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전의 문지방-옛 대전시청사 복원에 대해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기고] 대전의 문지방-옛 대전시청사 복원에 대해

박수연 문학평론가·충남대 교수

  • 승인 2025-04-23 17:07
  • 신문게재 2025-04-24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박수연(축소2)
박수연 문학평론가·충남대 교수
은행동의 구 대전시청사가 시민의 공간으로 돌아온다. 이 말은 대전의 정서적 무의식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전시청'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949년 8월 15일부터이다. 그 이전까지 대전부청(大田府廳)으로 불리다가 지방자치법 개정과 함께 지금의 행정 명칭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1937년 '대전공회당'이 건설된 후 이 건물이 맞은 우여곡절은 그 자체로 대전의 근현대사를 압축한다. 1942년 9월에 대전부청사가 이전하였으며, 해방 후 미군정청이 들어 왔다. 이후 대전시와 여러 공공기관이 함께 입주했는데, 관청은 1층과 2층이었고, 3층에서는 영화나 악극단 공연이 무대에 올려졌다. 정부 수립 이후로만 살피면, 대전시청사가 1949년 입주할 당시 8월 14일부터 상영된 첫 번째 영상은 런던올림픽을 다룬 문화영화 「민족의 광영(光榮)」이었다. 이후 몇 종류의 문화영화와 상업영화가 상영되다가 악극단 공연도 이루어졌다. 10월 4일부터 6일간 상연된 「육탄십용사」가 그것인데, 1949년 봄 개성 송악산에서 전사한 국군 10명의 전투를 육군의 후원으로 제작한 악극이다. 영상과 노래를 통해 대전시민들의 시청각에 전달되었을 현실 감각을 고려한다면, 이 건축물은 노년의 대전 시민은 물론이고 현재의 유년에게 알게 모르게 전승된 반복 기억의 무의식적 기원일 것이다.

2024072301001791900070911
대전 중구 중앙로네거리에 있는 1950년대 대전부청사 모습.  (사진=대전시 제공)
이후 여러 공공기관으로 또 민간건물로 곡절을 엮은 대전시청사가 1937년 완공 당시의 대전공회당 본모습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야말로 모든 과거와 현재를 새롭게 배열하여 구제하는 사건일 것이다. 1937년 전쟁 발발기에 세워진 후 이 건물에서는 식민지조선의 총독부 정책과 선전전이 행정 산업 문화예술 모든 면에서 1945년까지 진행되었다. 미군정청의 기억도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영상과 음악이, 또 청소년들의 발랄함이, 잠시 시름을 잊게 했다고 해도 사람들은 다시 거리로 나와 생업의 고난을 맞이해야 했다. 그러나 고난의 역사를 오늘의 성과에 도달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억압되고 숨겨진 기억들이 하나하나 현실화되어 지금 이 장소의 비유적 표현들로 재해석될 때 사람들은 역사적 서사의 굴레로부터 해방된 공회당을 만날 수 있다. 어떻게 과거를 재현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저 곡절의 시간을 현재화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벤야민이 파리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를 보며 생각했던 것이 그것이다. 어떻게 배경의 서사에 묶인 건축물을 도시 속에 자유롭게 풀어놓고, 다시 지금의 역사로 만들 것인가.



나는 이 건물이 이제 진정으로 대전 시민들의 손과 마음에 직접 감촉되는 건물이기를 바란다. 역사 속의 기념비적 건축은 거의 모두 인간의 이상과 권위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기념비 앞에서 수동적으로 위축된 채 소비되어야 했다. 주체인 시민들이 소외될 때 건물은 저 멀리 달아나버리게 된다. 옛 대전시청사가 구충남도청사처럼 또 그렇게 된다면, 역시 이 건물은 구충남도청사처럼 시민들의 눈에서 멀어지고 말 것이다. 옛 대전시청사에 시민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막는 담장이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래서 상징적이다. 상상컨대, 한 사람이 건물 안에서 창을 통해 거리의 다른 사람을 바라본다. 거리에 있는 사람은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다가오는 사람이다. 안에 있는 사람의 심장이 두근거린다. 지금 대전공회당에서 대전시청사로 변신했던 한 건물의 내면이 그럴 것이다. 창문이 많은 옛 대전시청사는 안과 밖을 무수한 내면의 회랑으로 다시 이어가는 통로이다. 대전시민들이 그 장소의 문지방을 넘어서려 하고, 옛건물의 뼈대가 드러나고 있는 창틀 밖에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 차량들이 천천히 흘러간다. /박수연(朴秀淵)·문학평론가 충남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날씨]대전·충남 1~5㎝ 적설 예상…계룡에 대설주의보
  2.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3. 천안법원, 정지 신호에도 직진해 사망자 유발시킨 30대 중국인 벌금형
  4. 대전시장 도전 許 출판기념회에 與 일부 경쟁자도 눈길
  5. 천안문화재단, 2026년 '찾아가는 미술관' 참여기관 모집
  1. 백석대, 천호지 청춘광장서 청년·시민 협력 축제 성료
  2. 단국대병원, 2025년 감염병 대응 유공기관 선정
  3. 상명대 창업지원센터장, '창업보육인의 날' 기념 충남도지사상 수상
  4. 한기대 '다담 EMBA' 39기 수료식
  5. 나사렛대 평생교육원-천안시장애인평생교육센터 MOU

헤드라인 뉴스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김민석 국무총리와 더불어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대전시와 충남도 행정통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격 회동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얼마 전 충청권을 찾아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해 긍정적 메시지를 띄운 것과 관련한 후속 조치로 이 사안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김 총리와 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15일 서울에서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갖는다. 김 총리와 일부 총리실 관계자, 대전 충남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에서 김 총리와 충청권 의원들은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 원도심 재편의 분수령이 될 '대전역 철도입체화 통합개발'이 이번엔 국가계획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초 철도 지하화 선도지구 3곳을 선정한 데 이어, 추가 지하화 노선을 포함한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종합계획' 수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종합계획 반영 여부는 이르면 12월,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당초 국토부는 12월 결과 발표를 예고했으나,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발표 시점이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전국 지자체들은 종합..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