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한성에 도읍한 5세기 초반 집중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 고분에서는 이에 걸맞게 국보 지정이 확실해보이는 금동관모 2점과 금동신발 3켤레가 출토됐다.
이들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중 일부는 같은 무덤에서 세트로 발견됐으며, 중국제 청자 3점도 함께 출토됨으로써 한성도읍기에 이미 웅진 일대에 상당한 세력과 기반을 갖춘 지방세력이 존재했음을 입증했다.
충남발전연구원(원장 이해준)은 2일 공주시가 ‘의당농공단지' 건설을 추진 중인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 유적을 발굴 조사한 결과 4세기 후반-5세기 초·중반기에 집중조성된 것으로 생각되는 백제고분 6기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들 고분 중 목곽묘인 1호분(묘광 기준 5x3.8m)에서는 금동관모와 금동신발이 세트를 이룬 채 환두대도 등과 함께 출토됐으며, 횡구식 석실분인 4호분에서는 금동신발 1켤레가 바닥을 위로 둔 채 환두대도와 같이 발굴됐다.
또 횡혈식 석실분인 5호분에서는 중국제 청자 3점 및 삼각형 구멍을 뚫은 굽다리접시 토기와 함께 금동신발 1켤레가 역시 관모와 세트를 이루고 있었다.
이같은 백제 금동신발 및 금동관 출토량은 단일 유적으로는 최대, 최다로 꼽힌다.
백제 금동신발의 경우 무령왕릉 출토 2켤레와 익산 입점리 1호 석실분 출토 1켤레, 나주 복암리 3호분 출토 1켤레만이 확실한 발굴품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화여대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에는 백제 유물로 생각되는 금동신발이 각각 1켤레 및 1짝이 소장돼 있으나 정확한 출토지를 알 수 없는 구입품일 뿐이며 원주 법천리 고분군 제4호 석실분에서는 금동신발 일부 조각만 확인됐다.
금동관모의 경우 익산 입점리 고분, 나주 신촌리 9호분 을관(乙棺) 출토품이 있을 뿐이며, 천안 용원리 고분에서는 아주 작은 조각만이 확인된 실정이다.
한편 이들 백제 고분 인근에서 확인된 토광묘에서는 세형동검 및 이 동검 손잡이 끝장식인 금파두식 등 청동기 유물이 출토됐다.
이훈 책임조사연구원은 “출토 유물로 보아 이들 고분 대부분은 백제가 서기 475년 한성에서 웅진으로 도읍을 옮겨오기 전에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따라서 웅진에는 천도 이전에 이미 이러한 화려한 유물들을 부장하는 상당한 세력을 갖춘 현지세력이 존재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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