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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열 수필가 |
니체의 영향을 받은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를 통해 부조리한 현실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를 던져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는 인간인 주제에 신을 속인 죄로 벌을 받는다.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운반하면 그 돌은 아래로 떨어지고 다시 위로 옮겨야 한다. 끊임없이 되풀이해야 하는 운명이다. 매일 반복되는 힘든 일을 하면서 살아내야만 하는 현대인의 삶을 절절히 그려내고 있다.
변화의 물결이 요동치고 속도 또한 가팔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세상이다. 시대를 바라보는 개인들의 관점은 저마다 다르고, 마음도 파편처럼 흩어져 공동체의 구심력이 희박하다. 올 2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실업자와 비경제활동인구, 그냥 쉬는 청년을 합친 청년 백수가 120만 명이라고 추정한다. 청년이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 현상은 한국, 중국, 심지어 베트남 등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성취욕구를 이루지 못해 좌절하거나, 원하는 일자리와 주어지는 일자리가 어긋나는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현실이라는 중력의 힘에 눌려 꿈을 잃어버려서 그런 것은 아닌지.
하지만 어떤 시대라 하더라도 개인의 기대가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주어진 현실에서 나의 의지로 향상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지난 시절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주인공처럼 희망을 찾아 짜내야 했다. 치열한 경쟁에서 버텨야 했다. 지금은 경제 성장률이 제로 성장률에 가까워 욕망의 크기를 키워나가기 어렵다. 더더욱 계층의 사다리가 치워진 상태에서 밝은 미래를 꿈꾸기조차 쉽지 않다.
매일 접하는 뉴스로 우리 사회를 보면 갈등이 크고 문제가 많아 금방 몰락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한국은 무척 역동적으로 보인다고 한다. 실제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고 회복 능력도 의외로 뛰어나다. 이 분출하는 에너지를 잘만 북돋아 주면 지금보다 더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사방이 벽으로 막힌 듯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은 웬일일까.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면 관심사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돈과 건강으로 귀결된다. 그러면서 무얼 하며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이다. 정작 가장 중요한 돈은 많다고 자유와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언론 보도에서 알 수 있듯, 소유하는 것이 많을수록 신경 쓰거나 괴로운 일은 더 많다. 더 많이 가지려는 노력이 구속받는 결과라면 구태여 그런 것들에 빠질 이유가 있을 것인가.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행복은 소유를 분자로, 욕망을 분모로 하는 방정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한쪽을 과도하게 추구하기보다는 적절한 소유에 합당한 욕망으로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금 여기서'의 느낌으로 행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봄날의 햇살이 따사롭다.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소원을 말해보라 한다. 그는 햇볕을 가리고 있는 왕에게 조금만 옆으로 비켜주라고 말한다. 욕망 추구를 긍정하는 현대에서 이 현자처럼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자기 극복을 통해 단순하고 자족적인 삶을 사는 것은 개인 선택의 문제이다.
니체가 전하는 진정한 아모르 파티는 행복이라는 목적 지향적 삶에서 벗어나, 시지프가 하산할 때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기쁨을 느끼는 것처럼, 삶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삶을 혼자가 아니라 타인과 연결된 나로서, 체념이나 포기가 아닌 자존감과 긍정적 태도로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하며 살아가는 것일 테다. /김태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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