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개설할 과목의 강사 모집을 한다. 과목을 먼저 선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강사의 요청에 따르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비단공필화'를 개설하고 싶다는 요청이 왔다. 용어 정도를 제외하고 생소한 분야였다. 일반인이 알 리가 없으니 수강생 모집이 가능할까 걱정되었다. 강사의 열의가 대단했다. 세 개의 이젤 아래위로 작품을 거치해놓고 홍보하였다.
공필화(工?畵)는 동양화의 정밀화기법이다. 대상의 소소한 부분까지 소홀함 없이 섬세하게 묘사한다. 묘사에 중점을 두지만 사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대상의 해석이나 작가의 내면세계 표출이 가능하다. 중국 명대의 화가 구영(仇英, 16세기 중엽)이 공필화법으로 유명하다. 위대한 화가가 가지고 있는 교양이나 문예가 없다고 업신여겼으나 탁월한 기법, 능란한 필치, 세련된 감각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명대 화단의 거장으로 손꼽힌다. 같은 주제와 내용을 되풀이하여 그리는 민화와는 차별성이 있다.
민화는 사회의 요구에 따른 대중적 실용화이다. 용어가 먼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별도의 교육 과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용어 자체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부여한 것이다. 그의 정의에 의하면 "민중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을 위하여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서 구입되는 그림"이다. 이후 활발한 연구와 논의가 있었던바 요약하면, 민족 집단의 미의식과 정감이 어린 겨레의 습관화된 그림이다. 생활화, 실용적 측면의 넓은 의미에서 보면, 전문화가, 화공의 그림도 이에 포함된다.
예술작품이란 자연물이 아닌 인간이 만든 것, 인공물이다. 자연에 무언가 변화를 가한 모든 것을 이른다. 다만, 협의로 보면 미학적 반응을 유도한 것이 된다.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이다. 어느 쪽이 우선인가에 따라 '미적예술(fine art)'과 '실용예술(useful art)'로 구분 할 수 있다. 미적예술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이 목적이다. 실용예술은 효용성이 우선이었지만 미학적 기능도 가진 것이다. 예시로 보면 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미적예술에는 미술·음악·문학이, 실용예술에는 건축·공예·도자기·자동차가 있다. 주도적 입장이 바뀌는 경우도 있고, 경계가 모호한 경우도 있다. 상기한 실용화란 실생활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화와 달리, 공필화는 미적예술 측면이 강하다는 의미다.
예술의 매개요인은 색채, 언어, 음조, 형태 등이다. 예술의 창작이란 기존의 자료와 재료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더해서 의식, 도구, 기법, 형식 등에 따라 특정 명칭이 부여된다. 창작행위는 자기표현의 과정으로 감정, 이념이나 사상, 이상을 나타내는 것 아닌가? 가장 효율적 표현 방식이 절실함에도 모두 체험하고 습득하기는 쉽지 않다. 어떠한 것도 가벼이 보는 것은 허용치 않는다.
예술의 기능에 대해 격물치지로서의 모방론과 내면세계의 표출이란 표현론, 형식론 또는 형식주의 이론 등이 있다. 형식론자들은 예술이 지식전달, 정서순화, 도덕적 정화, 사회개량의 수단으로 보는 것에 반대한다. 예술에 여타 기능의 수행이 강요되면 예술 자체의 진정한 목적이 훼손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술의 본원적 목적이 '인생을 위한 예술이 아닌, 예술을 위한 예술'에 있다고 주장한다. 여타 도움 없이 예술 자체의 힘으로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감상 역시 다른 예비지식이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순수한 시선으로 접근해야 예술이 제시하는 바를 바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은 우아하고 강력한 즐거움이다. 게다가 예술은 격식 있는 놀이로, 격식이 많아지면 고품격이라 하지 않던가? 고품격 미적 쾌감이 주는 즐거움이야 말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지고지순한 예술의 숭고성에 동의하지만, 형식론자들이 싫어한다는 예술의 기능과 목적, 작가의 의도와 주제가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다시 강조하건데, 인지기능에 초점, 진리 및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이다. 감화력이 강해 교훈이 되며, 도덕성에 무한한 영향을 줘 도덕적 개선 역할이 있다. 정서순화로 선한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소통으로 삶의 지평을 넓혀준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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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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