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AI 시대, 교육 개혁보다는 본질로 돌아갈 때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AI 시대, 교육 개혁보다는 본질로 돌아갈 때

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자율융합학부 교수

  • 승인 2025-11-17 14:58
  • 신문게재 2025-11-18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2024010801000544400020711
김정태 교수
이재명 정부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을 인공지능(AI)에 두고, 세계 3대 AI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교육부도 이에 맞춰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AI 역량 교육 강화, AI 인프라 투자 등의 정책을 제시했다. 이들 정책은 서울·수도권과 지역 간 교육 불평등, 그리고 사교육비 부담을 해결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겉보기 혁신 속에서 정작 중요한 질문은 묻힌다. '교육이 지향해야 할 본질은 무엇인가?'

서울대 조용환 교수는 저서 '교육다운 교육'에서 "교육의 본질은 시간을 견디고 사회를 견딘다"고 말한다. 교육은 유행이나 정책 변화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지탱하는 가치에 뿌리를 둔다. 그런데 한국 교육은 지난 수십 년간 역대 정부가 '교육 개혁'을 외치며 본질보다 제도 개편에 집중해 왔다. 5년 단임제로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교육체제는 끊임없이 흔들렸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박근혜 정부의 '자유학기제', 문재인 정부의 '고교학점제',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 인재 100만 양성' 등이 대표적이다. 매번 교육 개혁의 화두가 등장했지만, 개혁은 더뎠고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는 적었다. 오히려 냉소만 깊어졌다. 이재명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역시 한정된 예산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방향이 불분명하다는 의문을 낳는다.

교육 개혁의 성패는 제도적 강제나 재정 투입이 아니라 현장의 교사, 학생, 학부모, 대학이 얼마나 성찰하고 동의하며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문제의 뿌리를 충분히 분석하지 않은 채 거대한 처방부터 내리면 정책은 구호로 끝날 수밖에 없다. 개혁이 실패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작 교육의 당사자들은 외면한 채 구조와 제도만 손보려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혁을 주창하는 이들은 정작 자신은 개혁 대상이 아니라는 오만으로 저항의 대상이 됐다가, 결국 개혁의 대상이 되는 아이러니가 반복됐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교육 정책의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예컨대 20여 년 전부터 자동 통번역기의 발전으로 '영어를 배울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2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어떤가? 2017년 수능 영어 절대평가 이후 학생들의 학습량은 줄었고, 대학 진학 후 영어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늘었다. 취업 단계에서는 대다수 기업이 여전히 토익 점수와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요구해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다. AI 통번역 기술의 발전은 '영어를 안 배워도 되는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어 역량의 격차'를 확대했다.

이 문제는 우리가 교육을 바라보는 방식의 오류를 드러낸다. 우리는 진학, 취업 등 교육의 기능에 지나치게 집중해 왔다. 그러나 기능은 본질이 아니다. 교육은 인간을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이며, 성찰과 대화, 경험이 축적되는 느린 시간의 영역이다. 영어 교육의 본질 역시 언어를 통해 세계로 나가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며 이해하는 데 있다.

우리는 종종 본질보다 기능을 우선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화려해 보이지만, 서울대의 진짜 경쟁력은 시설이나 이름이 아니라 오랜 학문 전통, 교육철학, 교수진의 연구, 지역사회와의 연계에서 나온다. 지역대학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서울대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설립 이념에 따라 그 대학답게 키우는 것이다.

AI 시대일수록 교육의 본질은 더욱 중요하다. 기술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그 의미를 판단하고 삶과 연결하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아무리 AI 기술 중심 개혁이 중요해도, 교육의 본질이 흔들리면 어떤 교육 정책도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개혁이 아니라 교육을 받는 이들의 행복을 담보하는 교육다운 교육의 회복이다. 교육 정책은 본질을 지키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AI 시대의 교육은 더 많은 기술이 아니라 더 깊은 인간을 기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이제는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자율융합학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날씨]대전·충남 1~5㎝ 적설 예상…계룡에 대설주의보
  2.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3. 햇잎푸드, 100만불 정부 수출의 탑 수상... "대전을 넘어 전 세계로"
  4. 천안법원, 정지 신호에도 직진해 사망자 유발시킨 30대 중국인 벌금형
  5. 국제디지털자산위, 필리선 바타안서 'PPP 개발 프로젝트 밋업' 연다
  1. 대전시장 도전 許 출판기념회에 與 일부 경쟁자도 눈길
  2. 천안문화재단, 2026년 '찾아가는 미술관' 참여기관 모집
  3. 백석대, 천호지 청춘광장서 청년·시민 협력 축제 성료
  4. 단국대병원, 2025년 감염병 대응 유공기관 선정
  5. 상명대 창업지원센터장, '창업보육인의 날' 기념 충남도지사상 수상

헤드라인 뉴스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김민석 국무총리와 더불어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대전시와 충남도 행정통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격 회동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얼마 전 충청권을 찾아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해 긍정적 메시지를 띄운 것과 관련한 후속 조치로 이 사안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김 총리와 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15일 서울에서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갖는다. 김 총리와 일부 총리실 관계자, 대전 충남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에서 김 총리와 충청권 의원들은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 원도심 재편의 분수령이 될 '대전역 철도입체화 통합개발'이 이번엔 국가계획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초 철도 지하화 선도지구 3곳을 선정한 데 이어, 추가 지하화 노선을 포함한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종합계획' 수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종합계획 반영 여부는 이르면 12월,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당초 국토부는 12월 결과 발표를 예고했으나,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발표 시점이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전국 지자체들은 종합..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