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행렬은 유년시절 장례행렬이다. 한시, 행장 등을 적은 만장이 앞서 간다. 서너 개인 경우도 있지만 수십 개인 경우도 있었다. 영정이 맨 앞에 서는 경우도 있었던 듯하다. 그 뒤로 상여, 상주, 유가족, 조객이 따른다. 망자의 가세나 덕망에 따라 각각의 숫자 차이가 많았던 기억이다. 수백 미터가 넘는 경우도 있어 장관이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상여, 상두꾼의 모습도 변화했다. 요령잡이의 요령소리에 맞추어 걸음의 빠르기가 달라진다. 요령잡이의 재치와 기지, 해학, 소리에 따라 유가족의 곡소리가 달라지기도 하고 다양한 변화가 돌출되기도 한다. 망자를 추모하고 기리는 행렬이요, 산자의 주변정리와 새 출발을 격려하는 행렬이었다. 죽음을 처리하는 의례이자 태초부터 있어온 전통문화이다. 물론, 북치고 춤추며 음악을 연주했다는 기록도 있고, 철학이나 종교 이념에 따라 절차 및 형식이 제각각이다. 지금은 운구 행렬이 아예 보기 어렵다.
고등학교 일학년 때 학교 축제가 있었다. 입장식에 행해지는 가장행렬이 필자 담당이었다. 세계 각국 인이 고유 복장차림으로 양쪽으로 줄지어 걷고 가운데에 한복 차림의 한국인이 소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연출했다. 말구종은 성조기 무늬의 모자를 쓴 미국인으로 했다. 소 역시 가장했다. 소머리는 소쿠리로 만들었다. 타원형에 한쪽이 트인 소쿠리라 소머리모양과 비슷했다. 장판지 붙인 소쿠리에 귀 붙이고 눈코 그리니 제격이다. 몸통은 가마니 두 장 붙여서 만들었으며, 그 안에 네 명이 들어가 양쪽 어깨에 작대기를 메었다. 내용은 세계가 한국을 받들어 모시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70년대 초, 당시 우리국가 위상에 견주어 너무 과한 희망사항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패기와 꿈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다. 거기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대전에 와서 석가탄신일 연등행렬을 처음 만났다. 행렬이 대단히 길어 한동안 서서 지켜보았다. 지나가는 수많은 인파, 다양한 연등모양, 커다란 상징물이 인상적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행렬에 참여하지는 않아 전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부대 행사도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연등회> 홈페이지에 의하면, 1,200여 년 오랜 역사와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전승하고 있는 연등회는 무형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 4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자발적인 공동체의 가치와 개개인의 창의성이 담긴 세대전승,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 · 배려 · 평등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2020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등은 부처님께 공양하는 방법의 하나로, 번뇌와 무지의 어두운 세계를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춘다는 상징이다.
학창시절 및 군에서 체험한 행군도 있다. 백리행군의 경우, 완전군장을 하고 도로 양편에 각각 한 줄로 걷는 것이었는데, 꽤 힘들었던 기억이다. 이동이 목적이었지만, 체력단련 및 극기의 훈련이었다. 국군의 날 군사퍼레이드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예전엔 학교에서 열병이나 분열을 경험했다. 사기나 교육정도, 장비유지 따위의 검열용이지만 협동심배양과 축하행사용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누구나 군악대, 고적대, 취타대 등 마칭밴드의 행진도 접한다. 사기진작, 응원, 축하, 감상 등 다양한 용도로 시연된다. 미술 공부하며, 어가행렬, 조선통신사행렬 등의 의궤로 역사 속에서도 만난다.
축제에 등장하는 퍼레이드는 다양하고 끝이 없지만 두 가지만 들춰보자. 브라질 리우카니발이다. 브라질 곳곳에서 삼바카니발을 벌이지만, 리우카니발은 퍼레이드가 중심행사이다. 빈민가 이주민 중심으로 발전한 아픔이 있지만, 1930년대부터 정부가 지원, 세계적인 관광 상품이 되었다. 삼바 퍼레이드는 리우데자네이루 지역의 삼바 학교가 경쟁하는 삼바 경연대회다. 전용 공연장인 '삼보드로무(Samb?dromo)'에서 진행한다. 700여 미터 공연장에서 벌이는 한 학교 공연은 60 ~ 80분이다. 각기 주제가 다르며, 주제에 따라 의상, 음악과 춤이 결정된다. 한 학교에서 5개 이상의 화려하게 장식한 축제 차량이 동원된다. 무용수는 물론 수백 명의 타악기 연주자도 등장한다. 경연이란 성격 때문에 주를 이루는 삼바는 물론, 전통의상과 장식도 지속적으로 발전 변화한다. 세계인을 즐겁게 함은 물론, 지역문화예술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니발은 어떨까? 300여만 명이 참가하는 세계 10대 축제의 하나인 가면축제이다. 지정된 축제장이 없이 10여 일 동안 진행되는 카니발은 가장행렬, 가면무도회, 음악 공연 등이 열린다. 예술적이고 독창적인 다양한 가면, 화려하고 우아한 의상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환상적분위기를 연출한다. 자유로운 참여가 특징이며 밤에 열린다. 가면의 유행이 이슬람교도 여성의 베일에서 시작됐다고 추정한다. 누구나 주인공으로 참여하여 자유와 평등을 상징한다. 창작을 부추기는 문화축제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 |
양동길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