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다문화]중국의 쑤안차이(酸菜)와 한국의 김치 이야기

  • 다문화신문
  • 대전

[대전다문화]중국의 쑤안차이(酸菜)와 한국의 김치 이야기

  • 승인 2025-11-19 09:25
  • 신문게재 2025-11-20 9면
  • 황미란 기자황미란 기자
11월은 한국 밥상에서 가장 분주한 달이다. 바로 김장철이기 때문이다. 들판에는 갓 수확한 배추가 산처럼 쌓이고, 마트에서는 절인 배추 예약 판매가 한창이다. 고춧가루, 마늘, 생강, 젓갈이 어우러지는 향이 골목마다 퍼지면, 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다. 요즘은 많이 약해졌지만 김장은 단순한 음식 준비를 넘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정과 협동의 상징이었다.

이맘때가 되면, 필자의 고향인 중국 흑룡강성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다만 한국처럼 붉은 양념을 쓰지 않고, 소금으로만 담그는 전통 발효음식이 있다. 바로 '酸菜(쑤안차이)'다.



중국 동북 지역의 겨울은 길고 혹독하다. 그래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발효음식은 필수였다. 사람들은 보통 서리를 맞은 배추를 사용한다. 서리를 맞은 배추는 잎이 부드럽고 단맛이 돌아, 발효 후에는 맛이 한층 깊어진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깨끗이 씻은 배추를 햇볕에 잘 말린 뒤 4등분해, 배추 무게의 약 2% 정도 되는 소금을 골고루 뿌려 절인다. 30분 정도 지나 배추 숨이 죽으면, 소독한 항아리나 유리병에 차곡차곡 눌러 담는다.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얹고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뚜껑을 단단히 닫으면 된다. 약 2주가 지나면 새콤한 향이 퍼지는 쑤안차이가 완성된다.



한국의 김치가 붉고 매운맛으로 유명하다면, 쑤안차이는 하얗고 산뜻한 새콤함이 특징이다. 고춧가루나 마늘이 들어가지 않아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낸다. 발효가 잘된 쑤안차이는 그대로 먹어도 맛있지만, 동북 지역 사람들은 주로 다양한 요리에 활용한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요리가 '酸菜炖粉条(쑤안차이둔펀탸오)'다. 절인 쑤안차이를 깨끗이 씻어 잘게 썬 뒤, 돼지고기와 당면, 마늘, 생강, 건고추, 파를 넣고 푹 끓인다. 당면이 쑤안차이의 새콤한 국물을 머금어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을 내며, 발효된 쑤안차이의 산미가 기름진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추운 날씨에 한 그릇 먹으면 속까지 따뜻해진다.

한국의 김치 역시 다양한 요리로 변신한다. 김치찌개, 김치전, 김치볶음밥 등 김치의 깊은 발효맛은 국경을 넘어 사랑받고 있다. 김치가 매운맛으로 입맛을 돋운다면, 쑤안차이는 새콤한 향으로 속을 편안하게 해준다. 서로 다르지만, 두 음식 모두 겨울을 준비하는 지혜와 가족의 사랑이 담긴 발효의 산물이다.

한국에 살며 김장을 경험할 때마다, 필자는 어린 시절 고향의 겨울을 떠올린다. 김치통에서 새어 나오는 발효 냄새가, 고향의 쑤안차이 항아리 속 향기와 묘하게 닮아 있기 때문이다. 재료와 맛은 달라도, 기다림과 정성이 만들어내는 '발효의 시간'만큼은 두 나라가 같다.

붉은 김치와 하얀 쑤안차이가 한 상에 함께 오른다면, 그것은 단지 음식이 아니라 두 문화가 어우러진 발효의 어울림이 될 것이다.

차인순 명예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날씨]대전·충남 1~5㎝ 적설 예상…계룡에 대설주의보
  2. 세종시체육회 '1처 2부 5팀' 조직개편...2026년 혁신 예고
  3. 코레일, 북극항로 개척... 물류망 구축 나서
  4.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5. 대전 신탄진농협, 사랑의 김장김치 나눔행사 진행
  1. 세종시 체육인의 밤, 2026년 작지만 강한 도약 나선다
  2. 손수 만든 목도리 노인 복지관에 전한 배재대 학생들
  3. 목원대, 시각장애인 학습·환경 개선 위한 리빙랩 진행
  4. [아이 키우기 좋은 충남] 돌봄부터 근무혁신까지… '충남형 풀케어'가 만든 출산·육아 친화 생태계
  5. 충남대 김용주 교수 '대한기계학회 학술대회' 우수학술상 수상

헤드라인 뉴스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완공 시기가 2030년에도 빠듯한 일정에 놓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재임 기간인 같은 해 6월까지도 쉽지 않아 사실상 '청와대→세종 집무실' 시대 전환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이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세종 집무실의 조속한 완공부터 '행정수도 완성' 공약을 했고, 이를 국정의 핵심 과제로도 채택한 바 있다. 이 같은 건립 현주소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어진동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가진 2026년 행복청의 업무계획 보고회 과정에서 확인됐다. 강주엽 행복청장이 이날 내놓은 업무보고안..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지역구 18명+비례 2명'인 세종특별자치시 의원정수는 적정한가.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19+3' 안으로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인구수 증가와 행정수도 위상을 갖춰가고 있으나 의원정수는 2022년 지방선거 기준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16+2'로 적용했다. 이는 세종시특별법 제19조에 적용돼 있고, 정수 확대는 법안 개정을 통해 가능하다. 12일 세종시의회를 통해 받은 자료를 보면, 명분은 의원 1인당 인구수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인구수는 2018년 29만 4309명, 2022년..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금강을 맑고 푸르게 지키는 일에 앞장선 시민과 단체, 기관을 찾아 시상하는 제22회 금강환경대상에서 환경과 시민안전을 새롭게 접목한 지자체부터 저온 플라즈마를 활용한 대청호 녹조 제거 신기술을 선보인 공공기관이 수상 기관에 이름을 올렸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금강유역환경청과 중도일보가 공동주최한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시상식이 11일 오후 2시 중도일보 4층 대회의실에서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과 신동인 금강유역환경청 유역관리국장, 정용래 유성구청장, 이명렬 천안시 농업환경국장 등 수상 기관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 ‘자전거 안장 젖지 않게’ ‘자전거 안장 젖지 않게’

  •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