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신의 이름으로 권력을 움켜쥐다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신의 이름으로 권력을 움켜쥐다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 승인 2025-06-03 14:04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김성수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정치는 흔히 이성과 제도의 영역이라 말한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특히 권력이 위기를 맞거나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주술, 무속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권력자는 신의 이름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려 했고, 그 정치의 끝은 종종 공동체 전체의 붕괴로 이어졌다.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에서도 이런 시대적 불안을 은유적으로 다룬다. 픽션의 옷을 입었지만, 현실의 거울 같기도 하다. 귀감이 될만한 대표적인 사례는 제정 러시아 말기다. 황태자는 혈우병을 앓고 있었고, 황후는 요승(妖僧)에게 의지했고, 요승 라스푸틴은 기도만으로 병을 완화한다는 믿음을 얻었고, 초기 몇 차례 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두면서 곧 황실의 실질적 실세가 됐다. 그러나 그가 개입할수록 제국은 흔들렸고, 귀족들의 분노 속에 그는 암살되었다. 그의 죽음은 총, 칼, 청산가리로도 모자라 결국 네바강에서 익사시켰다는 소문을 남겼다. 라스푸틴이 죽고 두 달 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로마노프 왕조도 무너진다. 유교 국가로서의 조선왕조도 공식적으로는 무속을 억압했지만, 궁궐에서는 주술의 냄새를 풍겼다. 대표적으로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무속 행위가 발각되며 사약을 받았고, 그 과정은 무속이 권력 암투의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최근의 드라마에서도 국왕은 무당의 신통력을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 최근의 사례도 다르지 않다.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극우적 국정 노선의 한 축으로 특정 종교와의 오랜 유착 관계가 의심됐다. 종교라는 이름 아래 선거 조직을 제공하고 지지층을 동원했으며, 정치는 이 조직을 전략 자산처럼 이용했다. 결국, 아베 총리는 그 종교와 관련된 범인에 의해 피격되고, 이후 아베 총리의 집안과 특정 종교와의 오랜 유착 관계가 드러났다. 유교, 불교 사상으로 정서상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에서의 최근 사례만이 아니고 우리나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속과 정치의 위험한 결합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결정적 사례다. 비선 실세 최순실이 연설문 수정은 물론, 국정 전반에 깊이 개입했고, 무속적 조언과 굿, 부적 등이 등장한 이 사건은 단순한 국정 농단을 넘어, 비이성이 청와대에 입성한 역사로 기록됐고, 결과적으로는 촛불시위로 보인 국민의 분노와 법치국가로서 당연한 헌법재판소 초유의 대통령 탄핵 판결이었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지난 12월 계엄 이후 수개월이 경과하고 우여곡절을 거치며 헌정사상 두 번째로 탄핵된 윤석열 전 대통령 또 대선 과정과 통치 기간에서의 무속인과의 연계 의혹이 제기되었고, 현시점까지도 대통령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권력 주변에 존재하는 무속과 비이성적인 정치 판단에 대한 인식은 권력에 대한 불신을 낳았고, 이는 드라마 속 귀물과 무녀, 주술과 정치의 유착 관계는 오늘의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 정치시스템은 궁극적으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제도이며, 국민 이외 신이나 신을 빙자한 권력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에게 책임지는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 정치평론에서도 수차례 인용한 바대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명시한다. 하지만 이 명제는 다시 질문을 던지게 한다. 과연 우리는 민주국가의 국민, 민주 시민으로 얼마나 이성의 주체로 살아가고 있는가?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서도 부동산 등으로 가계부채 증가, 비정규직 등을 포함한 고용 기피, 의료계를 필두로 한 사회 시스템의 혼란, 수도권 중심의 교육과 취업에 따른 지역 불균형, 지역과 업종 간의 부조화 등 우리는 우리가 대한민국의 민주 시민으로서 자초한 결과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불안한 인간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포기할 수 없는 미래 앞에서 때때로 무속에 기대 '운세 앱'을 열고, 길일을 고르며, 용하다는 부적에 의지하기도 한다. 정치는 무속에 기대지 말아야 하지만, 때로는 민주시민조차도 불안 속에서 비이성을 찾는다.



결국 우리는 정치인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돌이켜 봐야 한다. 정치가 이성을 잃지 않으려면, 우리부터 이성적인 사고로 우리가 신뢰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 안에서 지키고 싸우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비이성적인 미신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나라의 주인임을 자각할 때, 비로소 우리나라 정치는 정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필자의 이 칼럼은 21대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일에 게재예정이다. 우리 국민의 이성적인 판단이 결실로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날씨]대전·충남 1~5㎝ 적설 예상…계룡에 대설주의보
  2.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3. 천안법원, 정지 신호에도 직진해 사망자 유발시킨 30대 중국인 벌금형
  4. 대전시장 도전 許 출판기념회에 與 일부 경쟁자도 눈길
  5. 천안문화재단, 2026년 '찾아가는 미술관' 참여기관 모집
  1. 백석대, 천호지 청춘광장서 청년·시민 협력 축제 성료
  2. 단국대병원, 2025년 감염병 대응 유공기관 선정
  3. 상명대 창업지원센터장, '창업보육인의 날' 기념 충남도지사상 수상
  4. 한기대 '다담 EMBA' 39기 수료식
  5. 나사렛대 평생교육원-천안시장애인평생교육센터 MOU

헤드라인 뉴스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김민석 국무총리와 더불어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대전시와 충남도 행정통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격 회동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얼마 전 충청권을 찾아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해 긍정적 메시지를 띄운 것과 관련한 후속 조치로 이 사안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김 총리와 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15일 서울에서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갖는다. 김 총리와 일부 총리실 관계자, 대전 충남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에서 김 총리와 충청권 의원들은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 원도심 재편의 분수령이 될 '대전역 철도입체화 통합개발'이 이번엔 국가계획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초 철도 지하화 선도지구 3곳을 선정한 데 이어, 추가 지하화 노선을 포함한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종합계획' 수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종합계획 반영 여부는 이르면 12월,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당초 국토부는 12월 결과 발표를 예고했으나,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발표 시점이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전국 지자체들은 종합..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