적이지 않고 누룩의 잔 맛도 남지 않는다. 감칠맛이 돌아서 한잔 더 마시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가히 우리나라 최고의 약술이라는 찬사를 보낼만하다.






#서천 ‘한산 소곡주’百濟 1500년 비법… 달콤한 첫맛



유구한 잠에서 깨어났다. 백제 1500년의 비법과 건지산의 맑은 물로 빚어낸 명주중의 명주 한산 소곡주.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풍류와 흉내낼 수 없는 중후하고 뛰어난 감칠맛과 향은 단연 으뜸이다. ‘앉은뱅이 술’이라는 별칭의 소곡주는 조선 초에 가장 많이 알려진 술로 기록돼있다.

한양에 과거 보러 가던 선비가 한산 주막에 들렀다가 술맛이 너무 좋아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낚다가 결국 과거를 보지 못했다는 설화가 있다. 또 도둑이 남의 집안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려다 술독을 발견하고 그 술을 마시다가 술맛에 취해 주저 앉았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독해서가 아니라 술맛이 좋아 마시기 시작하면 자리에서 일어설 줄 모른다고 해 이때부터 일명 앉은뱅이 술이라 전해져왔다. 소곡주를 마시는 날, 이후 모든 약속을 취소해야 한다. 붉은 기가 감도는 노란색을 띠며 첫잔의 달콤함에 매료되기 때문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법관 후보에 대전지법·고법 법관 3명 추천
  2. CJ그룹과 자회사 TVING, 동성애 미화 .조장하는 드라마 방영 계획 철회 촉구 규탄 기자회견
  3. 풀꽃 시인 나태주 시인 유성장로교회 창립 70주년 맞아 특강
  4. "행정수도는 내게 맡겨" 세종시 19명 사무관, 공직사회 첫 발
  5. 9월 어류 3000마리 폐사했던 대전천 현암교 총대장균군 '득실'
  1. [사설] 스마트팜 청년농 육성… 정착 지원도 중요하다
  2. 대전과학기술대-청년내일재단 '지역청년 자립과 지역정착' 맞손
  3. [사설] 예산 정국 곧 돌입, 지역 현안 챙겨야
  4. AI디지털교과서 연수 받으러 1박 2일 대전서 사천·통영까지? 일선 교사들 "이해 불가"
  5. 정년 65세 시대 개막… 지역 경제계는 '기대반 우려반'

헤드라인 뉴스


대전 커피음료점 하나 둘 자취 감춘다... 매년 늘다 감소세로 전환

대전 커피음료점 하나 둘 자취 감춘다... 매년 늘다 감소세로 전환

동네마다 새롭게 생기던 대전 커피음료점이 한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소규모 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다는 장점에 지역 상권 곳곳에 잇달아 문을 열면서 업체 간 출혈 경쟁이 심화했고, 저렴함으로 승부를 보는 프랜차이즈 커피음료점이 늘어난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22일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대전지역 커피음료점 사업자 수는 7월 기준 3213곳으로, 1년 전(3243곳)보다 30곳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대전 커피음료점은 매년 급증해왔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이 가중되던 2020년 7월 2415곳에서 2021년 7월 2731곳으로 증가..

3분기 실적시즌 개막…대전 바이오기업 꿈틀하나
3분기 실적시즌 개막…대전 바이오기업 꿈틀하나

3분기 실적 발표에 대전 상장기업들의 주가 추이에 이목이 쏠린다. 시장 전망치가 위축하고 있지만, 바이오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지역 기업들이 연일 최고가를 갱신하며 기대 심리를 고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대전에 위치한 알테오젠의 주가가 이날 오전 장중 40만 200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갱신했다. 이는 1년 전 보다 약 598%가량 급등한 수치다. 장이 마감하는 오후엔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은 약세로 돌아서며 3.5% 하락한 채로 문을 닫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상승세는 여전..

[2024 국감] 소진공 국감서 `뭇매`... 온누리상품권 부정유통 등 질타
[2024 국감] 소진공 국감서 '뭇매'... 온누리상품권 부정유통 등 질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뭇매를 맞았다. 소진공이 발행하는 지류형 온누리상품권의 부정 유통이 심각하다는 지적과 티메프(티몬·위메프) 긴급경영안정자금 집행률 저조, 수요가 급증한 백년가게 사업 예산을 줄였다는 비판 등이 쇄도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지혜(경기 의정부 갑) 의원은 온누리상품권 발행 규모가 늘어나며 부정유통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온누리상품권 부정유통 건수 대부분이 지류 상품권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2023년 적발 액수만 14..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철거예정 건물을 활용한 실전 위주 훈련 철거예정 건물을 활용한 실전 위주 훈련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윤석열 퇴진 국민투표 돌입 선포 기자회견 윤석열 퇴진 국민투표 돌입 선포 기자회견

  • 대전경찰청, 제79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개최 대전경찰청, 제79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