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엄마 없이 평생을 살고 있는 필자를 울게 하고 있다.
필자는 열 살 어린 나이에 얼마를 잃었다. 그래서 평생을 엄마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면서 마음 따뜻한 여인네들을 보면 나이 상관없이 그 품에 안겨 엄마 같은 사랑을 받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그 가운데는 손에 낀 장갑을 벗고 두 손을 잡아주는 마음 따뜻한 여인도 있고, 언제나 만나도 따뜻한 웃음으로 맞아주는 여인도 있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느껴 온종일 편안한 마음으로 지나게 된다.
그런데 여기. 그런 엄마가 밥을 안드시고 쇠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눈물로 절규하는 효자가 있다.
그 사람이 바로, 김연수 전 의장이다.
오늘 아침 그가 올린 글을 보며 함께 울어보자.
같은 처지에 있는 분이라면 엉엉 소리내어 울어도 좋다. 엄마를 그리워하며 우는 울음인데, 좀 크게 울면 어떠랴!
『밥을 안 드시는 우리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키 150cm 조그마한 체구에 5남매 외아들을 두셨고, 43세에 혼자 되시어 영세민으로 온갖 고생을 하시며 자식들 건사하는 데만 일생을 바치셨다.
고생하신 만큼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셔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치매가 찾아와 기억을 잃으셨고, 지금은 밥을 드시지 않아서 아침밥 먹는 시간은 어린아이 밥 먹이듯 "한 수저만 더 한 수저만 더…" 달래가면서 일상을 시작한다.
그나마 야채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아내는 야채반찬을 이것 저것 준비하다보니 아침밥상에 반찬 수가 20여 가지나 된다.
밤새 포장마차 식당을 운영하고, 아침에 퇴근하여 시어머니 밥상차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진데 조금만 차리라고 성화를 대도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야채반찬들을 정성껏 즐비하게 차리는 아내에게 미안하고 한없이 감사하기도 하다.
"엄마! 아침밥 든든하게 드시고 학교 (주간보호센터) 가셔야지요" 하고 권해도 야채만 드신다.
"엄마가 밥 안 드시면 며느리가 밥 안 차려주고, 그러면 저도 굶어야 해요"라고 하면 아들이 밥 굶을까 봐 몇 수저 드시고, 또 야채만 드시다 보니 반찬 수가 늘어났다.
부여 시골 분이라서 야채를 좋아하시고 그거라도 드시니 다행이다.
"엄마 밥이 보약이야! 밥 많이 드시고 더 아프지 마시고 오래오래 함께 살아요."
이렇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불효자는 출근하면서 어머님께 인사드리고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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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밝게 웃으시는 어머니 모습. |
경기 안산시 화정동 산58번지에 가면 '고송정(枯松亭)'이 있다. 이곳 고송정은 세조 2년 단종 복위운동에 가담했다가 참화를 당한 김문기(金文起)의 손(孫)인 김충주(金忠柱)가 살던 자리이다. 김충주는 조부 김문기, 부친 김현석(金玄錫)이 참화를 당하자 밤중에 도성을 탈출하여 여러 곳을 전전하다 화정동에 숨어 살았다고 한다.
그는 풀을 엮어 집을 짓고 숯을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스스로 호를 '탄옹(炭翁)'이라 칭하고 평생 고기와 술을 먹지 않고 베옷에 평립을 쓰고 다녔다고 전한다. 그는 단종을 생각하며 단종의 묘소가 있는 영월을 바라보며 통곡하였으며, 조부와 부친이 비명에 간 것을 애통해 하여 눈물을 흘렸는데, 그의 이러한 눈물에 소나무마저 말라 죽었다고 한다. 그 말라 죽은 소나무가 있던 자리에 세운 것이 바로 고송정으로, 1827년(순조 27)김문기의 9세손인 진사 김처일(金處一)이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효자의 눈물은 소나무까지도 말라죽게 한다.
오늘 아침 페이스북에 올린 김연수의 피눈물 나는 효심은 대전시민을 울리고, 더 나아가 이글을 읽는 모든 효자들을 울게 할 것이다.
아아! 어머니, 김연수의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 바랍니다. 아드님의 절규가 들리지 않습니까?
김용복/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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